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맡에서 보내고 싶지 않은 계절이 녹아있습니다
가끔은 깨고 싶은 꿈도 버무려 있지만
그런 날이면
손톱 밑에 밴 잉크 자국처럼 성가신 아침이 돋아납니다
그런 날
눈이 내리면 당신을 맞습니다
바람이 속절없는 날 당신을 맞습니다
비가 고슬고슬 날리는 때 당신을 맞습니다
언제나처럼 약속한 날이 오지 않는 당신을 맞습니다
하염없는 꽃댕강처럼 당신을 맞습니다
꿈은 일상처럼 자라나고
뜬금없이 밤(夜)이 불끈불끈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꿈에서 자라난 당신은 결국 흔들리다가
꿈이 되었다가
25W 백열등을 적시는 수증기, 속 흐물흐물한 문장이 되었다가
어릴 적 헤맸던 아련한 골목이었다가
한참 전에 부팅을 시작한 노트북이었다가
올해 가을이었다가
초록의 고백이 연두에게 전달됩니다
명도와 채도의 중간 지점에서
돌아서야 하는 계절은 왜 우울할까요
올해 가을은 이제 끝이 나는 것일까요
겨울이 벌써 와 있는 건가요
당신을 보내야 하는 용기와
당신을 보내야 하는 망설임과
당신을 보내야 하는 인내는, 서로가 어색한 느낌입니다
과묵한 밤이 가을의 껍질을 벗기다가
그 밤을 꼬박 지새우다가
불쑥 내민 손길처럼 당신을 맞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