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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선 여행가 Apr 06. 2021

가정주부. 전문 여행인이 되다

서울여행인 협회의 탄생

가정 주부인 나는 몇 차례 여행을 했지만 체계가 있는 여행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가 좋았다고 하거나 방송에 소개되는 이른바 '핫 플레이스'를 찾아가는 정도인 초보 여행가 신세였다.

 

그렇지만 마음속에는 모양새를 갖춘 나만의 여행이 하고 싶다.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설명할 수 있는 역사와 의미가 있는 여행을 꿈꾼다.


그러던 어느 날 KBS에서 스포츠 신문에 연재를 쓰는 여행작가가 나온다는 예보를 보았다.

 

나는 미리 TV 앞에  자리를 잡고 프로가 시작되기를 기다린다. 건장한 신사가 나와서 이야기한다. 아주 열정적이다. 타지마할 이야기도 있다. 자기는 산을 좋아한다는 말도 했다.


그런데 그 말 하는 입매와 얼굴은 어딘가에서 많이 보았던 모습이다. 낯익은 사람이다. 

조용하게 말하는 모습보다 기분이 격앙됐을 때, 주체할 수 없는 웃음을 참아 넘기는 순진하기까지 한 모습,       

 

아.....   그런 사람 있었는데..... 생각이 잘 안 난다. 

이제  생각이 났다. 


아! 그 사람, 오빠 친구 서진근이다.

나는 방송국에 전화를 했다. 여행가 서진근의 연락처를 알려 달라고 했다. 곧 연락이 왔다. 전화번허를 알려 준다. 요즘같으면 어림없는 일이다.


너무나  많이 흘러간 세월, 그가 정말 내가 알고 있는 그분일까? 그때, 그 소년은 또래들보다 작았다. 그러나 저 신사는 거구가 아닌가?  

 

전화를 했다. 늦은 시각이었지만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남자의 목소리다.  

갑자기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여보세요." 하고 저쪽에서 말을 한다.   


나는 용기를 냈다.  

"죄송합니다.  늦은 시간인데...."

"아. 괜찮습니다. 말씀하세요."


 "혹시  조영린을 아시는지요."

 “아. 알아요. 알아요. 조영린 동생 되시는 분이십니까?" 한다.

 

"네, 좀 전에 TV에서 보고 혹시나 오빠가 아닐까 해서..."

"아 그동안 어디 사셨어요? 어머님도 아버님도 안녕하시죠? 그리고 그 친구는 어디서 살고 있나요."  "네,... 빈에서 살아요."  

"아. 그래요.... 하여튼 우리 내일 만나요 만나서 이야기해요. 종로에 있는 00 식당에서 만나요. 아이고 너무 반가워요. 내일 꼭 나오세요." 하고 끊었다.  

 

우리는 13 세에 헤어졌다. 그리고 55세에 다시 만난 것이다. 

나는 55 세의 얼굴에서 13세의 미소를 본 것이다. 

오빠는 멋진 신사가 됐다. 손을 흔들고 어깨를 끌어당기며 반가워한다.  

 

우리는 앉자마자 여행 이야기를 했다

서진근 오빠는 나의 여행 경력을 보고 자기가 했던 여행 방송을 하나씩 들려주었다. 

공무원 연수원의 강의도 했고 TV와 라디오 방송도 했다. 여러 여행잡지와 신문에 여행기를 연재했다. 


서진근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지금은 한국 여행 클럽에 속해 있다. 그러나 그들과 여행 방법이 달라서 같이 어울리지 못한다. 내가 탈퇴를 하고 나오면 나와 함께 여행 모임을 만들자"라고 하신다.  

 

우리는 그렇게 약속을 하고 회원들을 입회시키려 했다. 그러나 여행은 혼자 돌아다니는 것으로 아는 사람들이 규약이 있는 모임을 가지려 하지 않았다.

 

누구의 권고로 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신재동 님과 서창석 님이 들어와서 나와 서진근 씨와 함께 4인이 설립 위원이 됐다. 회장에 서 진근, 부회장에 나, 조영선, 총무에 신재동이 선출됐다. 서진근 님이 여행인으로 잘 알려져 있던 때라 달마다 입회원이 늘어났다. 여성들도 많이 참석했다. 

 

서울 여행인 협회의 인원도 늘어나고 어느 정도 자리가 잡히자 회장님은 나에게 회장을 인계하셨다

회의의 진행을 지도해 주고 다음 여행지도 마련해 주셨다. 눈에 뜨지 않는 어려운 고비를 잘 지도해 주셨다. 


나는 회장 노릇을 좀 더 멋지게 해 볼 생각으로 김 찬삼 교수를 찾아가기로 했다.


김찬삼 교수는 설명이 필요 없는 세계여행의 선구자이며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름이 알려진 여행가이며 지리 역사 인문 학자이시다. 집집마다 '김찬삼의 세계여행' 전집이 책장에 꽂혀있었고 어른들과 아이들은 김찬삼 교수의 카메라로 보이는 세계의 풍경에 감탄하며 꿈을 키웠었다. 세계 여행은커녕 비행기 한번 타보기도 어려운 시절이었다.



그리고 김찬삼 교수님과 나는 사제지간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내가 숙명여중 2학년 때 우리 반의 부담임을 맡으셨다. 과목은 지리였다. 


선생님하고는 이렇다 할 이야기나 추억거리는 없다. 선생님은 지도가 필요할 때 뒷자리에 앉은 학생 두 사람을 지적해서 지도를 가져오게 하신다. 나는 늘 그 자리에 앉는 학생이다. 나는 지리 시간에 지도실에서 우리 교실까지 지리부도를 옮겨 온다. 그리고 그것을 칠판 위에 건다. 수업 시간이 끝나면 다시 둘둘 말아서 지리 선생님들이 계시는 지도실에 갔다 놓는다. 이것을 몇 번 한 적이 있을 뿐이다. 지도는 크고 무겁다. 


선생님은 우리 학교에서는 하마라는 별명으로 통한다. 입이 크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생님은 늘 좋은 인상이다. 별로 이쁘지는 않지만 항상 웃는 모습이다.


내일 선생님을 찾아뵙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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