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나모리 가즈오의 '소선대악 비정대선'
따뜻할 온(溫), 정 정(情). 온정주의. 따뜻한 정과 훈훈한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말한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따뜻한 것을 좋아했다. 따뜻한 국, 따뜻한 차, 따뜻한 관계, 사람도 차가운 사람보다는 따뜻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가?
하지만 이 따뜻함이 늘 좋은 것만은 아니다. 도를 넘는 따뜻함은 엄정한 잣대로 시비를 판단해야하는 우리의 칼을 무디게 만들고 그로 인해 사회 정의를 무너뜨린다. 시대는 갈수록 합리성과 공정성을 요구하는데, 우리의 DNA에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는 온정주의 유전자는 도를 넘는 인연 관계를 강조하다가 조직을 망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
조직 개혁에 있어 일본의 이나모리 가즈오 회장의 “소선(小善)은 대악(大惡)과 닮아있고, 대선(大善)은 비정(非情)과 닮아 있다.”는 말이 자주 인용된다. 자잘한 선행은 큰 잘못이기 쉽고, 큰 선행은 비정해 보인다는 의미이다. 비록 지금은 선으로 보일지 모르나 결국 불행의 씨앗이 되고, 처음에는 비정해 보이나 나중에는 대선의 전령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60대 중반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2010년 일본항공(JAL)이 법정관리에 들어가자 77세의 나이에 당시 총리의 간절한 부탁으로 도산 위기에 빠진 JAR의 회장직을 맡는다. 당시 JAR은 무늬만 민영기업일 뿐, 전문성 없는 정부 인사들의 낙하산 인사, 적자 항공노선의 증설, 정년퇴직 승무원에 대한 고액 연금 지급, 재임 기간에 문제가 드러나는 것을 두려워한 경영진의 조직적 은폐 등 비효율의 극치였다.
이에 구원투수로 소환된 이나모리 회장은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연금을 개혁했으며, 적자 항공노선을 폐지하는 등 조직 혁신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럼으로써 파산 직전의 JAL을 8개월 만에 흑자로 돌리고 2년 연속 최고 실적을 낸 후 재상장시켰으며, 이후 그는 ‘살아있는 경영의 신’으로 불리워졌다.
물론 조직의 모든 경영에서 이나모리식의 전략이 통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처럼 온정주의 문화가 강한 풍토에서 우리가 귀담아 들어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사람들은 문제점을 지적하고 부정적인 피드백을 하면서 상대에게 감정적으로 상처줄 수 있는 말을 하는 것을 싫어한다. 그러다가는 자칫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배려심 없는 냉혈한으로 낙인찍히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나모리 회장은 ‘상대방에 대한 배려는 상대와 전체에게 이로움을 줄 때에야 비로소 빛을 발한다’라고 말하면서 조직 구성원을 배려하기에 앞서 과연 무엇이 옳은 길인지, 무엇이 더 큰 선이 될 수 있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는 명명백백하게 시비를 가려야 하는 순간에도 이해와 용서, 화해와 합력이라는 듣기 좋은 말로 사안의 본질을 흐리고 뭉개면서 오히려 시시비비를 가리는 사람을 비정한 사람으로 몰아 부치지는 않았는지, 갈등과 긴장을 어설프게 봉합하고 더 나은 내일을 기약하자며 손가락을 걸고 억지 다짐을 하지는 않았는지 되새겨봐야 할 지점이다. ‘인정이 과하면 착심이 된다' 는 말은 온정주의의 따뜻함에도 중도(中道)가 필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타성과 매너리즘에서 벗어나 개혁과 혁신을, 초심을 회복할 것을 소명으로 삼는다. 우리에게 만연해 있는 온정주의에 대해 한번쯤 돌아보고 그것이 어쩌면 우리의 발목을 잡고, 우리가 추구해야할 소명을 어그러뜨리지는 않는지 면밀하게 살펴봐야 하지 않을까? 그러니 우리에게는 용기가 필요할 듯 싶다. 이나모리 회장이 어설픈 온정주의로 무장한 기존 경영진의 ‘소선’을 과감히 걷어내고 조직의 불편한 진실을 드러내고 원칙에 따른 정책을 과감히 추진한 것처럼, 때로는 ‘비정함’이 대선을 가져올 수 있다는 미움받을 용기를 한번 내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