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례언니

길례언니7

by 김경숙

Y 화백은 베트남 위안부를 보며 미쳐서 돌아온 길례 언니를 떠올렸던 것일까? Y 화백이 길례 언니를 그린 연도가 베트남 파견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다음 해였다. Y 화백은 같은 얼굴의 길례 언니를 연작으로 그려 전시했다. Y 화백은 길례 언니 작품을 팔지 않았다. 나는 전시회에서 본 길례 언니를 위작해 팔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내가 위작한 그림은 위안부 소녀였던 것이다. 살아 돌아왔는데도 고향마저도 품어주지 않은 길례 언니였다. 그런 길례 언니를 나는 위작해 삼각지 화방에 팔았다. 그 가여운 길례 언니를 돈을 받고 팔았다.

길이 막혔다. 택시에서 내린 뒤 뛰었다. 광화문에서 일본 대사관까지 뛰었다. 소녀상이 있는 철거 농성장까지 뛰었다. 숨이 찼다.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엎어지듯 당도했을 때 길례 언니는 황동 옷을 입고 앉아 있었다. 황동으로 된 무명 저고리와 치마를 입고 앉아 있었다. 숱 많고 검던 긴 머리는 단발이 돼 있었다. 길례 언니를 보는 순간 속상했다. 속상해서 울분이 솟구쳤다. 무명옷을 벗기기 위해 손톱으로 긁어 팠다. 몸에 붙은 무명옷은 떼어내려 해도 떼어지지 않았다. 갑옷처럼 단단한 황동 옷은 길례 언니와 한 몸이 돼 있었다. 나는 노란 원피스를 길례 언니에게 입혀주고 싶었다. 길례 언니 배가 불룩했다. 길례 언니가 추앙 같았다. 나는 추앙의 배를 손톱으로 긁었다. 아이가 배 속에서 죽은 것 같았다. 추앙의 배 속에서 썩은 냄새가 났다. 나는 휴대용 칼을 꺼냈다. 아이를 꺼내 묻어줘야 했다. 내 아이를.

주변이 웅성거렸다. 나를 찍는 소리에 눈이 부시고 시끄러웠다. 누군가 내 몸을 통제했다. 누군가 내 신체를 억압했다. 나는 이성을 잃지 않으려고, 내 신체를 굴복당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나약하게 붙들렸다. 나는 양팔이 결박된 채 길례 언니를 향해, 추앙을 향해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미안합니다. 미안합니다. 사죄합니다. 사죄합니다.


나는 구치소에 감금돼 철장 안에서 잤다. 서울에 아는 연고가 없는 관계로 최 사장에게 연락했다. 경찰은 최 사장을 보고 몇 가지 신원 확인을 한 뒤 나를 풀어주었다. 나를 정신 나간 행인의 짓거리로 판단한 모양이었다. 최 사장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최 사장은 늘 결정적인 순간에 침묵했다. 최 사장은 자신의 차에서 내 짐 가방을 꺼냈다. 내가 전화로 미리 부탁한 거였다. 재료까지 구해 넣었는지 가방이 불룩했다. 화방 문을 잠그고 나왔을 것이다. 내가 아는 한, 최 사장은 집안 대소사를 제외하고 화방 문을 닫은 적이 없었다. 또 신세를 졌다. 나는 속마음과는 달리 멋없게 내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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