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전 제가 근무하는 상품중학교가 개교 50주년을 맞아 여러 가지 기념행사를 했습니다. 행사의 하이라이트는 동창들이 모여서 기념식수를 하는 것이었는데요. 기념식수야 일반적인 행사에서도 많이 하는 것이라 뭐 특별한 것도 없었겠지만, 선배들이 후배들에게 남겨주고 싶은 것이 나무라는 것이 인상 깊었습니다.
먼 옛날에도 학교를 만들면 나무를 심었겠지요. 그래서 여주의 오래된 나무들을 찾아다니다 보면 학교의 나무들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옛 학교에 많이 심어진 나무는 향나무입니다. 이는 유교적 풍습과 관련이 있습니다. 요즘 학교는 수업이 이루어지는 공간이라면 조선시대 학교는 수업하는 강학 공간 이외에. 유교 성현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이처럼 제사가 필요한 서원 혹은 향교 등에는 향나무를 심어 특별히 가꾸어왔습니다. 고목 향나무 줄기에서 향내가 강한 속 부분을 작은 토막으로 잘라내 베로 싸서 보관해 두었다가 제사를 지낼 때면 향나무 토막을 얇게 깎아내어 불씨 담은 향로에 올려 사용했다고 합니다.
여주 교동에 있는 여주향교에는 이름과 묘하게 어울리는 멋진 향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향교는 조선시대에 공립학교로 지금의 중고등학교 수준의 학교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세종중학교에 근무할 때 학교 주소가 교리라고 되어있는데 왜 동네 이름이 교리인지 생각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가까이에 여주향교가 있다는 걸 알고는 아 그렇구나 한 적이 있습니다. 많은 지역에서 교동, 교리, 교촌이라는 이름을 가진 동네는 근처에 향교가 있는 경우입니다.
여주향교는 원래 상리 마암(馬巖) 근처에 건립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타버린 후 1685년(숙종 11) 여주읍 홍문리에 다시 건립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주변 주민이 자주 괴질에 희생되고 또 지세도 상서롭지 못하다는 의견이 있어 현재의 위치인 교동으로 이사하게 되었습니다. 학교의 위치도 무덤의 위치만큼이나 명당이나 좋은 장소를 고려한 거죠.
볕이 잘 드는 나지막한 언덕에 강학하는 공간인 명륜당(明倫堂)이 보이고, 그 뒤로 제사 공간인 대성전(大成殿)이 있습니다. 그 사이에 구부러진 형태로 자리잡고 있는 오래된 향나무가 보입니다.
쭉 뻗은 주변의 큰 나무와 달리 구부러진 향나무를 보니 나이 드신 선생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당시 학생들도 이 나무를 보면서 스승에 대한 존경의 마음으로 옷 매무새를 단정히 하고, 예를 표하지 않았을까 그런 상상을 해 봅니다. 학생들 사이에서도, 학생과 교사간에도 상호존중이 사라져가는 요즘 현실이 떠오르며 여러 가지 생각이 교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