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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이언캐슬 Sep 26. 2024

벽壁에 스미다

  

그들만의 리그였을까요

벽을 느꼈죠

범접할 수 없는,

벽은 아무런 말하지 않았고, 그냥 웃고만 있었죠

웃음이었는지, 비웃음이었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아요     


저녁도 먹지 않은 채

벽과 대치하고 있었죠

벽 속에 누군가 있는 것 같았어요     


스며들 수도, 부술 수도 없는 벽

벽 속으로 아픈 왼손을 깊숙이 담가 보았어요

손은 어디에도 닿지 않았고

강한 부력이 손을 밀어내고 있었죠

벽은 밀다가, 또 손을 잡아당기고 있었어요

그것이 밀어내는지, 잡아당기는지

도무지 벽 속을 이해하기가 어려웠어요     


왼손을 벽 속에 넣은 채

얼굴을 벽 가까이 가 보았어요

벽 속 누군가에게 다정한 척해보려는 거였죠

내가 벽을 느꼈던 만큼

벽도 나를 느꼈을까요     


벽 속에서 모르는 맛이 흘러나오는 것 같았어요

흘러나오는 것인지, 스며들어 가는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았어요

왼손을 잡아당기는 것이

진실이었는지, 가식이었는지, 아니면 거짓이었는지

여전히 벽 속을 가늠하기는 어려웠어요    

 

자정이 되어서야 벽이 녹아내리고 있었어요

벽 속 누군가를 보기 위해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아픈 왼손을 벽 속에 넣은 채

밤을 꼬박 새울 수밖에요     


새벽녘 벽이 거의 녹아내렸고

벽 속엔 누군가가 없다는 것을 알았어요     

벽 속에서 잠시 자유로워진 나는

어제저녁을 아침으로 먹고

밤새 녹아내린 벽을 털어내며

또다시 어제로 출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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