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제리 틀렘센: 옛 도시에 노을이 지고 있었다

by 스토리아

넓은 광장으로 나왔다. 우리와 마주친 젊은이들 중 하나가 손을 들더니 네 손가락을 펼쳤다가 손가락을 둘로 바꾸었다. 조금 지나 마주친 또 다른 젊은이도 똑같이 했다. 뭐지? 나중에 알았다. 알제리팀이 한국팀을 4대 2로 이겼다는 표시였다. 두 팀이 시합을 벌인 2014년 월드컵 경기 다음 날 하필 알제리 틀렘센에 있었다. 우리가 한국인인 것은 어찌 알고? 그저 아시아인 얼굴을 보고 그랬을 것이다. 우리도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로 본다. 아프리카도 50개가 넘는 나라가 있지만 별로 의식하지 않고 한 통으로 보지 않는가? 그때 한국팀이 진 것이 우리에게 다행이었다. 파리에서 차를 빌려 이탈리아를 여행하다가 축구 시합에 진 이탈리아인들이 자동차 바퀴의 바람을 빼놓아 심하게 고생한 기억이 있다. 차에 파리의 렌터카업체의 주소가 쓰여 있었다. 휴! 한숨을 쉬었다. 축구는 스포츠 정신을 구현하는 운동 경기가 아니라 살벌한 경쟁이다. 그래도 서로 알지도 못하는 먼 나라에 관심을 갖게 하다니 좋은 점이 없지는 않군!


오랜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마그레브의 옛 도시 틀렘센, 십 년이 지나 다시 갔다. 얼굴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손가락을 치켜올렸던 젊은이들은 아마 어른이 되었겠지. 다시 올 줄 알았으면 이름을 알아 둘 것을… 만나면 우리가 한국 사람인 것을 알고 그랬는지 물어볼 수 있었을 텐데. 정돈된 시가지가 주는 차분한 느낌은 여전했다. 잎이 무성한 산 자락에서 떨어지는 폭포도 여전했고, 파리의 유명한 탑에 이름을 남긴 에펠이 설계했다는 철제 다리도 저 위에 잘 버티고 있었다. 다시 한번 돌아보고 나니 다른 알제리 도시들과 분위기가 다르다고 느꼈던 첫인상이 기억났다. 녹지가 상대적으로 풍부하다는 것도 있지만 세월이 쌓여 있는 역사의 무게가 주는 안정감이었다.


모로코 국경에서 멀지 않은 알제리 북서부 도시 틀렘센은 늘 역사의 중심지였다. 성채, 궁전, 모스크 등 도시를 채우고 있는 유적지들을 보면 여러 시대에 걸쳐 번창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알제리 유적의 절반이 이곳에 모여 있다. 로마시대에는 로마군 주둔지였고, 베르베르왕조나 아랍왕조 시대에도 계속해서 중요한 도시였다. 도시를 차지하기 위해 사람들이 경쟁했고 싸웠다. 중세기에는 사하라 남부 흑아프리카에서 생산되는 금을 지중해로 운반하는 황금루트가 지나는 기착지였다. 지중해와 사하라 사이 건조한 지대에서 물이 흐르고 녹음이 우거진 자연조건을 갖춘 곳이니 그럴 만하다.

전에 왔을 때 엘 메슈아르 궁전은 왜 가보지 않았을까? 복원공사가 2010년 시작되었다고 하니 마무리되지 않아 관람이 허가되지 않았던 것 같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유적의 보호 측면에서 알제리는 모로코보다 훨씬 불리했다. 모로코는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지만 알제리는 그렇지 않다. 모로코는 짧은 기간 보호령이었고 프랑스인 총독 리요테가 전통 유산을 보호하는 문화정책을 실시했지만, 알제리는 프랑스 국토의 일부로 편입되어 긴 시간 직할통치를 받는 동안 아주 소홀한 취급을 받았다. 궁전을 마구간으로 쓰기도 했다고 하니 할 말을 잃는다. 독립 이후에도 혼란한 시기를 지나 내전까지 겪었으니 유적을 돌 볼 여유가 있었겠는가?


중심가 광장의 이면 도로에 겨우 자리를 찾아 주차를 한 함마디 씨를 따라 들어간 엘 메슈아르 궁전에는 관람객들이 많았다. 아, 어디서 많이 보았던 건물이 아닌가? 스페인 알람브라 궁전을 생각나게 했다. 중앙의 직사각형 연못을 둘러싸고 있는 ㄷ자 모양 주 건물과 가느다란 기둥이 받치고 있는 뾰족한 반원형 장식 등 같은 건축 양식이었다. 알제리 서부와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는 거리가 가깝기도 하지만 한 때 같은 나라였으니 놀랄 일도 아니다. 특히 틀렘센은 가톨릭 여왕 이사벨과 싸움에서 패배해 스페인을 떠나야 했던 이슬람교도들이 건너와 정착한 도시로 안달루시아 지방과 언어, 음식, 음악 등 문화 전통 일부를 공유한다. 몇 년 전 건물을 신축한 ‘선사·역사인류학연구소’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건물도 알람브라 궁전 양식을 재현한 것이었다. 중정에 자리한 낙타상 원형분수가 궁전의 사자상 원형 분수를 생각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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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 메슈아르 궁전의 한 건물은 여성 전통 의상의 상설 전시관이었다. 구불구불한 곡선 모티브를 반복해 목둘레와 앞판을 금실로 장식한 긴 벨벳 원피스 그리고 여러 겹 길게 늘인 장신구는 정말 화려했다. 신부 결혼식 의상은 틀렘센이 알제리에서 가장 화려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실크 레이스가 달린 원피스 위로 금실과 은실로 수를 놓은 망토를 걸치고, 머리에는 베일을 늘어트리고, 화려하게 수를 놓은 뾰족한 삼각 모자를 쓰고, 앞가슴에 보석을 장식한 천을 늘어 트린 것으로 ‘체다’라고 부르는데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전통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마음먹고 찾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궁전 주변에 화려한 전통 옷들을 짓는 전문점들이 몰려 있었다. 이곳저곳 기웃거리다가 주인이 들어오라고 하면 들어가 구경도 하고 권하는 대로 입어 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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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스러운 여자 예복과 달리 알제리 사람들이 입는 일상복은 소박하다. 남자나 여자나 모두 위에서 발끝까지 한 통으로 떨어지는 헐렁한 원피스를 입는데, 무늬가 거의 없고 단색이다. 기원전 페니키아시대부터 입었던 베르베르인의 전통 의복이다. 비슷해 보이지만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소매가 있는가 없는가, 앞이 터져 있는가 혹은 막혀 있는가, 후드가 달려 있는가 아닌가, 그에 따라 구분된다.

앞이 막혀 있고 후드가 달려 있는 것을 ‘젤라바‘라고 하고, 앞이 막혀 있고 후드가 없는 것을 ‘간두라’라고 한다. 남자들은 보통 원피스 아래로 같은 천에 색깔이 같은 바지를 입는다. 원피스 위로 셔츠와 조끼를 입기도 하는데, ‘카사비야’라고 한다. 그 외에도 알제리를 포함한 마그레브를 대표하는 옷으로 ‘부르누스’가 있다. 옷을 입고 그 위에 두르는 망토다. 소매가 없고 앞이 터져 있다. 거의 발목까지 치렁치렁 내려와 말을 탈 때보다는 걸을 때 입어야 한다. 결혼식에서 신랑은 부르누스를 입고 말을 타기는 하지만 특별한 경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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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빌리 문화사전을 번역하면서 부르누스가 상징성이 대단히 풍부한 의복이라는 것을 알았다. 예전에는 남자의 몸을 보호한다는 점에서 집의 연장이라고 생각해 여자들이 공을 많이 들여 양털로 직접 짰다고 한다. 올리브기름에 한 달 넘게 담가 두었다가 빨아 말려 추위도 막고 비에 젖지 않도록 방수처리를 하기도 했다. 엽총처럼 남자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물건으로 생각해 다른 사람이 건드리지 못하게 했다. 예전에는 집안사람이 살인을 당하면 죽인 사람의 집안사람을 아무나 한 명을 죽여 명예를 회복한다고 생각했는데, 이때 살인자를 죽이고 나서 부르누스를 가져갔다고 한다. 낙타털 색깔의 부르누스를 선물 받아 서울로 가져왔는데 차곡차곡 개켜도 부피가 크고 무거워 보관이 쉽지 않다. 앞으로 이사할 때는 가지고 가지 못할 것 같다.

만수라 성채를 두 번째 가보았다. 주차를 하고 길을 건너는 데 큰일이 날 뻔했다. 도로는 넓지 않았지만 지나다니는 차의 속력이 빠른 편이었다. 신호등도 없고 횡단보도 표시도 없었으니… 알제리를 다니면서 신호등이 길에 서 있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래도 알제리 사람들은 서로 눈치껏 잘 다닌다. 다섯, 여섯 갈래로 갈라지는 원형교차로도 많은데, 자동차 사고를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보면 다른 운전자의 마음을 잘 읽는 것 같다. 성채 앞에는 10년 전과 달리 표를 받는 창구가 있었는데, 창구에 있는 사람들이 손을 젓고 그냥 들어가라고 해서 무료 관람을 했다. 돈을 받고 싶어 하지 않는 창구 직원도 있다. 군데군데 허물어진 두터운 성벽들이 올리브나무 사이에서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우람하고 육중한 마스지드를 둘러보고 나서 시디 부메디엔 모스크로 향했다. 중세기 술탄의 무덤이 있던 자리에 궁전, 모스크, 이슬람 학교 메데르사를 건축한 복합단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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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지은 궁전은 대부분 유실되어 윤곽만 알아볼 수 있었지만 곳곳에 타일을 아라베스크 무늬로 장식한 나머지 건물들은 정갈하게 잘 보존되어 있었다. 특히 기도실의 천장과 벽을 온통 장식하고 있는 타일들은 색감이 요란하지 않고 산뜻해서 내 취향에 맞았다. 유적지를 돌아보는 동안 점점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자동차는 점점 높아지는 길을 따라 주택가를 지나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도시 전체가 내려다 보이는 곳에 넓은 공원이 있었다. 랄라 세티 공원. ‘랄라’는 모두의 존경을 받는 여성에게 붙이는 경칭이고 세티는 중세기 왕조들 간에 분쟁이 있었을 때 활약한 여성의 이름이었다. 전망대에 서니 발아래 저 멀리 뻗어 있는 도시가 한눈에 보였다.

군데군데 공간을 채우고 있는 녹지들이 건물들과 잘 어울려 있는 평온한 도시, 그 위로 어둠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 동안 도시를 바라보며 우두커니 서 있었다. 타는 듯 광채를 발하는 태양 아래로 붉은색 노을이 진하고 연하게 층층이 뻗어 있는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어둠이 진해질수록 석양빛이 점점 더 화려해졌다. 슬프다고 할까, 막막하다고 할까, 헛헛하다고 할까, 온몸이 녹아 그 붉은 광채 속으로 사라지는 것 같았다. 아, 나는 왜 이 낯설고 먼 곳에 와서 이렇게 서 있는 것일까? 언젠가 이 순간을 돌아보면 지금 시간이 내 인생에 무슨 의미였는지 알 수 있을까? 전 날 틀렘센으로 들어오는 차 안에 앉아 망연히 앉아 바라보았던 석양을 다시 보면서 문득 들었던 생각이었다. 때로는 우연히 만나는 자연 풍경이 일부러 보러 갔던 인간의 풍경을 압도하기도 한다. 알제리의 틀렘센은 잠시 상념에 잠기게 했던 석양의 황홀한 빛과 함께 기억 속에 남았다. 가끔 그 빛을 다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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