지난 7월 26일 파리에서 열린 올림픽 게임 개막식을 두고 세계가 뜨겁다. 비난의 열기가 좀처럼 식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나라 이름을 잘못 방송한 것부터 대회 운영 상에 보이는 여러 실책을
지적하는 동영상들이 쏟아지고 있다. 프랑스에 대한 반감의 수위가 일찍이 보지 못한 수준이다.
유럽연합 의장인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대통령을 비롯한 여러 나라 정상들은 그들대로 개탄했다.
“서양의 도덕적 해이를 적나라하게 보여 준 것이 유감스럽다.”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공식 사과했으며
공식 홈페이지에서 개막식 영상을 삭제했다. 몇 년에 걸쳐 준비한 행사가 왜 이런 낭패가 되었을까?
개막식은 사상 최초로 주 경기장을 벗어나 파리 시내 센 강이라는 열린 공간에 치러졌다. 파격적인 시도였다. 입장객을 제한하는 경기장과 달리 훨씬 많은 관객이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관광객이
많은 도시 파리의 유서 깊고 아름다운 건물들을 보여줄 수 있고, 주 경기장을 새로 짓지 않아 자재의 낭비를
줄이며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 개최국 프랑스는 그렇게 열린 공간을 선택한 취지를 설명했다.
실제 문화행사는 많은 부분에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4시간에 걸쳐 6㎞ 구간 강 위에서 진행된 선수단 입장과 강둑에 설치된 야외무대에서 진행된 문화행사는
장소가 분산되어 자칫 산만하고 번잡스러워질 수 있다는 우려에도 전체적으로 큰 실수 없이 매끄럽게
진행되었다. 특히 열린 공간에서만 할 수 있는 퍼포먼스들은 독특하고 예술성 높은 장면들을 연출해
과연 ‘예술의 나라’라는 찬사를 들을 만했다.
선수단이 센 강 유람선을 타고 입장해 흐르는 강물을 따라 내려가며 마치 무대장치가 바뀌듯 파리의
문화유산들을 보여준 것은 지루했던 선수 입장식을 색다른 구경거리로 만들어 주었다.
비디오 게임 ‘어새신 크리드’의 캐릭터로 분장한 성화 주자가 작은 배를 저어 카타콤에서 센 강으로 나와
노트르담, 조폐국, 샤틀레 극장, 루브르 등 유서 깊은 건물의 내부와 외부를 들고 나면서 여러 장면을
보여주는 입체적 구성은 열린 공간에서만 가능한 흥미로운 퍼포먼스였다. 연극배우 겸 연출가인 총감독의
연극적 콘셉트와 재능이 열린 공간을 활용하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화재로 파괴된 노트르담 성당에 설치된 구조물 위에서 복원 작업을 하는 장인들을 재현한 것이나 파리 시청 지붕 위에서 있었던 파리 오페라 발레단 수석 무용수의 독무, 그랑 팔레 지붕 위에서의 메조소프라노
가수의 프랑스 국가 제창도 파리의 ‘지붕 위’을 배경으로 올린 훌륭한 야외무대 공연이었다.
여군 장교가 은빛 말을 타고 어두워진 센 강 위를 달려 에펠탑 아래 올림픽 깃발을 게양대까지 전달하는
퍼포먼스도 수작이었다. 위험한 밤의 어둠을 뚫고 달리며 힘과 결의를 상징하는 전설적 인물을
표상할 뿐 아니라 물 위를 걷는 기독교적 신비한 기적을 현대 기술로 재현한 강력한 퍼포먼스였다.
에펠 탑에서 연출한 조명 쇼와 불꽃놀이도 파리가 ‘빛의 도시’였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장관이었다.
이 같은 성공적 이벤트에도 불구하고 개막식이 온 세계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는 이유는
개막식 후반부에 배치된 퍼포먼스 때문이었다.
‘축제’라는 주제로 LGBT라고 약자로 흔히 부르는 성소수자들이 참여한 패션쇼와 ‘최후의 만찬’ 패러디는
전 세계 기독교계가 반발하는 엄청난 파장을 불렀다. 이 퍼포먼스는 종교계의 반발 이전에 예술적으로도
문제가 없지 않았다. 남장 여자와 여장 남자들이 런웨이 위에서 걷고 춤추는 그로테스크한 광경은 그리
미적인 것도 예술적으로 승화된 것도 아니었다.
식탁 위에 있는 큰 접시의 뚜껑이 들리면서 나타나 노래를 부르는 남자 배우의 누드는 더욱더 쇼킹했다.
매우 불편한 광경을 연출했을 뿐만 아니라 진행의 흐름을 끊고 분위기를 식게 만들어 ‘축제’라는 주제와
정확하게 반대되는 효과를 낸 것이다. 많은 나라 공중파에서 노출이 불가능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이 장면을 실제 외국 59개 TV 방송사에서 즉시 삭제했다.
우리의 아이돌 그룹 BTS가 유엔에서 '누구든 모두가'라는 같은 주제로 했던 퍼포먼스와 비교하면
파리 개막식의 무대가 얼마나 거칠고 완성도가 떨어지는지 알 수 있다.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모욕할 의도는 없었으며 다양성을 인정하고 소수까지 포함해 모두와 함께 하려고
했다.” 총감독과 조직위원회는 그렇게 발표했지만 사실상 기독교에서 가장 신성시하는 장면을 패러디해
성소수자 문화를 죄악시하는 기독교의 윤리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였다.
인간은 금기의 억압에서 해방되면서 발전한다. 유럽문화의 역사는 파격적인 사건의 역사이기도 하다.
예컨대 니체, 마르크스, 프로이트는 각기 종교, 금전, 성의 금기에서 벗어나게 하면서 인간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고 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으로 나아가는 데 기여했다. 파격을 통해 기존 윤리를 다시
생각하게 하고 인간을 억압에서 풀어 주는 것은 예술의 속성이면서 덕목이다.
표현의 자유를 중요시하고 예술가들에게 무한한 자유를 주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인류의 보편적 축제인 올림픽 개막식이 금기에 대한 성찰을 유도하는 무대가 될 수 있는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주최 측은 “저속하고 불건전한 신성모독”이 될 무대를 올리면서 의사소통의
문제를 충분히 고려했어야 하지 않았을까?
신앙이라는 절대적인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것도 타인에 대한 인간적 예의이기 때문이다.
의사소통보다는 자신들의 세계관과 이념을 보여주는 것이 더욱 중요하며, 관객이 누구이며 어떤 문화
속에서 살고 있는지 특별히 배려하지 않겠다는 것은 ‘축제’ 퍼포먼스뿐만 아니라 전체 행사를 관통하는
기본자세였던 것으로 보인다.
센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강 둑에 설치된 12개의 무대에서 진행된 퍼포먼스는 환영 인사, 프랑스의 국가
이념, 올림픽과 관련된 10개 테마를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이러한 테마를 표현하는 개별 퍼포먼스들은 물론
프랑스적 해석이었다. 그런데 그 해석이 너무 자의적이었으며 자신들의 문화에 대한 너무 많은 암시와
상징이 투자되어 있어서 프랑스인들 자신도 과연 충분히 이해했을까 의심스러운 수준이었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다. 아는 사람들만 알고 모르는 사람들은 모르는 많은 디테일들은 보는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몰입과 공감을 방해했다.
주제 ‘자유’는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의 연극 무대, 건물 창문에서 말하고 있는 마리 앙투아네트의
잘린 머리, 헤비메탈 그룹의 연주와 노래, 배를 타고 부르는 오페라 ‘카르멘’의 아리아, 도서관에서 만나는
남녀들과 다리 위에서 진행되는 서커스로 구성되어 있다.
프랑스 대혁명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마리 앙투아네트가 이제 팝아트의
한 아이템이 되었다는 것이나 프랑스 작곡가 비제의 작품인 카르멘의 아리아가 사랑을 나타낸다는 것이나
도서관에서 보여주는 책 제목들은 모두 사랑과 욕망에 관련된 프랑스 문학 작품이라거나
가장 오래된 다리 퐁뇌프는 20세기 시인 브르통에 대한 암시였다는 것은 이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다리 위에서 긴 장대 위로 흔들리는 광대들과 외줄 타기 서커스를 보면서 흔들리는 인간의 욕망이라고
이해했던 관객은 몇 명이나 될 것인가? 물론 스펙타클한 퍼포먼스였다는 것은 인정할 수 있지만.
주제 ‘평등’은 루브르 궁전 앞의 다리 위에서 공화국 수비대의 군악대의 연주 그리고 강 반대편에 있는
학술원 아카데미 프랑세즈에서 나온 말리 출신 흑인 가수 아야 나카무라의 노래와 춤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제 군주제를 상징하는 왕궁 루브르와 새로 탄생한 공화국의 대립은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면,
아야 나카무라는 조금 다르게 고개를 갸웃하게 한다.
총감독은 프랑스어의 순수성을 상징하는 학술원과 옛 식민지였던 말리 출신 가수를 연결해서 프랑스어권
지역에서 생생하게 살아 변화하고 있는 프랑스어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인터뷰에서 밝혔다.
설명이 없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깊은 뜻이 아닌가?
너무나 할 말이 많았다는 것도 의사소통이 실패했다고 볼 수 있는 한 원인이다.
몇 초간 화면에 비쳤던 많은 장면들은 관객들로서는 거의 눈치채기 어려웠을 내용으로 흘러넘치고 있다.
잠깐 첨탑 위에 매달렸던 노트르담의 꼽추, 도서관에서 잠깐 보였던 10여 개 책 표지들, 어린 왕자,
80일간의 세계 일주, 프랑스 작곡가 생상, 라모, 라벨, 별로 익숙하지 않은 여성 인물의 금빛 전신 조각 등등.
마치 할머니의 수다처럼 잡다하고 어수선했다. 너무나 보여줄 것이 많은 풍부한 문화였다고 변명할 수
있겠지만 그 풍부함을 구태여 그렇게 자랑해야 했을까?
너무 많은 시대착오적 발상이었다. 자유, 평등, 박애는 어느 시대 이야기인가? 이제는 전 세계인들 속에
녹아들어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는 개념들이다. 메시지 전달에 몰입한 나머지 관객을 까맣게 잊고
자기만족에 빠진 그들만의 축제였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운영상의 문제로 지적된 몇 가지 문제들도 이 같은 기본자세와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보인다.
즉 전 세계인의 축제라는 의식이 희박했다는 것이다.
센 강의 수질 문제는 대회 개최 전부터 여러 차례 제기되었던 문제였다. 그러나 주최국 프랑스는 움직이지
않았다. 맑은 물이 차있는 수영장을 제공하는 대신 파리 시장, 대통령 등이 강에서 수영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으로 대응했다. 마치 그들의 몸이 센 강물을 맑게 하는 세제인 것처럼.
더운 여름 냉방 장치 없는 호텔이나 차량도 마찬가지다. 유럽 전체도 그렇지만 파리에는 에어컨이 없다.
그리 덥지 않은 여름을 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구 온난화로 더워진 날씨를 선수들이 견디게 하는 것은
주최 측의 자세가 아니다. 에어컨 속에 살았던 한국 선수들은 비명을 지르며 숙소를 옮기기까지 했지만
프랑스 언론은 너무 유별스럽다는 식으로 반응했다.
우리나라 나라 이름을 잘못 말했다고 우리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현재 프랑스는 다른
나라를 무시할 처지가 아니다.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옆에서 정치 외교 경제 사회 총체적
난국 속에 살고 있다. 그리고 확인이 필요한 개인적 생각이지만 아나운서와 스크립트를 준비한 사람들의
무식의 소치일 수도 있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한 프랑스 학생의 27%가
글을 제대로 읽고 이해하지 못한다.
유럽 내 국가들도 잘 알지 못할 수도 있는데, 저 멀리 한국의 공식 국명을 어떻게 정확하게 알겠는가?
체코 원전 공사 수주 경쟁에서 우리에게 밀렸다고 보복하는 것이라는 것은 너무 나간 주장이다.
그럴 정신도 없겠지만 그렇게 치사하고 야비한 나라로 만든다고 한국의 위상이 올라가는 것도 아니다.
외교적 프로토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라가 얼마나 해이해졌는지 보여주는 실수일 뿐이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