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레언니6
사십오 년간 짓눌러 감추어 온 이름이 불쑥 튀어나왔다. 추앙은 내가 탄 헬기에 오르려고 기를 쓰며 매달렸다. 나는 그때, 그토록 악착같이 매달리는 추앙이 지겨웠다. 나는 추앙을 사정없이 밀쳐냈다. 그때 추앙의 배도 저 여자처럼 불러 있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있을 때 마음과 떠날 때 마음이 그토록 다르고 변덕스러웠다. 조금 전까지 서 있던 젊은 부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헛것이 보였던 것일까.
나는 Y 화백의 베트남전쟁 기록화 작품을 지나 소녀상 앞에서 발을 멈췄다. 노란 원피스를 입고 머리에 수국꽃을 꽂고 있는, 내가 위작한 작품이었다. 제목은 ‘길례 언니’였다. 머릿속이 번쩍했다. 나는 기내에서 노파가 들려준 길례 언니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그 이름이 나와 연관된 것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노파가 기내에서 들려준 길례 언니와 Y 화백의 그림 속에 길례 언니가 동일 인물이란 생각이 왜 이제야 듣 것일까.
나는 통화 버튼을 눌렀다. 통화음이 울리는 휴대전화기를 든 채 전시실을 나왔다. 항공 발권 실무자인 친구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올라올 때 탔던 비행기에 내 옆 좌석 탑승자 명단을 확인해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다급하게 묻자, 친구는 원래는 알려줄 수 없는 비밀이라며 내 옆 좌석은 공석이었다고 확인해줬다. 내가 다시 확인해보라고 재촉하자 친구는 확실하다고 말했다.
미술관에서 돌아와 최 사장 화방 문을 열었을 때 어제 시각과 같은 저물녘이었다. 나는 다우닝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헛것을 본 것이라고 치부해버리기엔 노파의 음성과 모습이 너무 선명했다. 나는 길례 언니 이야기를 최 사장에게 했다. 노파의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정신 나간 취급을 받지 않고는 설명할 방법이 없어서였다. 최 사장은 표구 작업을 하다 말고 면장갑을 빼며 말했다.
미술관에 가서 미친 여자라도 본 겐가? 예전엔 그런 여성들이 많았지. 시골에 가면 한둘은 있었으니까. 미친 여성들이 유난히 많았던 이유를 생각해 본 적 있나? 못 먹어서 미친 거라면 남자들도 미쳐야 하는데 유독 여자들만 미쳐 돌아다녔지.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우리나라가 일본 식민지였더군. 위안부로 끌려갔다가 살아 돌아온 여성들이었던 거지.
나는 용수철처럼 일어나 화방 문을 밀고 밖으로 나왔다. 삼각지 골목부터 큰길까지 뛰었다. 길가에 있는 상점 안으로 들어가 노란 원피스가 있으면 아무거나 달라고 했다. 차도로 서둘러 나와 손을 흔들자, 택시가 급하게 급정거했다. 뒤차가 날카롭게 경적을 울리는 사이 나는 택시 문을 열고 차에 오르며 말했다.
서울시립미술관으로요. 아니, 아닙니다. 일본 대사관 앞으로 가주세요.
베트남 전쟁 때, 문화공보부가 화가 열 명을 베트남전쟁 기록화를 위해 맹호부대에 파견했었다. 그때 나도 Y 화백을 따라 베트남에 지원했다. 내가 Y 화백의 작품을 모작하기 전이었다. 위험한 전쟁터라 나 같은 삼각지 작가도 지원할 수 있었다. 나는 Y 화백을 동경했다. 그래서 Y 화백을 따라 전쟁터까지 갔다. 베트남에 한국 군인들을 위한 위안소가 사이공 시내에 있었다. 그곳에 베트남 위안부들이 끌려와 있었다. 허벅지를 드러낸 짧은 치마를 입고 누군지 분간할 수조차 없게 짙은 화장을 한 채 담배를 물고 있었다. 내가 추앙을 만난 것도 사이공 시내에서였다. 제정신을 가지고 전쟁 기록화를 그려낼 수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흥청거렸다. 추앙을 끌어안았다. 까무잡잡하고 작고 마른 추앙은 예뻤다. 추앙은 인기 있었다. 너도나도 치근댔다. 추앙은 사내들의 장난감이었다. 주는 술을 억지로 마셨고 토했다. 울었고 화장이 지워졌다. 반항하는 날은 옷이 찢겼다. 내게는 삼각지에서 그림을 그려주고 번 돈이 있었다. 나는 그 돈을 포주에게 줬다. 나는 추앙을 독점했다. 추앙에게 나는 은인이었다. 추앙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했다. 추앙도 위안부였다. 좀 다르다면 장교들이 드나드는 곳에서 포주가 돈을 받고 파는 위안부였다. 모두 끌려오거나 팔려 온 소녀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