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례언니

길례언니 1

by 김경숙

1년 전 Y 화백의 별세 소식을 전해 듣는 순간, 원한이 내 뼛속까지 파고드는 것 같았다. 깊은 우물 속에 짓눌러놓은 기억들과 지탱해 온 심신이 마른 잎처럼 부스러지기 시작했다. 헛것마저 보였다. 요양차 제주도로 내려간 것도 그 때문이었다. 연고가 없는 제주 생활은 섬처럼 설었다. 제주도에 내려간 지 1년 만에 Y 화백의 1주기 추모전을 관람하기 위해 상경하는 길이다.

기체가 활주로를 박차고 떠올랐다. 창공에 떠 있는 구름은 수국꽃 같았다. 수국꽃은 트럭 뒤로 피어오르는 매연처럼 회색빛이었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은 구름이 산악빙하처럼 뭉쳐 있었다.

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으면 하늘을 날 수 있을까요? 동화책 속에서는 아이들이 구름으로 만든 빵을 먹고 하늘을 날더군요.

내 곁에 앉은 노파가 창문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강인한 음성이었다. 지그시 누른 듯한 노파의 시선이 창 쪽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언뜻 보기에 노파는 늙은 여배우 같았다. 나이를 초월한 원색 무늬 옷을 입고 있었으며, 베로 만든 쓰개처럼 머리와 얼굴을 스카프로 감싸고 있었다. 그뿐만 아이라 강렬한 햇빛을 보호하는 커다란 색깔 안경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린 듯한 가는 눈썹과 붉게 칠한 입술 외에 노파의 얼굴은 노출돼 있지 않았다. 까마득한 먼 과거 속을 바라보듯 구름을 바라보며 일면식도 없는 내게 묻지도 않은 말을 하고 있었다. 노파의 음성은 느리면서도 또렷했다. 나는 잠자코 앉아 듣고 있었다. 들려왔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길례 언니는 흰 수국꽃을 머리에 꽂고 다녔답니다. 수국꽃은 구름빵 같았죠. 같은 동네에 사는 언니였어요. 미친년이 지난간다! 미친년이 지나간다! 아이들이 귀찮게 따라다니며 돌을 던졌어요. 한동안 보이지 않다가도 배가 고프면 모습을 드러내곤 했어요. 그때마다 철없는 아이들은 짓궂게 놀려댔어요. 동네 사내들이 밥을 준다며 길례 언니를 어디론가 데려갔어요. 괴롭히는 아이들을 무섭게 노려보면서요. 어느 날 보니, 길례 언니 배는 남산만 해져 있더군요. 사내들은 더는 길례 언니에게 밥을 주지 않았어요. 가까이 다가가면 가라고 쉭 소리를 내며 발로 땅을 차고 욕하며 쫓았어요.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답니다. 얼어 죽진 않을까. 나는 길례 언니가 걱정됐어요. 봄이 오자, 아이를 포대기에 싸서 안고 다니는 길례 언니를 볼 수 있었어요. 사람들은 아이까지 앉고 나타난 길례 언니를 불쌍해했어요. 밥을 주려고 다가가자, 아이를 뺏으려고 다가가는 줄 알고 뒷걸음질을 쳤어요. 품속에 있는 아이는 울지 않았어요. 사람들은 뒤늦게 알았어요. 길례 언니가 죽은 아이를 안고 다닌다는 것을요. 포대기 속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은 그 불쌍한 아이를 묻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아이를 강제로 빼앗았죠. 아이가 땅에 묻히는 동안 길례 언니는 몸부림쳤어요. 길례 언니는 풀밭에 돌 몇 개를 쌓아놓은 아이 무덤을 떠나지 못했어요. 여름이 되자 무덤에서 꽃이 피기 시작했어요. 길례 언니는 무덤에서 올라온 꽃을 한 아름 꺾어 머리에 꽂았어요. 꽃은 구름 과자 같았죠. 길례 언니는 아이가 꽃으로 환생한 것으로 생각했던 것일까요. 해맑게 웃으며 길례 언니는 아이처럼 폴짝폴짝 뛰면서 어디론가 가버렸죠. 그 후 길례 언니를 보지 못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