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마할(TajMahal)》

by 운형 최진태

●울산신문

《타지마할(TajMahal)》


죽은 아내를 향한 사랑이 만들어 낸 위대한 무덤, 떠도는 꿈과 사랑, 영혼이 함께 살아 숨쉬는 곳, 이 위대한 타지마할의 위엄에 눌려 한 여행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제부터 세계의 주민들은 두 개의 계급으로 나누어질 것이다. 타지마할을 본 사람과 그것을 보지 못한 사람으로.”

“타지마할을 방문하는 꿈 없이는 어느 누구도 델리에 살 수 없다.” 인도 작가 니할 싱의 ‘인도의 낮과 밤’이라는 소설의 첫 문장이다. 샤자한(무굴 제국의 황제) 정도는 되어야만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고 여기며 여성 여행자들은 왕비를 부러워한다. 한 상남자는 외친다. “왕비를 잃고 20년 이상 걸쳐 무덤을 만들 정도의 사랑이 아니라면 세상의 남자들이여 아내와 함께 이곳에 오지 말지어다.”

붓다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도록 이야기 했으나 샤자한의 사랑이 없었다면 이토록 아름다운 타지마할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의 번뇌에 빠져 신들린 듯이 건물을 세우고, 그림을 그리고, 시를 짓고, 음악을 연주하는 예술가들을 본다. 성인(聖人)은 사랑을 포기하라 말씀하시고, 현자는 사랑에 빠져 보지 않고서는 인생을 논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대체 어쩌란 말이냐? 그러니 우리가 아름다운 무덤 앞에서 경전과 예술 사이의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위대한 왕 샤자한은 사랑하는 왕비 뭄타즈 마할이 14번째 아이 출산 중에 사망하자, 왕비의 소원대로 왕비만큼 아름다운 묘지를 세우기로 결심한다. 그리하여 22년에 걸쳐 마침내 세계 최고의 아름다운 건축물을 만들게 됐다.

샤자한은 페르시아어로 ‘세계의 왕’이라는 뜻이다. 샤자한(1592-1666)은 1628년 1월 아그라성에서 무굴 제국의 5대 황제로 즉위했다.

모든 아름다움은 완벽한 수학적 비례와 대칭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피타고라스식 전통과 미학 이론이 이곳에서 여전히 빛을 발한다. 물론 이에 더해 ‘나도 모르는 그 무엇(je ne said quoi)’도 첨가됐으리라.

이 건물은 많은 건축 전문가들로부터 ‘섬세한 건축공학의 결정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뤄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건축물’이란 평가 역시 여전히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이 인류가 남긴 가장 완벽한 균형과 대칭의 조화를 이룬 건축물 타지마할. 무덤 중앙에 서면 온 우주가 그곳으로부터 시작되고 그곳은 온 우주의 중심이 된다는 건축물. 한 여인에 대한 사랑의 세레나데가 인류에게 남긴 최고의 건축물로 자리 잡은 타지마할. 연간 수백만 명에 이르는 남녀들의 발길을 끌고 있지만, 그 이유는 단지 타지마할의 시각적 아름다움에만 있지 않다는 것은 자명하다. 그것은 샤자한과 뭄타즈 마할이 남긴 세기의 사랑 이야기가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기 때문이리라. 특히 죽은 아내에 대한 샤자한의 눈물겨운 세레나데는 여인들의 영원한 로망이자 판타지가 됐다.

그러나 아내의 무덤은 백성들을 뼈골 빠지게 하고도 남았을 것이다. 이처럼 백성들에게는 무한한 희생을 강요한 이가 한 나라의 왕이란 점을 생각한다면 이 건축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사람들은 타지마할에 사랑이 있다고 믿으며 앞다퉈 이곳을 찾아오지만 냉정하게 말하면 타지마할에는 사랑이 없다. 오로지 뒤틀린 집착과 이기심과 광기가 있을 뿐이다.

궁궐은 아름다우나 결국은 살아 있는 생명의 원성을 낳게 되었고, 그 사랑이 아름다웠으나 결국은 이기적 독점욕의 발로였을 따름이다. 그러나 오늘도 무심한 사람들은 이 환상의 궁전 앞에서 탄성을 연발하고 있다. 그런 무덤이 지금은 후세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남을 건축물로 평가받고 있다니 지독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황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를 지어 주겠다고 한 왕비와의 약속을 충실히 지켰다. 하지만 황제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만 했다. 황제가 그의 아버지에게서 권력을 찬탈했듯이, 샤자한 역시 국고를 탕진했다는 이유로 반란을 일으킨 그의 아들 아우랑제브의 손에 폐위되고 만다.

그는 아그라성의 감옥인 포로의 탑에 죽을 때까지 유폐됐다. 이 감옥은 야무나 강변을 따라 타지마할과는 지척의 거리에 있었다. 샤자한은 8년 동안 창살문을 통해 아내의 무덤을 바라보다가 숨졌다. 그가 죽은 후에야 아들은 시신만큼은 아내 옆에 안장시켜 줬다.

불후의 걸작품인 타지마할을 바라보며 아내에게로 향하는 샤자한의 흉리가 어떠하였을까? 그리움을 삭이며 말없이 타지마할을 바라보고, 피눈물로 여생을 지새웠을 법하다. 가슴 서늘한 애잔함이 묻어 나오는 장면이다.

세상사의 무상함이란 뜨거운 화로로 날아든 한 송이 눈과 같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타지마할의 러브 스토리가 어느덧 화두(話頭)가 돼 을씨년스런 겨울 하늘에 덩실 걸렸다.


'타지마할'


그대에게 사랑이 무엇인지 묻는다/

아, 슬픈 사랑의 연가여/

풀리지 않는 사랑의 수수께끼여/

대체 그 사랑의 깊이가 얼마 쯤인지/

흘러가는 저 야무나 강물에게 물어볼거나


*울산신문

요가의 향기, 디카시로 담다(36)

《타지마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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