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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세연 Feb 25. 2022

타인에 의해 멈추어진 시간

자의로 가장 나 다워지는 시간

내 옆을 흐르던 물이 조금씩 얼어가고 있었다. 

나는 몸이 얼지 않게 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죽을 힘을 다해 흘러갔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몸은 서서히 얼어가고 있었다.     

턱 밑까지 몸이 얼었다. 내 몸이 의지와 상관없이 굳어 가는 것이 두려웠다. 

결국 나는 꽁꽁 얼었고, 자유롭게 흘러 다니던 나는 내 몸 안에 갇혔다.

      

처음엔 공포스러웠다. 이렇게 내 인생이 끝이 날것만 같아서.      

내 옆을 흘러가는 물들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나를 스치며 말했다. 

“ 괜찮아? 어떡해?”


나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어떻게 될지 몰랐으니까. 

하루. 이틀이면 다시 몸이 풀릴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일주일, 한 달이 지나도 내 몸은 점점 더 두텁게 얼어만 갔다. 

이렇게 나는 사라지는 구나. 포기하고 있었다.      


내가 자유롭게 흐르던 시절, 내 위로 떨어졌던 낙엽이 있었다. 

나는 처음에 그 낙엽들이 싫었다. 그래서 그 낙엽들을 떨구기 위해 더 빠르게 흐르던 때도 있었따. 내가 힘들게 흘러가는 길에 무임승차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낙엽을 온전히 데리고 다니던 친구들은 얼지 않았다.      

종이보다 가벼웠던 그 낙엽이 멈춰선 곳은 그 낙엽의 무게로 그 얼음을 뚫고 흘러갔다. 부러웠다. 진작 나도 마음을 예쁘게 쓸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다 끝난 거라 생각하고 포기하고 있을 즈음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상했다. 내 몸이 조금씩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는 몸이 조금씩 움직일 수 있게 말랑말랑해졌고, 어느 순간 탁 풀어졌다. 다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몸이 자유롭게 움직여지자 냇가, 강을 지나 얼음이 되지 않고 흘러 내 앞을 지나갔던 친구들을 바다에서 만났다. 그 친구들은 바다에 나타난 나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떻게 왔어?”

나는 그 시간을 ‘그냥 온전히 버텼노라’ 말했다. 그들은 나에게 속사포 같이 수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얼음일 땐 어떤 느낌이야?”

“어땠어?”

그저 흘러갔던, 나를 잡아주지 못했던 그 친구들이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엔 흘러가는 너희들이 부러웠어. 이렇게 멈춰서고 도태되어 사라질까봐. 그런데 가만히 있으니까. 내가 보이더라. 내가 어디에 멈춰 서 있는지. 뭘 하고 싶은지. 어떻게 살고 싶은지. 생각할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었어. 선택 받았던 시간이라고 생각해.” 

그러자 내 친구들은 나를 부러워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함께 다음 겨울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 친구들은 모두 얼음이 될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에게 다시 얼음이 되고 싶은지 묻는다면, 다시 경험을 해보고 싶다고 말하고 싶다. 그 때는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미 경험해봤으니까. 그 때는 누릴 것이다. 온전히 멈춰 서 편안히 쉬는 그 귀한 시간을.

그리고 이왕이면 그 시간들을 기록할 것이다. 


잊지 않기 위해.  

두려워하는 친구들이 있다면 손을 잡아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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