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by rainon 김승진

내 두 귀는 1970년대 초반에서 노닐고 있다. 청각의 편식이 심한 편이다. 굳이 확장할 생각도 없다.

(가끔 바흐와 텔레만, 헨델... 바로크 음악을 들을 때를 빼곤,) 거의 항상, 70년대 초반 밴드들을 귀에 달고 산다. 레드 제플린, 핑크 플로이드, 딥 퍼플, 유라이어 힙, 위시본애시, 예스, 제네시스, 킹 크림슨, 제스로 툴, 에머슨 레이크 앤 파머. 이 밴드들의 음악만 줄기차게 듣게 된 지가 몇 년째다. 질리지도 않는다. 레드 제플린과 핑크 플로이드는 모든 앨범을 각각 200번 넘게 들은 것 같다.


그런데 초창기 하드록 밴드들 중에서도, 유독 손이 잘 안 가는 밴드가 있었다. 블랙 사바스. 악마 숭배 어쩌고 하는 헛소문 때문은 아니다. (아는 사람은 다 알지만, 블랙 사바스 멤버들은 가톨릭 신자들이었고 그들의 반 기독교, 악마 숭배 누명(!)은 노이즈마케팅이거나 근거 없는 음해였다.)


비슷한 시기의 초기 하드록 밴드들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더 무겁고 거친 사운드 때문이었을까. 하여간 거의 듣지 않았었다. 그런데.


요즘 아주 끌린다. 뒤늦게, 50이 다 되어서야, 50년도 더 전에 나왔던 블랙 사바스의 앨범들을 1집부터 반복 정주행하고 있다. 요새 이 낙에 산다.


빠져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밴드의 역사와 멤버들의 면면에 대해 찾아보고 있다.


토니 아이오미. 블랙 사바스의 왼손잡이 기타리스트.


어려서 목재 공장에서 막노동을 하다 사고로 오른손 중지와 약지를 잘렸다. 기타리스트에게 손가락이란......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여기에서 적절한 접속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다.


그러나? 하지만? 그래도? 아니다.


‘그래서’다.


그/래/서/ 그는 절단된 부위에 플라스틱(나중엔 가죽) 골무를 끼우고 기타를 배우고 연주를 해 나갔다. 주워듣자 하니, 손가락 끝에 골무를 차고 연주했기에 그의 기타 음색은 독특한 것이었고, 이는 블랙 사바스 고유의 사운드를 만들어 내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손가락 대신 골무로 기타 줄을 짚어야 했기에 줄을 누르는 힘이 약했고 그래서 기타 줄을 느슨하게 튜닝했다고 한다. 잘려 나간 손가락은 장애도 상실도 아니었다. 새로운 소리를 빚어내는 ‘설계의 변경’이었던 거다.


역대 최고 기타리스트 TOP-10 안에 반드시 들어간다는 토니 아이오미. 기타를 위해 태어났고 기타에 미쳤던 그에겐 잘려 나간 손가락 일부는 아무것도 아니었던 거다.


손가락이 잘렸네? 근데 뭐?


장애와 장해는 외부가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것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극복하는? 아니다. 역으로 이용하는 힘도 마음속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아닌

‘그래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가 아니라,


'그래서' 삶은 계속되어야 하는 거다.

매거진의 이전글천천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