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O초 사건, 아이에게 폭행당한 교사 등 연이어 벌어지는 안타까운 이야기들.
위의 사건들이 연이어 터지기 바로 직전에 브런치 글을 하나 남겼었는데, 주제는 우리 반 욕하는 아이에 대해서였다. 주변을 향해 욕하고 분노를 내뿜는 아이에게 정말 수없이 시달리고 있음에도 모든 교사들 화이팅하자는 말로 나름 밝고 희망차게(?) 글을 마쳤었다. 힘내보자는 공허한 말이 무색하게, 그동안 한 교사는 아이에게 가만히 맞고 있어야만 했고, 어느 교사는 그토록 바랐을 교직에 회의감을 느껴 세상을 뜨고 말았다.
처음에는 슬펐다.
한 사람의 같은 교사로서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현장에 있었을지, 하루하루 버티고 있었을지 가슴 깊이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에.
다음에는 미안했다.
나 역시 ‘그래 교사가 그런 직업이지’, 라며 자조 섞인 한탄만 내뱉을 뿐 변화를 위한 대책에 대해서는 생각하고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다음으로는 분노했다.
우리 반 욕하는 아이의 부모로부터 고소협박을 당했음에도 알겠습니다, 노력하겠습니다 라고 밖에 할 수 없었던 교사의 현실이. 주변 아이들과 교사에게 화를 내며 욕을 내뱉는 내 자식의 행동은 ‘돌발행동’으로 취급하면서도, 담임의 한숨 섞인 지도에는 ‘아동학대’로 법률자문을 받았으니 조심하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 그 학부모에게.
마지막으로는 무기력했다.
분노라는 감정이 한번 휩쓸고 지나가면, 그 자리에는 꽤 오랫동안 마음이 텅 ‘비어있게’ 된다. 말 그대로 빈 공간 속에서 말로 형용하기 힘든 무력한 감정이 따라왔고, 학교에서도 퇴근 이후에도 그 감정은 나를 집요하게 따라왔다.
교사 개개인은 어떨지 모르겠으나, 교사 집단은 대체로 개인주의 성향이 깊다. 정치나 사회 변화 등에도 큰 관심이 없다. 있어도 어디 가서 의견을 표현하는 데에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그저 자신이 맡은 학급, 다니고 있는 학교, 반 아이들과 학부모에게만 온 신경을 다하며 1년살이를 버티는 경우가 대다수다.
그런데 저번 주 토요일 종로에 5000명 넘는 교사가 모였다. 그 자리에 나도 가보니 보신각 사거리 일대에 발 디딜 틈 없이 각 구역마다 검은 옷을 입은 교사들이 앉아있었고, 자리가 없어 먼발치서 서성이며 집회를 지켜보던 교사도 많았다. 꽤나 오랜 시간 공허했던 내 마음에 그 광경은 여러 감정을 불러일으켰다. 서로 간의 접점도 크게 없는 극개인주의 성향의 교사들이 한 곳에 모인 게 신기했다. 그리고 진작 이렇게 변화를 위한 노력을 우리가 하지 않았다는 자책의 감정도 생기게 되었다.
나 역시 ‘금쪽이’를 교통사고 취급하면서, 내가 맞이하면 어쩔 수 없이 교사로서 이겨내야 하는 시련쯤으로 여겼던 때가 바로 얼마 전이었다. 보신각, 그 짧은 집회였지만 무기력한, 그리고 무력한 교사들이 이곳에 모여 힘을 모으니 작금의 교사가 맞이하는 실상에 대한 분명한 문제의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그러나 교사, 그 참을 수 없는 무기력함은 의외의 곳에서 다시 발현하고야 만다. 교장실에서 나온 ‘그 쌤이 조금 더 견뎠어야 했다’는 그 말.
‘크로노스는 권좌를 지키기 위해 자식들을 산채로 잡아먹었다지. 그러면서도 자식인 제우스가 결국 권좌를 차지했다지.’
내가 만나고 있는 여러 크로노스들을 생각하며 한참을 무기력하게 앉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