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모구리 Oct 27. 2023

손금을 봐주는 무속인

희망도 많고 실망도 많았던 20대 시절, 교환학생신분으로 일본에서 1년을 살았다. 어느 날 행사를 진행하는 건물 안에 손금을 봐주는 무속인이 있어 일본인 친구와 함께 들어가 보았다. 무속인은 내 손금을 보더니


"학생 전공이 뭐예요? 미래에 아주 많은 돈이 보이네요."


"일본어인데..."


돈이 없는 가난한 유학생신분인 나는 믿지 않았다. 한 달 뒤에 당장 돈이 들어오고 당장 남자친구가 생기고 싶은 것이 20대 초반의 마음 아닌가. 갑자기 상승한 엔화환율로 집에선 매번 같은 금액의 용돈을 보내주지만 일본돈으로 인출하는 나의 용돈은 환율로 인해 점점 줄어만 갔다.


그런데 무슨 20대 중반, 후반, 돈 이런 걸 이야기하니 별 흥미가 없었다. 그래도 아주 많은 돈이라는 이야기는 뭔가 그날 이후로 머릿속에 콕 박혀버린 것 같다.


3년 뒤 나는 은행에 취직을 했다.


취업이 어려웠던 시절 무기계약직으로 은행에 들어와 몇 년 뒤 정규직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는 무기계약직급. 월급도 많지 않았다. 10년 전엔 지금보다 현금거래가 많아 그날도 역시 엄청나게 많이 들어온 현금을 세고 있었는데 무속인의 말이 생각났다.


'당신에게 아주 많은 돈이 보입니다.'


'아... 내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고 이렇게 손님돈을 세고 있는 모습에 돈이 보인다는 것이었나...'


뭔가 재밌기도 하고 허무하기도 했다. 어쨌든 내 돈은 아니었던 것인가.


그렇게 몇 년 뒤, 그 당시 잘생긴 남자를 좋아했던 나는 잘생긴 남편과 결혼을 했다. 잘생긴 남편은 그 당시 중소기업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양가에 돈을 받지 않고 결혼을 했다.


그리고는 적당히 쓰고 적당히 버는 생활을 반복했다.


'역시 돈 얘기는 안 맞았건 것인가.'


세월이 흘러도 나는 몇 년에 한 번씩은 무속인의 말을 떠올리며 언젠간 많은 돈이 모이는 날이 진짜로 오는지. 그렇지 않은지. 가끔씩 생각했다.


다시 몇 년 후, 올해 1월부터 남편이 중소기업에서 퇴사하고 사업을 시작한다고 했다. 남편의 자신에 찬 말을 반은 믿고 반은 믿지 않았지만, 그 당시의 내 월급은 나쁘지 않았기에 젊은 시절 실패해도 좋은 경험이 될 거라며 사업시작을 응원했다.


그리고 사업을 시작한 지 10개월이 지났다. 오르락내리락하는 수입에 남편은 일희일비했지만 뗄 거 다 떼고 계산을 해보니 남편의 수입은 우리 둘의 합친 월급보다도 더 많았다. 나는 남편에게


"이거였어!!!!"


"뭐가?"


"일본 무속인이 한 말, 내가 돈 많이 버는 게 아니고 당신이 돈 많이 버는 거였어!!"


드디어 무속인이 한 말이 맞았다며 기뻐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업은 언제 무너질지 모르고 아직 얼마 되지도 않아 그렇게 판단하기도 이르다.


잠시만, 이거 완전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아닌가. 많은 돈만 보이면 나는 무속인의 말을 이리걸었다 저리 걸었다 하고 있었다. 이제 그만 머릿속에서 보내줄 때가 된 것 같다.


사진출처. 관명 관상학 연구원 블로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