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by rainon 김승진

위 절제 수술 후, 식생활에 생긴 큰 변화 세 가지.


1. 적게 먹는다... 더 정확히는 적게 먹을 수밖에 없다는 것. 위의 3분의 2를 잘라냈으니, 당연한 일.


2. 먹을 수 있는 게 아직은 거의 없다... 두부, 계란, 흰살생선뿐. 그래서 꿈에서 먹는다. 치킨도 삼겹살도 라면도 김치도, 지금으로서는 그림의 떡이다.


이 두 가지는 못 견딜 듯, 견딜만할 듯 괴로움이지만...


한 가지는 오히려 좋더라.


3. 천천히 먹는다는 것.


음식을 머물게 하며 잘게 부수는 위가 거의 싹둑 날아갔으니, 그 역할은 치아가 대신할 수밖에 없다. 수술 후 5일 차에 첫 식사로 미음 한술을 뜰 적에, 간호사님은 신신당부를 하셨었다.


“이제 앞으로 평생, 입에 넣는 모든 것은 50번 이상 씹어야 합니다. 죽도, 물도 꼭꼭 씹어서 드셔야 해요.”


오래 씹어야 하니, 천천히 먹을 수밖에 없다. 천천히 먹게 되다 보니, 그리고 조금씩 먹다 보니...


천천히 걷게 된다. 짧은 다리의 보폭을 보완하느라 꽤 걸음이 빨랐던 내게 온 가장 큰 변화다.


천천히 먹고, 천천히 마시고, 천천히 걷게 되니... 천천히 움직이고 천천히 생각하게 된다. 호흡도 느려진다.


모든 것이 느려지니 마음이 가벼워진다. 욕심도 두려움도 줄어드는 느낌.


그래서


암(癌)은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물과 인간이 그러하듯.


하지만, 라면에 김치를 먹지 못하고, 치킨과 삼겹살은 1년을 더 참아야 하고.


그래서


암(癌)은 꼭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세상 모든 사물과 인간이 그러하듯.


하지만. 치킨과 삼겹살과 라면이 환장하게 그리운 지금에도, 자주 떠오르는 건,


수술 후 닷새를 굶고... (아니지. 엿새다. 수술 전날부터 금식했으니.)


처음 입에 떠 넣었던 미음의 맛이다. 사는 동안 내가 겪어본 최고의 맛이었다.


그 미음보다 더 맛나는 건 다시 만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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