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는 아이를 만났다

by 김떱

교통사고 현장은 운전하다 몇 번 뒤늦게 지나가본 것이 전부이다. 현장을 옆으로 지나갈 때마다 한숨을 내쉬곤 했는데, 한숨에는 다친 이에 대한 안타까움이 담겨 있었을까. 내가 당한 게 아니라는 안도가 담겼을까. 설마 사고로 출근길이 잠시 막힌 것에 대한 분노 섞인 투정이 담기진 않았겠지.


5년 간의 짧은 교직생활동안 나는 운좋게 '교통사고'를 피해왔다. 욱하는 아이는 몇 번 만났지만, 실제로 거친 욕을 교실에서, 교우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습관적으로 뱉어대는 아이를 맡게 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미리 말하자면, 초등학교 3학년이다. 무려 2014년생! 생활기록부에 등재된 반 아이들의 생년월일을 볼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드는 건 성인으로서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여하튼 이 10년생 묘목이 뱉어내었던 날카로운 냉기는 여름날 자작나무숲의 숨결보다 차가웠다. 이렇게 말하면 그 아이에게 미안하지만, 군대에서도 거의 못 들어본 네이티브 한국어 폭언을 이 아해에게 들어봤으니 고작 10살이 어쩜 이렇게 악센트를 잘 살릴 수 있는지 경외심마저도 들었을 정도이다.


하지만 이 아이를 향한 공분이 글의 목적이 아니다. 그렇기에 더욱 어렵게 글을 적어가 본다.

글씨체나 그림체를 보면 알겠지만, 굉장히 똘똘한 친구다.

5월에 아이가 적어 보낸 편지이다. 어머님 말씀으로는 시키지도 않았는데 직접 주말에 집에서 적었다고 한다. 솔직히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욕을 뱉고 소리를 지른 뒤 씩씩 대던 그 아이의 눈빛은 절대 교사에 대한 존중이 담기지 않은 듯 보였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평소에도 날 바라보는 아이의 눈빛은 굉장히 차가웠었다.


개학부터 4달 동안 어르고 달래 보기도 하고, 나도 똑같이 차가워지기도 했으며 무언의 눈빛으로 기다려보기도 했지만 쉽게 달라지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었다. 다행히 학부모와의 소통은 비교적 원활했다. 자녀의 행동에 큰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가정과의 협력 덕에 6월 즈음부터는 행동이 학기 초에 비해 차분해졌다. 억울하다고 생각될 때, 화가 날 때 습관적으로 나오던 욕의 빈도수도 다행히 많이 줄었다.


"안녕히 계세요"


자기 몸만 한 두꺼운 책가방을 등에 멘 채 꾸벅 인사를 건네는 그 아이를 볼 때면, 그래도 이 아이를 향한 담임으로서의 책임감이 다시 생겨나곤 했다. 미우나 고우나 어쩌겠는가. 일단 올해는 우리 반 아이인 것을. 잘 키워서(?) 내년 선생님께는 아이의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지, 하고 말이다.


그러나 7월 6일, 오늘의 사건이 한숨을 다시 이끌어낸다.

우리 반은 급식 순서를 매일 제비 뽑기로 정하는데, 예를 들어 5번이 나오면 그 번호부터 밥을 먹고 4번이 마지막에 밥을 먹는 식이다. 어린아이들에게 급식 순서만큼 빅 이벤트가 또 있으랴. 그렇기에 오늘의 뽑기 역시 아이들의 큰 관심을 받았었다.

두구두구. 드르륵드르륵. 오늘은... 12번!

아 역시나~! 11번의 그 아이는 시원하게 욕을 한 마디 지르며 발을 쿵쿵 굴러댔다. 놀라는 주변 여자아이들을 위해서라도 버럭 화를 낸 뒤 그 아이를 데리고 학년연구실로 갔다. 무력한 교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씩씩대는 그 아이를 앉혀둔 채 말없이 응시하고 몇 마디 훈계 아닌 훈계를 하는 것뿐. 급식 줄을 이끄는 나는 한 명의 패잔병이 되어 무겁게 급식실로 발걸음을 옮겨갈 뿐이었다.

14년식 쌩쌩한 스포츠카에 '교통사고'를 쎄게 당했는데, 가해자는 없고 피해자만 있는 아이러니함에 주섬주섬 상처 입은 몸을 이끌고서 사건 현장을 빠져나온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하루하루 버티는 것뿐이다.

모든 교사들. 오늘도 화이팅, 또 화이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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