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영선 여행가 Apr 10. 2021

30년 만에 다시 만난 선생님

김찬삼 교수님과의재회

선생님은 이름을 한자로 쓰라고 하시며 그 다음날 필기도구를 준비해서 다시 찾아오라고 하셨다.


순간 나는 바로 후회했다.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른 거지’


선생님이라면 마주칠까 봐 멀리 돌아다니던 난데 제 발로 걸어가 잠자는 호랑이의 꼬리를 밟은 격이니 말이다.


근데 선생님은 아직도 나를 15세 제자로 생각하시는 걸까?

50이 넘은 아줌마를?


다음날 필기도구를 가지고 선생님 댁으로 출석했다. 다시 중학생이 된 느낌이다.


교수님 댁은 혜화동이고 내 친구 정혜숙과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사신다. 나는 혜숙이와 차를 마시고 정확한 약속 시간에 맞춰 일어나서 선생님 댁을 방문했다.


“선생님, 저 왔습니다.” 하고 인사를 하니  위층에서 “올라오시오.” 한다.

선생님의 아파트는 복층이고 서재는 2층이다. 대낮인데도 어둡다. 노란색 10촉짜리 전구를 복도에 달았는데 계단을 완전히 비추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후에 수없이 방문했지만 이 댁은 늘 이렇다.)

다시 한번 올라오라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조심조심 계단을 올라갔다.


선생님은 지도를 펴 놓고 붉은색 연필로 무언가를 그리고 계셨다. 아주 심각하신 것 같아 나는 잠자코 서 있었다.


“오늘은 일이 끝나지 않아서 다른 얘기는 할 수가 없고.....” 하시며 지도 다발을 주시며 일주일 동안 지도를 접었다 펴는 연습을 하라 하신다. 많이 연습해서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해오라 신다.

어두운 계단을 다시 조심조심 내려와서 사모님께 인사를 했다.

“왜 벌써 가시나?”

“네. 선생님께서 내주 화요일까지 지도를 접고 펴는 것을 연습하라고 하셨어요. 

“응. 왕초보네...” 하며 웃으신다.


막 신발을 신고 돌아서려는데 이상한 것이 눈에 띈다.

자세히 보니 2~3 cm 쯤의 몽당연필들이다. 큰 박스에 가득 들어있다. 


이미지 출처: https://artpropelled.tumblr.com/post/8034568565/by-marion-de-man


선생님께서 절약을 무섭게 하신다는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까지 철저하신 줄은 몰랐다.

수백 개 , 아니 천 개도 넘을 것 같은 저 몽당연필은 자녀들에게 절약정신을 가르치며 몸소 실천한 증거물이다.


김찬삼 교수님의 아버님은 검약을 무섭게 하시는 청백리이시다. 고무신 법관이란 별명도 있으시다.


그렇다기로서니 이 정도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김 교수님도 부친의 영향을 받아 절약하는 분이다.


나는 여행 중에 그분의 넘볼 수 없는 고상한 정신과 소탈한 삶에 많은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것은 감히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능력자 수준이다.


나는 그냥, 우러러볼 뿐이다.


나는 집에 와서 종이접기를 하듯이 지도를 펴고 접었다. 잘 안된다. 지도의 접는 방법이 따로 있었다. 병풍처럼 가로 접기를 지그재그 왕복으로 접고 겉표지가 밖으로 나오도록 접는다. 접을 때는 반듯이 접었던 자리를 접어야 한다.


아래 동영상에서처럼 접고 펴기를 반복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7vIcgfBa_0

두 시간을 같은 것 반복하다 보니 이마에 진땀이 나고 손이 벌벌 떨린다.


‘이것을 왜 해야 되나?’


‘내가 왜 이러나? 카메라 메고 세상 구경하고 글 쓰려했더니....’


다음 주에 선생님을 찾아뵈면 여행 이야기는 하지 말아야겠다.

작가의 이전글 가정주부. 전문 여행인이 되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