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화
저는 지금 당신 같은 사람이 하는 일을 대신하는 로봇을 연구하는 박사였단 말을 하려는 겁니다. 지금은 이 꼴이 됐지만 말입니다. 의학적으로 루게릭병이 유전이다, 아니다 명확히 판명되진 않았지만, 유전이 될 가능성 때문에 늘 불안했습니다. 그러니 제가 아버지를 보고 싶지 않았던 심정을 이해하시겠습니까? 미래의 저를 보는 것 같았거든요. 제가 죽기 살기로 연구에 매달린 까닭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당신에게 신세 한탄을 하는 게 아닙니다. 내게 범한 무례를 멈추어 달라는 말을 하려는 겁니다. 환자는 어린아이도, 어린 학생도 아닙니다. 그러니 더럽다고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안 씻는 것이 아니라 못 씻는 겁니다. 환자도 인격이 있습니다.”
공감을 얻으려 치파오를 바라보았지만, 그녀는 자기 일에만 몰두했다. 약간의 실망을 뒤로하고 나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우우… 연구에 성공할 가능성은 있었냐고요? 물론입니다. 모두 제 연구에 기대를 걸고 있었습니다. 성공시킬 자신도 있었습니다. 왜냐고요? 저는 그간 살아오면서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었으니까요. 전 자만했습니다. 제 머리로 해내지 못할 게 없다고 확신했으니까요. 그런데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냐고요? 스트레스였습니다. 언젠가 저도 아버지처럼 병이 진행될지 모른다는 불안 때문에…. 하루빨리 간병인 로봇을 연구해 내기 위해 밤잠을 자지 않고 연구했습니다. 얻는 것은 더디지만 잃는 것은 순간이었습니다. 사실은 순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순간의 결과에는 교만이란 원인이 있었으니까요. 교만이 저를 순간으로 치닫게 한 겁니다. 그러니 제가 모든 것을 잃은 건, 교만 때문일 겁니다.
쓰러지던 날 몹시 피곤했습니다. 모처럼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야겠다는 생각에 일찍 집에 들어갔죠. 전 늘 연구에 미쳐 있었기 때문에 평소 아내를 혼자 있게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아내는 늘 웃는 낯으로 날 대했지만, 행복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저는 아내를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병이 진행될까 봐 불안했는지도 모릅니다. 저는 아내와 함께 있어 주지 못한 대신 보석을 자주 선물해주곤 했습니다. 제가 아내를 사랑한 방법이었습니다. 그날도 제 가방 속에는 아내에게 선물할 목걸이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집에 없더군요. 저는 아내가 들어올 때까지 잠시 눈을 붙일 작정으로 침대에 몸을 묻었습니다.
깨어나 보니 병실이었습니다. 의사는 깨어난 제게 루게릭병에 관해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상세한 설명까지는 필요 없는데 말입니다. 그 병이라면 누구보다 제가 더 잘 아니까요.
쓰러지기 전 전조 증상이 있었냐고요? 평소 약간의 이상 증상은 있었습니다. 볼펜을 쥐고 있는 손에 힘이 빠지는 수전증 같은 현상이었죠. 뭔가를 부주의하게 잘 떨어뜨리기도 했습니다. 발걸음이 무거울 때도 있었습니다. 연구실에 앉아 있을 때 이따금 머리가 깨질 듯 아팠습니다. 그때마다 몸살감기약을 먹었죠. 자고 일어나면 거뜬해졌습니다. 그래서 피곤한 탓으로만 생각했습니다. 늘 불행이 덮칠까 봐 불안해했으면서도 불행이 저와는 멀게 느껴졌습니다. 전 너무 젊었으니까요.
전 뇌졸중 증상을 동반하며 쓰러졌고 루게릭병은 빠른 속도로 진행됐습니다. 제 의지로 움직일 수 있는 건 눈동자뿐입니다. 제 연구에 기대를 걸었던 사람들이 저를 차츰 잊어갔습니다. 제 존재가 아침 이슬 같았습니다. 전 좌절했습니다. 희망이 잃으면 마음이 제일 먼저 무너지는 법이죠. 전 우울증까지 앓게 되어 극복 의지마저 잃은 지 오래됐습니다. 그러니 저를 가만 놔두세요. 우우우….”
“고개 똑바로! 오-올-치.”
우우우, 거리는 내 말을 치파오는 알아듣지 못했다.
치파오는 하루 세 번 내게 칫솔질을 했다. 내 몸을 가만두지 않는 치파오가 몹시 성가셨다. 나는 성난 들개처럼 치파오의 손을 물어뜯었다.
“아―.”
치파오가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물린 손을 그러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