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신문
《뿌리 자세》
인간의 삶에는 ‘생명체로서의 살아 있음과 주체로서 살아감’이 어우러져 있다. 라틴어로 휴먼(human·인간)과 휴물리스(humilis·낮다)의 어원은 휴무스(humus·땅)라고 한다. 이것은 삶의 뿌리에 생명을 이어 가기 위한 가장 원초적인 자연 교감이 땅에 씨를 뿌리고 먹거리를 거두는 행위임을 알려준다.
뿌리는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지금까지의 자신을 존재하게 해준 것, 앞으로 존재하게 해 주는 것’ 아닐까? 어떤 결과를 초래한 직간접적인 원인을 뛰어넘어 아주 구체적이고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면서 힘을 발휘하는 것이라는 의미 말이다.
뿌리가 없는 것이 있을까? 지구상에 있는 모든 사물이든 생물이든 뿌리가 없는 것은 없다.
138억 년 전 빅뱅은 우주, 우리 은하계, 태양계 생성의 근본 원인이고 미래의 열쇠를 간직하고 있다. 그래서 과학자들은 그 비밀의 문을 열어 당면한 한계를 극복하고 새로운 미래를 꿈꾸려고 끊임없이 연구한다. 이것은 과학적 난제를 해결하려는 직업적 소명임과 동시에 인류를 포함해 모든 존재의 뿌리를 알고자 하는 본능적 탐구이기도 하다.
뿌리는 우리에게 매우 소중한 가치다. 누구든 어떤 생물도 근본이 없이 생겨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 속담에 “뿌리가 다르면 줄기가 다르고 줄기가 다르면 가지가 다르다”라는 말이 있다. 무엇이든 뿌리가 기본이고 그에 따라 모든 현상과 결과가 달라짐을 말하는 것이다.
나무의 뿌리는 땅속의 영양분을 줄기로 옮기는 기초 작업인 동시에 균형 잡힌 삶을 위한 필사 노력의 결과물인 것을 곧 깨닫게 될 것이며, 나무는 넘어지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치열하게 살아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한 송이 꽃을 피우기 위해 기꺼이 고통이 되고 눈물이 되고, 세상을 밝히는 한 자루의 촛불이 되는 삶을 사는 성자(聖者)의 일생과도 같은 궤적을 나무의 뿌리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간에선 흔히 ‘근본(根本)이 있다, 없다’라는 말을 하기도 하는데 근본이란 뜻 그대로 뿌리가 있는 나무라는 뜻인바 근본이 있는 집안이나 사람을, 또한 그 사람의 자라온 환경이나 혈통을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기도 한다.
‘칸다 아사나(kanda asana)’ 즉 ‘뿌리 자세’는 앉은 자세에서 양 발바닥을 뒤집듯이 한껏 당겨서 몸통 쪽으로 향하게 하는데, 이때 양 무릎은 바닥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한다. 칸다(kanda)는 뿌리, 구근, 결절을 의미한다. 육체 내에 잠자고 있는 에너지 쿤달리니는 이곳 칸다나 나디(기의 통로)에 깃들어 있다고 한다. 이 자세는 무릎, 발목 관절과 엉덩이 쪽 근육의 경직을 완화시켜 주며 복부를 자극해 소화력을 증진시키는 효과도 있다. 특히 이 자세는 성(性) 에너지를 회복하는 동시에 성적 욕망을 제어하는 브라마차리아에 접근하는 자세이기도 하다.
뿌리는 어떻게 될지 정해지진 않았지만, 그 무엇을 향한 첫 움직임에서 뻗어 나온다. 오랜 시간이 지나 알기 어렵다고 해서 가볍게 지나칠 것은 아니다. 뿌리를 모르고서 지금과 여기를(now&here) 말할 수 없고 미래를 향한 돛을 올릴 수 없다. 그러므로 나와 우리를 키워낸 뿌리를 찾는 데 인색해서는 안 될 일이다.
얼마 후면 가을 추수가 시작되고 햅쌀과 햇과일로 조상들께 감사의 마음으로 차례를 올리는 한가위, 중추절(仲秋節)이라고 일컫는 추석이 온다. 서양의 명절과 다른 점은 단순히 먹고 즐기는 축제가 아니라, 인간의 도리를 다하여 후손이 경건하게 조상의 뿌리를 되새기는 날이라는 점이다. 나역시도 후손들에게 존경
받고 자랑스럽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으나, 그렇지 못할지라도 최소한 부끄럽지 않은 모습만이라도, 맹자가 말한 수오지심(羞惡之心)을 잃지 않고, 거창하게는 역사의 심판대 앞에서 추한 모습은 보이지 않아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 정신이 번쩍 나면서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된다.
앞에서 기술한 가족의, 가문의 족보 같은 뿌리도 중요하겠지만 내게 평온함과 평상심을 가져다주는, 내가 세파에 흔들거리거나 좌절하거나 절망할 때, 모든 걸 내려놓고 주저앉고 싶을 때 나를 다시 우뚝 서게 하는 것들은 과연 무엇일까?
우리에게 진정한 뿌리는 무엇일까?
그러한 곳을 향하는 내 마음의 뿌리는 어디에 있을까? 그 뿌리는 누구에게 있을까? 그 뿌리는 어느 기억 속에 있을까? 그 뿌리는 고전의 어느 한 구절 속에 있을까? 어느 말씀 속에 있을까? 어느 절대자에게 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어느 순간에도 절대적 신뢰를 주고받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옆에 있다면, 평생지기가 있다면, 그것이 부모 자식 사이든 부부 사이든 연인 사이든 사제지간이든 친구 사이든 그런 내 마음의 뿌리 하나 단단히 잡고 있다면, 그런 나를 받쳐주는 뿌리 하나 있다면, 그것은 성공한 삶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그는 이 세상의 어느 누구보다 행복한 사람 아닐까?
그것이 우주에서 지구별로 던져진, 하이덱거가 말한 피투성
(被投性·geworfenheit) 존재의 최대의 행운이며 축복일 것 같다.
그러나 바라지만 말고 기대하지만 말고 나 스스로가 그렇게 되어 보는 것은 어떠할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비록 허상일지라도 그러한 모습을 꿈꾸는 자세가 사뭇 아름답지 않은가?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이 더 아름답다 했거늘.
'뿌리 자세'
뿌리없는 생명체 이 세상에 있을소냐/
거슬러 올라간다 뿌리를 사유하면/
근본을 기억한다는 그 자체가 삶의 통찰/
생명의 근본이며 우주의 본질까지/
'근본있는 인간이로세' 예사롭지 않은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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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의 향기, 디카시로 담다(27)
《뿌리 자세kandasana》
https://naver.me/GtJdHf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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