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례언니5
자네 그림은 석채 대신 전복 껍데기를 으깨서 썼지. 작가가 말하지 않으면 감정가들도 구분하기 쉽지 않은 재료였지. 작가 자신만 알아볼 수 있는 재료였어.
내가 애써 밝히려고 노력하지 않은 부분이었다. 위작이라는 것을 스스로 밝힐 수 있는 유일한 단서였다. 최 사장은 지금 돌려서 그 말을 하고 있었다.
최 사장은 여관에서 자겠다는 날을 끌고 옹색한 자신의 살림집으로 끌고 갔다. 그도 나와 같은 홀아비 신세였다.
새벽부터 신작로를 달리는 배달 기사처럼 최 사장은 일찍 일어나 나를 깨웠다. 나는 최 사장이 단골로 정해놓은 식당에서 설렁탕으로 아침을 해결했다. 최 사장이 화방 문을 열고 일할 준비를 했다. 화방은 바람벽 없는 들판처럼 서늘했다. 나는 커피로 정신을 맑게 한 후 어슬렁거리며 삼각지 로터리까지 걸어 나와 지하철로 들어갔다. 시청역에서 내려 덕수궁에 도착했을 때는 한낮이었다. 돌담길을 따라 걷다 보니 서울시립미술관 푯말이 보였다. 단풍잎을 밝으며 한적한 길을 걸어 올라갔다. 생각해 보니 올 때마다 단풍잎은 계절과 상관없이 노랬던 것 같다. 미술관 앞에서 관복 입은 수문장들이 교대하느라 모여 서 었었다. 그들을 지나쳐 미술관 안으로 들어섰다. 입구에서 메인 작가들의 연보를 훑다보니 느닷없는 서글픔이 밀려왔다. 평생 같은 길을 걸어왔으면서도 남의 작품을 본뜬 위작 작가라는 꼬리표만 달게 된 황량함 때문이었다.
Y 화백의 전시실은 2층에 있었다. Y 화백의 그림은 미로 벽 사이 레일 조명을 받고 있었다. Y 화백의 그림에서는 유화물감 냄새가 진하게 났다. 뱀을 왕관으로 두른 소녀 앞에 발이 멈췄다. 뱀을 싫어하는 나로서는 오래 머물러 보고 싶지 않았지만, Y 화백의 그림 앞에서는 어떤 그림도 쉬이 발이 떼어지지 않았다. 종아리 부분이 스멀거렸다. 꽃단장한 뱀이 소녀의 몸을 꿈틀거리듯 휘감고 있었다. 갑자기 기내에서 만난 노파의 말이 떠올랐다.
길례 언니가 떠난 뒤 아이의 무덤에서 뱀이 나왔어요. 잡아 죽여도 끊임없이 뱀이 기어 나왔죠. 가까이 갔다가 뱀에게 물려 죽은 사람도 있었어요. 그 뒤 아무도 아이 무덤 곁에 얼씬도 하지 않았죠. 사람들은 아이가 뱀으로 환생한 거라고 했어요. 길례 언니가 뱀이 되어 아이의 무덤을 지키는 거라고도 했어요. 사람들은 아이의 무덤을 뱀 밭이라고도, 꽃밭이라고도 했어요. 뱀 밭은 언제나 꽃이 만발해 있었어요. 그 예쁜 꽃밭은 뱀이 우글거리는 상상이 되지 않을 만큼 아름다웠죠.
전시관을 돌아보았다. 혹시 노파가 와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기내에서 내리기 전 목적지를 밝혀둔 기대 때문이었다. 전시관은 한산했다. 카메라를 메고 서 있는 남자와 젊은 부부뿐이었다. 여자는 임신했는지 배가 불룩했다. 박음질이 잘돼 어깨선이 잘 빠지고 소재가 도톰한 임부복을 입고 있었다. 나는 그 고급스러운 임부복을 바라보며 노란 원피스가 떠올랐다.
추앙.
사십오 년간 짓눌러 감추어 온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추앙은 내가 탄 헬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