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211(밤) 연극 마우스피스 후기
자첫이었고 인터파크에서 시놉과 캐릭터 설명정도만 읽고 보게 됐다. 간만에 본 연극인데 처음부터 끝까지 집중을 놓지 않고 이 극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극의 초반에는 리비한테 공감을 많이 했었던 것 같다. 나는 어릴때부터 책도 많이 읽고 글쓰는것도 좋아했었고 여러군데서 인정도 많이 받곤 했었다. 여러 현실적 고민들때문에 다른 공부 꽤 오래했고 지금은 아예 상관없는 분야를 전공하고 있는데, 이 길이 진짜 내가 원하는 길인지, 내가 남들보다 조금 더 잘할 수 있는 영역인지 방향성도 잘 모르겠고 종종 갑갑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었다. 1년 전 쯤부터는 이런저런 핑계들로 독서행위도 소홀히 하기 시작했고, 몇 년 전부터 글을 쓰지 않다보니 이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 지도 가물가물한 상태였다. 최근들어 나에 대해 많이 돌아보고 있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다시금 글을 쓰고 싶어져서 글을 조금씩이나마 쓰고 있다. 언젠가는 공모전에도 내 볼 생각이긴 하지만 그것보다 거창하진 않더라도, 숨 쉴 구멍이 좀 필요하다고 느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리비가 지하철에 앉아서 우는거 말고는 할 수 있는게 없더라, 나도 그냥 그런 사람이었다 하는 이 대사들이 너무 와닿았던 것 같다. 물론 나는 리비의 상황과는 다르지만. 그리고 리비가 데클란한테 극이 뭐냐는 질문을 받다가 멈칫할 때, 사람들이 좋아하는 글을 써야한다고 이야기할 때도 이미 잃어버린 이전의 자신을 그리며 순수하고 열정적인 데클란 앞에서 본인을 초라하게 느끼고 민낯을 보여주는 느낌이라 마음이 쓰였었다. 이전에 누군가가 글을 쓰는 이유가 외로워서, 본인의 생각을 남들에게 전하고 싶어서라는 그런 글을 봤었는데 공감한 전적이 있어서 그런지 리비가 타인을 지나치게 많이 신경쓰는 것도 안타깝다가도 이해가 갔다.
리비와 데클란 두 사람의 관계를 관찰하면서 소설 은교에서 작가 이적요와 은교 두 사람이 떠올랐다. 개인적으로 나 또한 영화 은교는 감독이 소설을 해석하는 관점이 내 관점이랑 너무 다르다고 생각해서 싫어하는 편이기에, 이 극을 사랑하는 누군가 중에 은교를 영화로만 접했었다면 탐탁치 않게 여길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소설에서 작가는 본인이 느끼기에 그저 흘러가버린 자신의 20대를 회고하며 여주인공의 젊음,순수함 같은 것들을 동경한다. 소설 속 대사중 '너를 두고가면 나는 매번 류머티즘에 걸린다. 나의 젊은 신부여, 너는 내 모든 관절에 위치해있다.' 라는 문장을 제일 좋아하는데, 리비도 데클란의 젊음, 순수함 이런 것들때문에 초반에 끌렸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보다보니까 두 사람이 매우 닮아있더라. 리비는 데클란을 통해 자신의 작가 초기 시절을 봤고, 이유는 다르지만 둘 다 외로운 사람이었다.
앉아있던 자리가 2층이었던것도 영향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근처에 초대로 오신 것 같은 분들도 꽤 있어서 그런지 침대씬이 나올 때 육성으로 놀라는 소리가 몇 번 들려서 극에 한참 몰입하고 있었을 때 집중이 살짝 깨져 기분이 좀 그렇긴 했지만 놀랄 수도 있겠다, 하는 생각은 들었다. 나는 아무 사전정보 없이 갔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놀라지 않았었는데, 아마 어느정도 두 사람의 관계를 예상하면서 봤었던 것 같다. 리비는 추락한 이후에, 본인이 익숙했던 상황에서 동떨어진 이후에, 떨어질 때 어디까지 떨어지는 지 모를 때가 제일- 이런 대사가 있었던 것 같은데 데클란은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안 좋은 상황들에 너무 익숙한 와중에 두 사람은 만났고, 리비는 데클란을 만날 때 극 관련 관계자들과 관객들의 요구와 압박을 벗어났다는 해방감, 타인의 시선을 신경쓰지 않고 글을 쓰는 작가 초기의 자신을 잠시나마 찾을 수 있었으며 데클란은 리비를 통해 잊고 살던 본인의 재능과 생각을 펼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더불어 자신이 지켜줘야할 대상이 아닌 타인의 온기 또한 리비를 통해 느꼈고, 주위 사람들이 공감해주지 않는 둘에게 서로 공감하기 시작하면서 둘 사이에 자연스러운 유대감이 생겼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둘이 같이 연극을 보러가기로 한 날, 리비는 데클란을 만나기 이전, 펜을 들 수 없게 한 그런 류의 감정들을 다시 마주해버렸고, 데클란은 본인의 목소리를 내었단 이유로 가까이 지내던 사람에게 힐난을 듣고 정말 혼자가 되었다. 혼자 감당하기 힘들어진 감정들의 파도 속에 갇히게 된 두 사람은 서로를 찾으며 불안정한 상태로 둘이 만나게 되었고, 아마 침대씬이 그런 의미도 들어있지 않을까하고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통해 불안정한 "안정감"을 다시 느끼고 싶어하는 인물 둘
리비가 그 사건 이후에 데클란을 그렇게 대하지 않았다면, 조금 더 책임감 있게 행동했더라면 리비가 데클란에게 말했던 락스타와 누군가(자첫이라 정확히 기억이 안남)처럼 위기의 순간 계속 서로에게 뮤즈가 되어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리비가 두 사람이 연인이었다고 하자 데클란이 "연인이었다고? 총쏴죽였잖아" 라고 답한다. 끝까지 보고 나니 이 말이 단순히 지나가는 말이 아니라 두 사람 관계의 복선인것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둘 사이의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한게 표면적으론 침대씬이지만 결정적인건 데클란의 목소리가 되어주기로 했던 리비는 이미 타성에 젖어있는 무책임한 어른이었고 데클란의 이야기를 훔쳐 사람들이 좋아하는 결말로, 본인이 쓰던대로 결말을 내버리린게 원인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서, 아마 이 일은 당시가 아니라 언제라도 터질 일이었다고 느껴서 이야기가 비슷하게 흘러갔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부터 리비가 위선적으로 느껴지고 너무 미웠었다.
모두를 위한 공간이라고 데클란에게 미술관을 경험시켜주고 데클란의 그림에 영감을 얻어 목소리가 되어주겠다고 했던 리비가 모두를 위한 공간이 아닌 돈이 있는 사람들과, 극 관계자들을 위한 공간에서 데클란의 이야기를 하고 데클란이 그림에서 표현했듯이 도움을 주기 위한 손길이 아닌 적선하는 시선들을 받게 만든다. 게다가 데클란의 아빠가 목매고 죽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데클란의 진심을 듣고나서도 본인이 쓰는 데클란의 이야기 속 주인공을 목매고 자살하는 결말을 쓴다. 정말이지.. 초반에 리비한테 많이 공감했어서 그런지 후반에 리비가 데클란한테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본인의 이기심이 너무 컸던거겠지, 그런데 공연을 시작하고 관객과의 대화를 하는 내내 리비가 이건 본인의 이야기가 아닌걸 잘 알고 있는듯한 느낌을 받았어서, 덧붙여 데클란에 대한 감정으로 본인 또한 그토록 원하던 안정감을 찾지 못한 것 같아서 그나마 좀 속이 풀렸다.
공연장 객석 불이 켜지고 데클란이 관객들에게 계속 말을 하고, 리비와 마주한 후 자신 머리 때릴 때 정말 눈물나서 보기 좀 힘들었다. 안정감을 찾기 위해 리비에게 찾아왔다고, 돈 필요하다고 하는 그 말이 나한테는 제발 예전처럼 날 좀 다시 봐달라는 의미로 들렸다. 모두에게 언젠가는 주어지는 안정감이, 데클란에겐 쉽게 주어지지 않았으니까. 그런 비슷한 감정을 느낀게 리비와 함께할 때였으니까 이후 언덕에서 모든게 잘 될거란 건 없다고 하는 말도 너무 아프게 들렸던 것 같다.
이 작품 자체가 열린 결말이고 후반부에 리비와 데클란이 말하는 결말이 다른데, 그 장면에서도 리비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결말을 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데클란이 말하는 결말은 그림의 입, 광기/환희/분노 그 그림이 떠올랐다. 틀을 깨는 느낌, 남이 써내려간 결말에 구애받지 않는 느낌이라 좋았다. 마지막 암전,과 객석에 불켜지는 연출은 정말 연극과 뮤지컬을 보러다닌 지 오래됐다면 오래됐다고 할 수 있는데 그간 봐온 연출 중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나는 그저 눈 앞의 극에 몰입해 바라보고 있는 관객이었는데, 어느새 내가 극 속 마우스피스의 실제 관객이 되어있었고, 그리고 극 중 두 인물은 다른 본인만의 결말을 향해 달려간다. 내가 느낀 오늘의 결말은 데클란이 리비에게 칼부림한 후 언덕을 올라가 진짜 자신의 이야기를 한 후 중반쯤 등장한 그림(무대 위의 한 남자) 속 조명(실제는 데클란을 체포하러 온 경찰이나 뭐 그런 사람들이지 않을까)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시안에게 보여준 그림처럼,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한 후 무대 위 조명을 바라보는 데클란. 시안이 바라보는 무대 위의 남자가 되어있을 것만 같아서, 그래서 참 여운이 길게 남았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