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로 가는 비행기는 파리에서 갈아탄다. 알제로 출발하기 전 파리에서 며칠을 보냈다.
알제리에 간다고? 그 험한 곳에 가게 할 수 없어!
내 얼굴을 보더니 프랑스인 친구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말을 멈추었다.
그래도 알제리는 왜? 하는 의문을 거두지 않았다.
내가 알제리를 잘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왜 또 알제리에 가고 있는지 말해주지 않았다.
파리보다 알제에서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질적으로 다른 만남을 한다. 말하지 않았다.
편견을 버리기는 쉽지 않다. 그들에게 알제리는 100년 넘게 지배했었던 식민지였고,
자신들의 지배를 받았던 사람들이 사는 곳이다. 그 사실이 함축하고 있는 편견과 차별은 생략한다.
어쨌든 그들 스스로가 생각을 바꾸기 전에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2004년 알제리를 처음 갔었다.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지도를 보면 아주 큰 나라라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것을 실감하는 데 긴 시간이 걸렸다.
지중해 햇살을 반사하는 흰색 건물이 카스바 경사면을 채우고 있는 알제(Alger),
자유로움과 경쾌함이 공기 속에 떠도는 오랑(Oran),
깎아지른 절벽 위에 있는 메디나에 가려면 허공에 높이 떠 있는 다리를 건너야 하는 크산티나(Constantine), 깊은 계곡과 높이 솟은 산들 끝없이 계속되는 산맥 아틀라스(Atlas),
달려도 달려도 멀리 보이는 산의 실루엣을 배경으로 펼쳐진 황토색 고원 오-플라토(Hauts-Plateaux),
드문드문 작은 도시들이 불쑥불쑥 나타나는 광활한 녹색 평원 미티자(Mitidja),
조용히 침묵하고 있는 망망한 모래 바다 사하라(Sahara),
야자대추 그늘 아래 진한 단맛의 박하 차를 마실 수 있는 오아시스 음자브(M’zab),
풀도 나지 않고 새도 날지 않는 외로움을 거만하게 견디고 있는 산맥 아하가르(Ahaggar),
바람이 조각해 놓은 기괴한 암석들이 끝없이 도열해 있는 타실리 은아제르(Tassili N’Ajjer),
산은 높고 땅은 넓은 나라 알제리의 풍경들이다.
알제리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나라가 아니다. 비자를 잘 주지 않는다. 비자 없이 들어가 관광할 수 있는
이웃 두 나라 모로코와 튀니지와 다르다. 초청하는 사람이 있어야 하고 가는 목적을 밝혀야 하고 가볼 곳과
숙박지를 일일이 써내야 한다. 호텔 같은 관광 인프라도 충분히 개발되어 있지 않고 대중교통도 마찬가지다.
지중해 푸른 바다, 바다를 굽어 보는 높은 산, 로마 유적지, 사하라 사막, 오아시스 도시 등등 볼거리가
많아도 소용없다. 험지 여행가가 아니라면, 회사 일 때문이 파견된 것이 아니라면, 기꺼이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 이것은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까지 이야기다.
일단 들어가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만나게 되면 달라진다.
어깨를 펴고 목을 꼿꼿이 세운 건장한 남자들, 온몸을 간두라로 감싸고 있는 눈이 큰 여자들,
사막 저 멀리에서 걸어와 수줍게 웃는 소년들, 가슴에 손을 대며 잘 왔다고 맞아주는 평원의 사람들,
신이 너에게 평화를 내려 주실 것이라고 시를 읊어 주는 낙타 탄 사람들,
꿀이 흠뻑 들어간 과자와 박하 차를 함께 나누어 주는 사막 사람들,
한없이 너그럽고 관대한 사람들이다.
그들의 역사를 공부하고 나서 그들이 얼마나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들에게 평등이란 머릿속에 억지로 넣어야 하는 개념의 영역이 아니라 실천의 영역이었다.
누구도 우러러보지 않았고 누구도 굴복시켜 존경을 강요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억압이란 낯선 단어였다.
남들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에 들어오는 것을 관용했지만 자신들의 존엄성을 침해하면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고통스럽게 했지만 엄청난 희생을 치르며 물러나게 했다.
권위에 대한 저항 그리고 평등은 그들의 정체성의 일부였다.
자부심에 넘치고 당당한 사람들이었다. 쉽게 꺾을 수 없는 강한 자존심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따뜻했다. 파리에 유학하는 동안 프랑스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에 배어 있었던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들이 보여주었던 인간적 모습들은 일일이 열거할 수 없다.
그들의 환대가 첫 방문 이후 열 번이 넘게 그들을 다시 보러 가게 했다.
나의 알제리 탐구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자,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알제리에 대한 약간의 정보다.
아프리카 대륙 북부 지중해 연안에 위치하고 있다.
정식 국호는 ‘알제리인민민주공화국’이고 종교언어적으로 아랍이슬람권에 속하고 인구 약 4,600만이다.
'알제리(Algérie)'는 프랑스어이고, 영어로는 '알제리아(Algeria)'다.
수도는 '알제(Alger) 혹은 '알지에(Algier)'다.
아프리카에서, 아랍 세계에서, 지중해 연안에서 가장 큰 나라다. 한국의 24배다.
한국으로부터 직선거리 1,000㎞, 비행시간 13시간 정도다.
“20세기 가장 잔혹한 식민독립 전쟁”을 치르고 1962년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독립했다.
자력으로 독립을 성취한 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로 자부심이 대단히 강하다.
그들을 만날 때는 그 점을 특히 유념해야 한다.
프랑스의 지배로부터 독립한 후 사회주의 국가가 되어 북한과 가까웠다.
한국인은 여행할 수 없었던 적성국가였다. 1990년에 한국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
2004년 알제리 부테플리카 대통령이 우리나라를 방문했고, 2년 후 노무현 대통령이 알제리를 방문해
두 나라는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맺었다. 특별한 외교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우리 기업의 진출이 활발하다.
나라 ‘알제리(Algérie)’, 수도 ‘알제(Alger)’
‘알제리’, ‘알제’, 나라와 수도의 이름에서 두 글자가 겹친다. 나라 ‘알제리’에서 마지막 글자를 떼어내고
수도의 이름을 붙인 것일까? 아니다. 오히려 국가 이름 ‘알제리’가 수도 이름 ‘알제’에서 유래했다.
도시가 먼저 있었고, 나라가 뒤에 나타났다.
항구의 명칭 ‘알제’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지만 통상 ‘서쪽의 섬’을 뜻하는 아랍어 ‘엘 제자이르’에서 왔다고 본다. 역사적으로 페니키아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항구 알제가 항구를 중심으로 지중해 해안가 넓은 지역을 지칭하게 된 것은 15세기 오스만제국치하에서였다. ‘알제 자치령(Régence d’Alger)’이었다.
19세기 초반 지역을 침공한 프랑스는 자신들의 식민지라고 선언하고 ‘알제리(Algérie)’라는 공식 명칭을
왕의 칙령으로 공포했다. ‘알제’에 라틴어 ‘지방, 나라’를 뜻하는 접미사 ‘~ie’를 붙인 명칭이었다.
프랑스로부터 독립한 이후 사회주의를 표방했던 알제리 신생정부는 그 이름을 그대로 채택해 나라 이름을 ‘알제리인민민주공화국’이라고 지었다.
이웃했던 또 다른 오스만제국의 자치령인 ‘튀니스자치령(Régence de Tunis)’도 같은 경우였다. ‘튀니스’는 수도 이름에 남았고 국가 이름은 ‘튀니지(Tunisie)가 되었다.
지도 출처: 구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