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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세령 Mar 21. 2023

컴컴한 동굴 속

211223

포스터와 시놉시스만 보고 가벼운 퀴어 로코물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담고 있는 주제가 나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끔 했어서 반전이었다. 1막 때는 웃음 자아내는 장면들이 꽤 있었는데, 이와 반대로 2막 때는 인물의 대사 한 마디 한 마디에 눈물이 났었다. 결코 가벼운 주제가 아님에도 최근 들어 대학로 쪽 소극장에 흔히 보이는 '있어 보이려고' 대사나 연출을 과하게 은유적으로, 현학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처음 들었을 때 직관적으로 바로 납득이 가며 어렵지 않은 대사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그런 일상 대사들이 무대 위 인물의 감정에 더 깊이 공감할 수 있게 해 주었고 좋게 느껴졌던 것 같다.



앨리스와 피오나 두 사람은 로테르담에서 자그마치 7년 동안 연애를 했었다고 극의 초반부에 나오는데, 도대체 성격이 저렇게 다른 두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오랫동안 연애할 수 있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앨리스는 주변 사람들에게 늘 괜찮다는 말을 일삼으며, 싫은 말을 못 하고 부모님에게 커밍아웃하기 위해 작성한 이메일을 몇 십 번씩 고친다. 그만큼 본인을 둘러싼 일상의 사소한 변화들을 두려워하며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반해, 피오나는 자식들 앞에서도 마약을 하는 등의 모습을 보이는 자유분방한 부모 밑에서 자라 커밍아웃도 어릴 적 아무렇지 않게 한다. 이런 환경에서 자라서인지 본인의 의사를 명확히 표현하는 것에 거리낌이 없고, 다소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인다. 



물론 앨리스의 성격이 좀 답답하다고 느끼긴 했지만, 어릴 때 내 성격과 앨리스의 성격이 좀 비슷한 부분이 있어서인지 초중반에 앨리스 쪽에 몰입해서 봤어서 그런지 피오나가 너무 자기중심적이라고 느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너는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 줘,라고 떼쓰는 느낌이었달까. 그런데 조쉬가 앨리스에게 너는 겁쟁이라고 이야기하는 장면 전까지 앨리스의 관점으로 극을 보다가, 그 이후와 그리고 극이 끝나고 글을 작성하고 있는 이 시점에선 에어드리언에게도 공감하고 그의 시점으로 다시금 극을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극 중 조쉬가 에어드리언에게 컴컴한 동굴 속 우리의 성별도 모르고, 사회가 정해준 성별적 역할도 알려주지 않은 채 우리가 살아간다면, 그냥 다들 똑같이 살아가지 않을까? 남자, 여자 이런 건 그냥 라벨 같은 거 아닐까,라고 말한다. 나라는 사람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들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사회에 의해 지정받았을까? 진짜 '나'라고 표현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일까? 조쉬가 던진 말속 주제에 대해 예전에도 생각해 본 적 있어서 그런지, 극이 끝나고 저 두 질문이 내내 나에게 맴돌았던 것 같다. 플라톤의 비유가 생각나서 이것까지 의도한 걸까 싶기도 했었고. 사실 이 씬 앞에서 에어드리언이 본인은 트랜스젠더인데, 다른 남자에게 레이디퍼스트란 말을 들었다고 자기를 남자로 봐주지 않는다고 화를 낼 때 나는 에어드리언이 그냥 사회적 성별에 대한 고정관념에 갇힌 사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냥 남자로 살면서 받게 되는 취급이 받고 싶은 거 아닐까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고 초중반 피오나의 성격이 너무 나에게 선호하지 않는 인간상이었어서 더욱 곱게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에어드리언이 조쉬의 질문에 우린 일단 동굴 속에서 살고 있지 않고 그 그녀 남자 여자 이런 단어들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살고 있다고, 이런 세상에서 모두가 똑같이 살아갈 수 있냐고 하면서 이 말 이후에 남자로 살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할 때, 에어드리언이 이해 가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요즈음 나는 각종 매체들과 신문기사 등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접할 때, 단편적인 부분만 가지고 어떤 상황이나 그 상황 속에 처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최대한 다각도에서 어떤 대상을 바라보고 생각을 정리하려고 하는데, 최근 들어 점점 '내가 겪어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 익숙하지 않은 주제나 상황에 대해 나의 의견을 내는 것을 일단 유보하는 편인데, 에어드리언의 이런 말에 내가 또 습관적으로 위와 같은 오류를 범한게 아닐까 싶었다. 나는 스트레이트이고, 트렌지션을 하는 사람들의 입장이 되어본 적 없으니까. 어쩌면 이것도 내 편협한 시각과 한정된 정보로 인물을 판단하려 들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모를 라벨들이 이미 너무 많은 세상이었구나, 에어드리언의 저 말이 새삼 그런 생각을 들게 해 줬기 때문이다.



렐라니가 앨리스에게 뽀뽀하고 간 후, 에어드리언이 그저 본인이 패싱됐다는 사실에 기쁨에 차 앨리스에게 청혼할 때, 그 장면을 처음 맞닥뜨렸을 때는 정말 어이가 없었고 에어드리언이 또 앨리스에게 자기중심적으로 행동하는 것 같아 한숨이 나왔었다. 이 이후에 두 인물이 싸우는 씬부터는 정말 많이 울었던 것 같은데, 앨리스가 하는 말 하나하나가 정말 마음 아프게 들렸었다.



 나 안 괜찮았다고, 너니까 전부 다 이해해보려고 했었어 네가 남자로 변해가는 것 모든 과정이 싫었는데 내가 사랑하는 너니까 끝까지 노력했었어 이런 말을 할 때, 초반에 피오나에게 트렌지션을 할 거라는 말을 들었을 때 본인도 많이 혼란스럽고 고민이 꽤 들었을 텐데 회사에서 인터넷에 트렌지션에 대해 검색해 가며 피오나를 이해하려고 시도했었던 앨리스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런 것에 비해 피오나는 앨리스를 위해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은 것 같았고, 지금까지 네가 만난 건 조쉬와 나뿐인데 나는 애초에 남자였으니 너는 헤테로다 이런 식으로 본인 맘대로 앨리스의 정체성을 규정해 버리려는 모습에 화도 좀 났었던 것 같다.



특히 '난 레즈비언이야, 내가 괜찮다고 말하는 건 내가 사랑하는 피오나를 죽이는 일이었어' 앨리스의 이 대사는 그 말을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하고 수많은 감정들에 휩싸였을지 바로 와닿게 해 주었던 것 같았고, 그렇기에 들었을 때 마음속 깊게 박히는 듯했다. 이후에 에어드리언이 트렌지션을 결정하고 그걸 받아들이는 모든 과정이 너와 함께여서 버텼다고 했을 때 그도 단순하게 이 문제에 관해 생각해오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과 동시에, 이어지는 장면에서 앨리스의 옷을 바뀐 본인의 몸에 집어넣으려고 애쓰며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계속 말을 되풀이하는 모습에 앨리스를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잘 느껴졌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부정당하는 본인의 모습에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하며 점차 초반에 이해가 잘 안 갔었던 그 인물에게 공감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다시금 청혼 장면을 되돌아봤을 때, 앨리스를 향한 청혼 자체가 에어드리언에게 낭만적이고, 처음으로 타인에게 남자라고 인정받아 사랑하는 사람과 미래를 남들처럼 공식적으로 함께 할 수 있게 됐다는 사실에 기뻐 오랫동안 바라왔던 품어왔던 생각을 앨리스에게 처음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속이 다 곪아있던 앨리스에게 그 말은 자신이 처음으로 남자로 인정받았단 사실에 기뻐 다른 여자가 자신에게 뽀뽀하는 것조차 알아채지 못하고 순간의 감정에 북받쳐 뱉은 말쯤으로 느껴졌겠지, 상처였을 것이다. 이렇게 두 사람의 상황을 모두 지켜보고 나니 이 장면에서 섣불리 누군가의 편을 들고, 특정 사람에게 공감해서 극을 볼 수 없었다. 두 쪽 모두의 상황에서 왜 그런 말과 행동을 보였는지 이해가 갔었기 때문이다.



조쉬가 앨리스에게 넌 그때도 나한테 헤어지자고 말하기 무서워서 도망친 거야, 그런 말 하기 무서우니까 지금도 그래 넌 겁쟁이야 했을 때 초반부터 앨리스가 보여준 성격에 비추어서 이 말을 곱씹어보니 앨리스도 조시, 렐라니, 에어드리언 모두에게 이기적으로 굴고 있지 않았을까 싶었었다. 모두에게 무례하게 굴고 싶지 않아서, 싫은 말 하기 싫어서 계속 직면한 문제에 도망쳐왔겠구나, 초반 커밍아웃에 관련해 거듭 고민을 반복하지만 결국 보내지 않는 것처럼. 



앨리스가 본인의 부모님에게 피오나를 룸메이트라고 소개한 것에 대해 무던하게 넘기지만, 렐라니는 회사동료라고 자신을 소개한 것에 대해 화를 낸다. 어쩌면 앨리스를 사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후자가 조금 더 솔직한 반응이지 않을까? 그 오랜 시간 동안 피오나도 앨리스의 부모님에게 연인으로 인정받고 싶지 않았을까. 이런 것들을 떠올렸을 때, 어쩌면 피오나도 그의 성격을 비추어서 생각해 보았을 때 본인의 방식으로 겁이 많은 앨리스를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렐라니가 앨리스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부모님에게 커밍아웃 메일 보낸 장면에서, 더욱 피오나의 재촉하지 않았었던 행동이 부각됐었던 것 같다.



앨리스는 본인의 정체성에 대해 늘 고민하고, 한 가지로 규정지으려고 노력하며 본인의 정체성을 타인에게 숨기려고 하는 경향이 있다. 그에 반해 에어드리언은 그때그때 자신의 느끼는 것이 곧 본인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며, 그걸 표현하고 남들에게 인정받고 사는 것이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극의 초반부엔 에어드리언이 성별적, 성지향성에 고정관념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모두의 이야기를 본 후 들었던 생각은 오히려 그런 사람은 앨리스가 아니었을까 싶었다. 돌이켜보면 에어드리언은 본인의 성 정체성에 대해 설명할 때 어떤 그럴듯한 이유도 붙이지 않고, 그냥 내가 남자니까.라고 말하며 그 시절에 베트맨 안 좋아했던 애들이 어딨어? 하면서 조쉬가 본인도 모르게 씌우려는 고전적인 성별적 역할/취향에 대해선 부정한다. 그런데 그런 앨리스도 렐라니에게 극 후반부에 본인의 연인을, 에어드리언을 그, 남자라고 설명하며 이전처럼 계속 피오나라고 부르는 실수를 하지 않으며 자신이 피오나 혹은 에어드리언, 어쩌면 이런 이름표가 상관없는 그 자체를 사랑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 기차에서 에어드리언과 재회해 안 괜찮다고 말할 수가 없었다고 너와 함께 미래를 그리고 싶다며 이전 에어드리언의 청혼을 부정한 것이 아님을 고백한다.



맨 마지막 두 인물이 우리 이제 어떻게 돼? 하고 모르겠어하면서 손을 맞잡는 장면은 어쩌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다. 나라면 저 상황에서 어떻게 했을까? 답을 생각해 내기가 정말 쉽지 않았고, 아직까지도 잘 모르겠다. "성별"이라는 라벨이 주는 가치가 어느 정도 일까 내가 성지향성이라고 믿는 모든 것들이 어쩌면 주입된 결과이지 않을까? 등등 정말 많은 질문을 나에게 던지게 하는 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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