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파오

제5화

by 김경숙

나는 입에 물고 있는 거품 치약을 치파오의 얼굴에 뱉었다. 치파오가 내 등을 후려쳤다.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물린 데가 몹시 아픈지 울다 웃는 표정까지 지어가며…. 그 모습이 가엾게 느껴졌다. 순자는 한 번도 가엾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었다. 순자는 늘 내게 깍듯했다. 늘 내게 예의를 갖췄다. 뭐든 내게 묻고 행동했다. 교수님, 블라인드를 내릴까요? 티브이를 켜드릴까요? 어떤 채널에 고정해 드릴까요? 소리는 적당한가요?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내게 물었다. 내가 대답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묻고 행동했다. 순자의 질문은 기계 칩에 저장된 반복된 언어 같았다.

아내도 가끔 내 방에 들어왔다. 나를 보고 한숨 따윈 쉬지 않았다. 좀 어때요? 라며 고개를 조금 숙인 채 잔잔한 음성으로 묻곤 했다. 좀 지루한 질문이었다. 나는 대답 대신 아내를 바라보며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아내는 나와 눈을 맞추지도 않았고 내 손을 잡아 주지도 않았다. 다소곳한 아내는 잘 다듬어진 석고상처럼 앉아 있기만 했다. 창문을 반쯤 열고는 무료한 시선으로 밖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누군가로부터 전화가 걸려 오면 침착한 톤으로 전화를 받았다. 조금 상기된 표정을 짓고서 몸을 의자에서 일으켜 세워 방안을 이리저리 어정거리며 통화했다. 조금 꾸민 듯한 목소리였다. 내가 아내와 처음 데이트할 때도 아내는 그런 목소리를 내곤 했다. 통화가 끝나자 아무런 미안함도 없는 표정으로 내게 다가와 속삭였다.

“어떡하죠? 당신을 두고 다녀와야 해서. 몇 개월간 외국에 나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어쩐다지. 이런 상황에 순자까지 수술을 받게 됐으니. 수술받지 않으면 안 될 만큼 아주 심해진 모양이에요. 당신을 위해 임시 간병인을 구해야겠어요. 서두를게요. 며칠만 참아주세요. 큰 불편은 없게 할게요. 치질 수술은 아주 간단하니까 곧 순자가 퇴원해서 당신을 돌봐줄 거예요.”

그리곤 아내는 서둘러 출국해 버렸다. 무엇 때문에 가야 하는지 설명해 주지 않았다. 내 방에 손님처럼 다녀가는 아내에게서 낯선 남자의 향수가 맡아졌다. 순자는 치파오가 오기로 한 날 인수인계도 없이 입원해 버렸다. 치파오에게 현관 키 번호만을 달랑 알려준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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