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북면 백자리에는 1m 남짓 되는 높이로 쌓아 올린 탑이 있습니다. 보통의 경우 마을신앙을 주관하는 이들이 대부분 남성인 데 비해, 산북면 백자리의 탑고사는 여성들이 주관하는 의한 신앙 행위라는 점에 특색이 있는데요. 언제부터 있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백자리에서는 6·25전쟁 이전까지만 해도 일 년에 한 차례씩 탑고사를 위한 곡식을 미리 마련하고, 그 해 고사를 지낼 아주머니를 뽑아 탑고사를 지내왔다고 합니다.
추수가 끝나고 음력 10월경이 되면 대동계가 열리는데, 그날 탑고사를 위임할 사람을 뽑습니다. 탑에 치성을 드리는 일을 위임받은 여인은 밤에 나와서 두 군데 탑에 가서 마을이 무사하게 해달라고 기원을 합니다. 백자리 탑고사는 부정 탄다고 해서 낮에는 지내지 않고 밤에 지낸다는 것도 특징이 있습니다.
미륵불은 기본적으로 불교 신앙이지만 대중과 친밀한 존재인 만큼 절 안에 존재하기 보다는 바위에 새겨져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주에도 계신리 마애불이나 파사성 상자포리 마애불처럼 바위에 새겨진 것도 있고, 잘 알려지지 않은 골짜기에 있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금사면에는 도곡리와 포초골에 비슷한 형태의 미륵불이 있습니다. 둘 다 고려시대 불상으로 추측되는데요. 모두 문화재로 지정된 만큼 보존상태도 좋고 조각도 훌륭합니다. 안내판에 나와 있는 설명을 보면 여러 가지 조각 양식이나 특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런 불상을 볼 때면 그 내용을 일일이 대조하며 불상을 보기보다는, 미륵불의 표정이나 손 모양을 유심히 봅니다. 얼굴과 손 모양이 주는 푸근함과 든든함을 느껴보고 싶어서입니다.
이 두 불상 모두 얼굴은 아주 늠름하고 손도 푸짐합니다. 이런 분이 옆에 있으면 든든하겠구나 싶습니다. 물론 불상의 모습도 좋지만 저는 그곳을 찾아가는 길의 호젓함과 불상을 둘러싼 산의 모습에서 얻는 편안함이 더 좋습니다.
북내면 상구리에도 미륵불이 있습니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제법 크고,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게 보입니다. 역시 손과 귀 부분 모양이 유난히 두툼하지요. 사연을 들어주고 손 내밀어 도와준다는 사람들의 바람에 가장 필요한 부분을 강조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봅니다. 그런데 불상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목 부분이 잘렸던 부분을 다시 이어 붙인 흔적이 보입니다. 어떤 사연인지 자세히 모르지만, 누군가에 의해 손상된 듯합니다.
요즘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로는 미신이라는 이유로 민간신앙의 공간들이 사라져가는 경우를 볼 수 있습니다. 시대가 변하면 풍속도 변하고 새로운 세대에 맞는 새로운 문화가 생기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이런 공간들이 사라져 가면서 길을 오가는 이름 모를 사람들, 나의 이웃과 마을 전체의 평안을 빌어주었던 그 마음도 함께 사라져 가는 것은 아닐까?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 공유하던 이야기도 전설도 사라져 버리는 것은 아닌지? 어쩐지 아쉬운 마음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