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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이 멈춘 커튼

by 아이언캐슬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방향에서 들어오던 빛이
오늘은 멈춰 있었습니

커튼은 꼼짝도 않았지만
바람도, 손도, 아무도 건드리지 않았지만
그 안엔
분명히 무언가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오래된 커튼은 빛을 다 받아낸 뒤에도
늘 그 자리에 머물렀지요
마치 말을 다 들은 사람처럼
묵묵히 서 있었어요

커튼 너머로
바깥과 안쪽이 조용히 겹쳤고
당신의 기억이
그 경계에 잠깐 머물다

아무 소리 없이 스며들었습니다

나는 커튼 앞에 서 있었어요
손도 대지 않았고
무언가를 열지도 닫지도 않았지요
그저 빛이 멈춘 자리에 잠깐 멈춰 섰고

빛은 더 이상 들어오지 않았고
그림자도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 적요 속에서 나는
당신이 커튼을 젖히던 손짓을 떠올렸을까요


말하지 않아도
방 안으로 바람이 들어오던 순간들을

이젠 그 손이 없고
그 움직임이 없고
그 시간도 더는 없습니

그저 커튼만이 빛도 바람도 없이
거기에 우두커니 서 있습니다


나는 가끔 커튼 앞에 서서 당신의 그림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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