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간 사용하지 않은 물건들은 앞으로도 그대로 둘 가능성이 크다. 귀중품이라도 되는 양, 구석에 감춰두고 먼지만 먹게 할 필요가 없다. 마치 유효기간 한참 지난 냉동식품이 잊힌 채 냉동실 깊숙이 있듯, 옷들은 옷장 구석에서 있지도 않은 유효기간을 넘기고 있다. 참, 많기도 하다. 이 많은 옷이 도대체 어디에서 왔을까? 사실 옷을 자주 사는 편은 아니지만, 한번 사면 기본적으로 십수 년을 입다 보니, 바깥바람 쐬지 못한 옷들이 수두룩하다. 그들마다 고유한 사연이 있는 터라 쉽사리 버리지 못하고, 그렇다고 입지도 못하니, 제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한 노병들처럼 막사에 그냥 누워 지내는 것이다.
한 달 뒤에 이사해야 하기에 수십 년간 모아둔 여러 가지 물건을 하나씩 정리한다. 오늘은 벼르고 벼르던 넥타이를 정리한다. 넥타이에는 옷보다 특별한 사연이 많아 버리기가 더 어렵다. 대부분, 환자들 마음이 담긴 선물이다. 오랜 기간 대학병원 근무 경력 때문에 내게 온 넥타이들, 제대로 쓰이질 못했으니 주인을 잘못 만난 게다. 그들은 내게로 와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병원에 근무할 때는 그나마 출퇴근 길에 와이셔츠 칼라에 멋있게 얹혀 나와 함께 출퇴근했다. 그때도 간택되는 넥타이는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으니 나머지는 마음이 어떠했을까. 대학병원을 나온 지금은 가끔 외부 강좌가 있을 때만 찾는다. 그들을 만난 지가 꽤 오래된 것 같다. 요즘은 출퇴근 때에도 거의 만나지 않는다. 대부분은 무대 뒤에서 역할을 기다리고 있는 대역배우처럼 숨죽이고 있어야 한다.
넥타이는 태생적으로 금수저 출신인 것 같다. 주로 정장과 잘 어울리니 애초부터 귀한 신분인 게다. 아마도 팔리기 전 백화점 진열장에서 무게를 잡고 있을 때는 특급배우를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넥타이는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 지위도 달라진다. 대기업 회장님 와이셔츠와 있을 때는 아랫사람 인사를 받으면서 덩달아 ‘에헴’하고 눈을 내리깔았을 것이고, 선생님과 있을 때는 매일 아침 칠판 앞에서 학생들의 미소와 존경을 듬뿍 받았을 것이다. 새신랑의 와이셔츠 위에서는 신혼의 달콤함에 또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러나 그것도 옛말, 요즘엔 넥타이를 나누어 주고 싶어도 눈치가 보인다. 신세대 패션이 넥타이와는 멀고 보니 갑자기 흙수저 처지가 된 건 아닌가. 내 옷장의 넥타이들도 울먹이며 세월을 보냈을 것 같다. 안타까워서 하나하나씩 훑어보며 피부의 상태를 만져보거나, 몇 번씩 쓰다듬으며 애정을 표현해 보지만, 어차피 이제 내게 더는 존재가치가 없을 것 같다.
한 묶음의 넥타이가 눈에 들어온다. 아, 그런 일이 있었지. 몇 년 전 일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생생하게 떠오른다.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진다는 뉴스를 듣고 출근한 날이었다. 적막이 흐르는 2층 대기실이 갑자기 시끌시끌해졌다. 한창 진료를 하는 오전, 병원 대기실 홀 안 가득히 산만하게 흩어져 있던 수많은 시선을 순식간에 집중시키는 단발음이 있었다
“꽈당”
모든 이의 시선이 한 곳으로 향했다. 차가운 바깥 온도를 그대로 묻힌 채 방금 대기실에 들어온 말똥말똥한 눈길. 꽤 오랜 시간 대기실에서 기다리며 지친 번호표를 쥐고 반쯤 게슴츠레 감긴 눈길. 옆 사람의 핸드폰을 가자미처럼 시치미로 곁눈질하던 눈길. 진료 순서가 임박함을 알리는 긴장한 시계를 쳐다보며 기지개를 켜던 눈길.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 환자 한 분이 대기실 입구 바닥에 흘려진 물에 미끄러진 것이었다. 진료실 안까지 넘어지는 소리가 들릴 정도이니 꽤 충격이 컸을 것이었다. 나도 놀라서 진료하다 말고 바로 밖으로 나갔다. 외래 간호사가 넘어진 환자분을 부축하며 옆에 있는 의자에 눕히고 있었다. 다급히 뛰어가 환자의 상태를 살피다 보니 지난주 자궁근종 수술을 하고 퇴원한 내 환자였다.
외래 간호사는 환자의 상태를 살피며, 연신 죄송하다고 했다. 사실은 간호사가 죄송할 일은 아니다. 병원에는 실내를 청소하는 미화원도 있거니와, 병원 내부에서 일어난 모든 일은 당연히 나의 책임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죄송하다는 말을 선뜻하지 못했다. 조금 전 진료를 하고 간 환자의 아이가 물을 흘린 것을 3층으로 청소하러 가신 여사님이 미처 닦지 못했다. 다행히 환자는 큰 부상은 없었으나, 대기실에서 만난 그 많은 눈길을 씻어내려면 시간은 좀 걸릴 것 같았다. 혹시 모르니 가까운 정형외과에서 진료를 받아보시도록 직원을 동행해서 보내드리고 당일 진료는 다음으로 미뤄 예약을 잡았다. 다행히 함께 다녀온 직원을 통해서 그분이 괜찮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다음 날 진료실에 들어온 환자는 종이가방에서 넥타이를 하나 꺼냈다. 짙은 노란색 실로 촘촘하게 뜨개질한 수제넥타이였다. 중간중간에 큐빅으로 무늬를 만들어 노란색의 풍미를 더 했다, 마치 예술 작품 같았다.
“넥타이는 선물로 주는 게 아니라는데….”
약간은 겸연쩍어하는 나의 말을 그녀가 끊는다. “만들어서 좋은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게 제 취미예요. 갱년기 치료제라고나 할까요?” 그녀가 웃으며 입꼬리를 올린다.
“아이고, 이거 너무 이뻐서 어디 하고 다니겠어요? 그냥 집에 전시해 놔야겠다.” 나도 웃으며 감사히 받았다. 그녀는 넥타이를 주섬주섬, 몇 개 더 꺼냈다. 가방을 넌지시 들여다보니 같은 모양의 넥타이가 가득하다. 마른 조개껍데기 같은 하양, 봄에 처음 피어나는 벚꽃 같은 연분홍, 한이 맺힌 동백꽃 같은 감홍, 서리 맞고 언 땅을 헤집고 나오는 복수초 같은 샛노랑, 칠흑같이 어두운 검정. 그 외에도 자로 잰 듯한 크기의 날렵한 모양에 다양한 색채로 큐빅 위치까지 같은 넥타이들이 내 책상 위에 펼쳐졌다. 몇 개 더 고르라며 마치 덤을 주듯이 내 손보다 빠르게 황금색, 연분홍색을 추가로 내 앞으로 밀고는 나머지를 다시 종이가방 속으로 집어넣었다.
“얘들이 내 갱년기 치료제예요”
그녀는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으로 무안함을 무마하려 했다. 아무튼, 감사하다고, 잘 쓰겠다고 두 손 모으며 넥타이 숫자보다 더 많이 인사를 하고 진료를 마쳤다.
“선생님이 수술을 잘하셔서 그런지 넘어졌는데도 하나도 안 아프네.”
그녀는 수술에 대한 고마운 마음과 어제의 무안함을 동시에 표현한 듯했다. 그녀가 무심결에 툭 던지고 간 말꼬리가 빼꼼히 열린 문 틈새로 그림자처럼 안절부절못하며 따라 나갔다. 말꼬리는 대기실에 잠시 머물며 어제 그녀가 받았던 그 많은 눈치를 씻어내고 있었다.
사실 그녀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여태껏 그 넥타이를 한 번도 매어본 적이 없었다. 몇 번인가 시도는 했지만, 그 화려함은 나로서는 도저히 소화할 자신이 없어 다시 풀어서 제 자리에 돌려보내곤 했다. 오늘도 넥타이를 정리하면서 다시 매지는 않을 것 같은 얘들을 정리해서 재활용장으로 보낸다.
살면서 비워야 할 것이 어디 넥타이뿐이겠는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분노, 원망, 질투, 후회 그리고 욕망을 쟁여두었는가. 그들이 아직도 내 의식과 무의식의 옷장 속에 사용하지 않는 넥타이처럼 옹두리로 맺혀 있다. 마치 이미 떠나간 이들의 유품처럼 비워지지 않고 있다. 이제는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조차 가물가물하다. 대부분은 이제 사용할 수도, 사용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미 유효기간도 한참이나 지났다. 마음의 뒤란에서 하나씩 끄집어내 넥타이처럼 비워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