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화
치파오의 본명은 최영님이었다. 순자가 치질 수술을 받느라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를 임시로 돌보게 된 간병인이었다. 그녀는 간병인 협회를 통해서 왔다. 아내는 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임시 간병인이라지만 최소한의 면접은 필요했다. 나에 대한 아내의 애정을 확인하는 하나의 사례였다. 아내는 일일 파출부를 구하듯 성의 없이 일을 진행했다. 치파오 입장에서는 나를 간병하게 된 일이 더없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한국에 연고가 없는 중국 동포 간병인이 호스피스 병동이 아닌 가정집의 개인 간병을 하게 된 것은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나는 그녀를 치파오, 라고 불렀다. 속으로 나 혼자 불렀기 때문에 그녀는 모르는 사실이었다. 누구라도 그녀를 보면 이름보다 치파오가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녀가 나를 간병하러 온 첫날 그녀의 손에는 커다랗고 네모난 파우치가 들려 있었다. 몸매를 한껏 드러내기에 좋은 치파오를 입고 있었다. 색상은 겨자색이었고 꽃무늬 천이었다. 대개 간병인들은 일하기 간편한 복장을 하기 마련인데 의상부터가 평범치 않았다. 게다가 연두색 아이섀도로 요란하게 화장을 하고 엉덩이까지 과장되게 흔들며 걷는 폼이 여간 구경거리가 아니었다.
그녀는 오자마자 파우치를 열어젖히고는 번들거리는 땀을 닦아내느라 정신이 없었다. 그녀는 조금도 내 시선을 의식하지 않았다. 그녀 앞에서 나는 생명 없는 존재 같았다. 그녀뿐 아니라 모두가 날 그렇게 대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치파오는 파우치에 부착된 거울을 통해 번들거리는 땀을 화장 솜으로 찍어 낸 후에 검고 긴 머리를 손가락으로 빗으며 돌돌 말아 핀으로 고정했다. 치파오는 그렇게 내 집에 오자마자 자신부터 돌봤다.
그녀는 내게 아는 척이나 인사도 없이, 엉덩이를 크게 흔들며 창문을 가리고 있는 커튼을 밀어젖혔다. 활짝 열린 창문으로 낯설기만 한 공기가 새어 들어왔다. 그녀는 내게 묻지도 않고 커튼을 열더니 시끄럽게 청소기를 돌리며 구시렁거리기 시작했다. 일하면서도 입을 잠시도 다물고 있는 법이 없었다. 방안에 얌전히 고여 있던 먼지들이 그녀의 수다와 함께 일렁였다.
나는 저항 없는 시선으로 그녀의 움직임을 좇았다. 그녀가 움직일 때마다 찢어진 치파오 사이로 허벅지가 비쳤다. 건강해 보이는 홍차색이었다. 내 시선을 의식한 것일까. 그녀가 나를 힐끔 돌아보았다. 나는 뭔가를 훔쳐보다 들킨 사람처럼 얼른 눈을 딴 곳으로 이동했다. 다시 내 눈은 그녀에게로 향했다. 주름살처럼 여러 겹으로 진 쌍꺼풀과 광대뼈보다 낮은 코, 톤이 높아 경망스러워 보이는 음성…. 뭔지 모를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