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6월의 애벌레 – 제18화
세 명의 건장한 어깨들이 땅바닥에 쓰러져서 웅크린 한 남자를 각목으로 후려치고 있었다.
태연의 온몸이 굳어졌다. 112가 찍힌 핸드폰 화면 아래 빨간색 발신 버튼을 누르려는 태연의 손가락이 바들바들 떨렸다. 바로 그때, 깡패들의 욕설 섞인 험악한 고함이 태연의 귓가를 때렸다. 애써 침착을 마음속으로 부르며 태연은 빨간색 발신 버튼 화면을 내리고 전화기의 녹음기를 켰다.
“이 벌레 같은 새끼야! 은혜를 원수로 갚아? 너한테는 새꺄! 공기도 사치다! 배은망덕한 짐승 새끼는 숨 쉴 자격 없어!”
쉴 새 없이 각목을 휘두르던 팔이 지쳤는지 폭행범들 중 하나가 잠시 멈췄다. 그러더니 문득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 깡패가 잔뜩 숨죽인 채 모퉁이에 서있는 태연을 향해 다가왔다. “누구야? 거기!” 태연은 바지 주머니에 전화기를 넣고 가드를 올렸다.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긴장이 땀을 토해냈지만 태연은 자세를 취하며 각오를 다졌다. 일단 한 대 맞아 주고 시작하자. 한 놈만 집중해서 패자...
그러자 셋 중 가장 덩치가 큰 녀석이 외쳤다. “됐어! 그냥 가자! 빨리 와!” 어둠 속에서 눈을 부라리며 태연에게 한 걸음씩 가까워지던 깡패는 대장인 듯 보이는 덩치의 말에 이내 몸을 돌렸다. 쓰러진 채 신음하는 남자를 향해 각목을 던지고서 깡패 세 마리는 그대로 폐건물 뒤편 어둠 속으로 도망가 버렸다.
태연은 땅바닥에 시체처럼 누워 몸을 파닥거리는 남자를 향해 달려갔다. “이 보세요. 정신 차리세요.” 피투성이가 된 남자는 기절한 상태였다. 침착하자. 침착하자. 다행히 남자는 숨을 가쁘게나마 몰아쉬고 있었다. 119에 신고를 하고서, 땅을 바라본 채 엎드려 있던 남자의 몸을 돌려 얼굴을 확인한 태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눈을 반쯤 감은 채 피범벅인 상태였지만, 정말로 아주 오랜만에야 다시 보는 얼굴이었지만. 태연은 그가 누구의 아버지인지를 바로 알아챘다. “아... 아니 이런...” 태연은 황급히 남자의 재킷 주머니를 뒤져 전화기를 꺼냈다. 다행히도 핸드폰 화면은 잠겨 있지 않았다. 최근 통화 내역을 열자... 불과 몇 분 전에 보낸 문자 메시지의 상대 이름이 떴다. ‘사랑하는 내 딸. 안이지.’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구급요원이 태연에게 물었다. “어떤 관계시죠?” “아... 그냥 지나가다 우연히...” “아마 경찰 조사 시작되면 상황 진술하셔야 할 텐데요. 우선 방금 보신 걸 저희한테도 좀...” 빠른 목소리로 목격한 내용을 진술한 태연이 안명훈 핸드폰의 발신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다섯 번을 걸도록 이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구급차가 한산병원에 도착하자 사이렌을 울리는 경찰차 한 대가 이미 응급실 앞에 서 있었다.
그 시각. 바 <쁘렘>. 박봉술의 반말 호구조사에 참을성 있게 시달리던 기은석이 남은 칵테일을 마저 한 모금에 비우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죄송합니다. 전 그럼 이만...” “아! 한 잔 더 안 하고? 내가 사려고 했는데... 그래요. 뭐. 그럼 조심히 잘 들어가고. 다음 주에 첫 정례회가 시작되지 아마? 내 조만간 의회로 한 번 가지. 언제 또 소주 한 잔 꼭 하자구!” 거만함을 기름에 튀긴 듯 한 박봉술의 너스레를 등 뒤로 받으며 계산을 마친 기은석은 이지를 향해 살짝 미소를 남기고 가게 밖으로 나갔다.
시의원 기은석이 앉았던 테이블의 잔을 치우고 자리에 돌아온 이지가 그제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안명훈 부재중 전화 5통. 이지는 무심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고개를 든 이지는 순간 더러운 불쾌감을 확 뒤집어쓰는 기분을 느꼈다. 대머리 뚱보 사이비 기자의 뱀 같은 눈알이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왜 뚫어지게 쳐다보고 지랄이야? 이 변태 새끼야.’라고 할 뻔하다 꿀꺽 삼키고 이지는 싱긋 웃었다. “왜? 제 얼굴에 뭐가 묻기라도...?”
“이제 보니... 아주 낯이 익은데... 눈매가 딱... 혹시 아버지 함자가 어떻게 되시나?” 박봉술의 뱀눈 위로 번뜩거리는 빛이 스쳐갔다. 안이지는 그 뱀 닮은 눈깔을 정면으로 응시하며 대답했다. “저 아버지 없어요.”
“아... 그래? 음... 미안하구만.” 머쓱한 표정의 박봉술이 의자를 뒤로 밀며 일어섰다. “슬슬 들어가 봐야지. 여기 얼마야?”
대머리 뚱보 뱀 놈이 마시던 테이블 자리를 치우려는데 이지의 전화기가 또다시 요란스럽게 진동해댔다. 안 받으면 그냥 말 것이지... 왜 자꾸? 짜증스럽게 혀를 차며 이지가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 뭐야? 니가 왜 아빠 전화를! ...... 뭐??? 뭐라고??? ... 거기 어디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