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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이 Aug 30. 2024

여주역사 여행길- 서희 이야기

전쟁의 아픔을 위로하고 평화를 이야기 한 사람들 

학생들과 독도 수업이나 통일 수업을 하다보면, 어김없이 나오는 말이 전쟁으로 해결하면 안 되냐는 이야기입니다. 전쟁을 게임이나 영화로 접한 세대들에게 전쟁만큼 손쉬운 해결 방법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이런 아이들을 탓하기엔 우리나라 역사 교과서나 역사교육의 문제도 있습니다. 교과서나 역사 관련 콘텐츠의 대부분이 평화나 외교 이야기보다는 좀 더 드라마틱한 전쟁 이야기가 많으니까요.      


그런 속에서도 평화적인 해결 방법을 이야기하고, 전쟁의 아픔을 이야기하는 귀한 인물들이 있어 저는 수업 시간에 그분들에 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고 하곤 합니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여주 산북면에 묘소가 있는 서희 선생님과 가정리 지명의 유래가 된 가정 이곡 선생님입니다. 이 두 분 모도 고려시대 인물인데요. 조선시대 역사나 인물은 사극으로 널리 알려진 덕분에 누구라도 잘 알지만, 고려시대 이야기는 잘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물론 서희는 워낙 유명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겁니다. 서희가 거란과의 협상 과정에서 보여준 활약과 성과는 외교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사건으로, 현재 외교부에서도 그의 흉상을 전시하고 있고 그의 이름을 딴 공간이 있을 정도입니다.    

  

외교부 서희 관련 기념물과 시설(출처: 외교부 홈페이지)

서희가 외교무대에 등장한 것은 41살 때로, 그는 982년 송나라에 가서 중단되었던 국교를 정상화하고 귀국하게 됩니다. 이후 서희는 능력을 인정받아 초고속 승진을 하게 되었고, 여러 고위직 이외에 별도로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병관어사(兵官御事)의 직책을 맡기도 합니다.   

   

성종 4년(985) 송 태종이 요를 공격하기 위해 고려에 원군을 청하는 사신을 보내 왔으나, 고려는 이에 대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군사 요청에 불응하게 됩니다. 고려가 당시 그러한 정책을 세운 데는 군사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서희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서희는 송이 요를 압도할 만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는 점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고, 고려가 이들 나라의 전쟁에 섣불리 뛰어들면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판단하였던 것이지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거란과의 협상은 그의 나이 52살 때인 993년(성종 12)의 일입니다. 거란의 80만 대군이 쳐들어오자, 모두들 영토를 떼어주고 해결하자는 손쉬운 방법을 말할 때, 홀로 적진에 들어가 담대하게 협상을 진행하는 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흥미진진하고 감동적입니다. 서희가 고려역사에 끼친 영향은 대단하여 그가 병으로 개국사라는 절에 머물 때 성종은 친히 가서 문병하고 개국사에 시주할 정도였습니다. 57살에 사망했을 당시 임금이었던 목종은 부음을 받고 몹시 애도하고 예식을 갖추어 장사를 치르게 했으며 ‘장위(章威)’라는 시호를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근무하고 있는 상품중학교 근처에 서희 묘가 있어, 서희와 관련한 수업이나 다양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데요. 상품중 학생들과 지역의 예술단체가 협업하여 ‘서희’를 주제로 한 뮤지컬을 제작하고 무대에 올린 경험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직접 대본을 만들었는데, 제가 특별히 언급한 것도 아니었는데, 학생들은 서희를 통해 역사를 제대로 배우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표현했습니다. 다른 한 팀은 서희 선생님을 모셔와 독도 문제를 협상으로 해결하는 내용으로 대본을 구성하기도 했습니다. 역사의 교훈을 통해 현재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들의 생각이 놀라웠습니다. 다음은 학생들의 대본 내용 중 일부 입니다. 

     

서희: (긴장이 풀린 듯잘 해낸 것 같아서 다행이구나

아이 2: 저였으면 그냥 울고 있다가 쫒겨났을 것 같은데요정말 나라를 지키려면 이정도 해야하구나 생각했어요.

서희: (지긋이고맙구나 그런데 너희의 사소한 마음가짐 하나가 나라를 바꿀 수도 있는 것이란다.

짠돌이: (가만히 있다가.. 정말 대단하시더라구용.. 이렇게 소중하게 지켜낸 나라의 역사를 제가 그동안 모르고 함부로 살았다니.. 정말 후회되네요앞으로 정말 역사를 소중히 여기고 열심히 공부해야겠어요.. (다함께 웃는 모습)            

일본이 독도가 한국의 땅인 것을 인정했다네이제 걱정은 안 하여도 된다!

(독도 사람들): !!! 감사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누구입니까?

(서희): 본인은 고려의 서희 장군이라네 어떠한 이유로 이곳에 와서 일본을 설득했네!

독도는 진정한 한국 땅이 되었고일본에서 안전해졌다하지만 아직은 서희 장군으로 인해 세상이 떠들썩하다

(앵커): 그런데 말입니다과연 독도 토론을 승리로 이끈 그 남자는 누구일까요

(사람 1, 2, 3): 서희 장군님 덕분에 독도를 다시 찾아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만 알고 있는 건가?

사람들은 모두 서희 장군님을 궁금해하였고 뉴스에서는 아직도 

서희 장군님과 일본에 토론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뭐 언젠가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이 이야기는 다른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지겠지만 우리는 영원히 기억할 것이다.      

- 상품중 학생들의 대본 내용 중에서- 

상품중 학생들이 서희를 주제로 뮤지컬 대본을 직접 쓰고 공연했다. 


서희 묘는 산북면에 위치해 여주에서 찾아가기엔 좀 멀다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고려시대 무덤 유적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현실에서, 경기도 기념물 36호로 지정된 만큼 문화재적 가치가 있는 곳이라서 꼭 한번 방문해 보기를 권합니다. 특히 가을날 노란 단풍이 물든 나무 사이로 조그만 산을 오르면, 산북면 전체를 한눈에 내려다보는 탁 트인 경치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을 단풍이 한창일 때 서희 묘를 탐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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