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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네사Nessa Oct 01. 2022

신이 모든 직업을 준다면

할 수 있는 일 보다 하고 싶은 일


직업에 대한 열망을 생각하면, 휴학을 마치고 돌아온 복학 후 첫 학기의 어느 날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나와 전공 강의가 여럿 겹치는 타대학 교류학생이 있었다. 함께 듣는 강의의 수강생 대부분이 3,4학년이다보니 진로에 대한 얘기가 자주 오고갔는데, 그 친구가 교수님과 나누던 대화 중 이런 대목이 있었다.




신이 모든 직업을 준다면..




꼬꼬마 초등학생일 적에는 내가 되고싶은 것을 스스럼없이 얘기하고, 남들이 볼 수 있게 써붙여놓을 수 있었던 우리. 진짜 무언가가 되어야만하는 때가 다가오니, 현실적인 조건들에 휘말려 살 길을 찾느라 급급하기만 했다.



직업이란 결국 우리 일상의 기반이 되고나면 하루하루 숨쉬듯 자연스러운 일이 될텐데, 진로가 가장 큰 화두일 고학년들에겐 제법 거창하게 느껴지는 단어였다.



그런 직업을 두고 신이 준다는 가정을 얘기하던 친구 O의 말은, 직업과 진로에 대해 생각할 때면 머릿 속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O는 당시 신이 모든 직업을 준다는 가정하에 본인이 원하는 것은 쇼호스트라고 말했다. 쇼호스트라면 규모를 떠나서 방송 분야일텐데... 그 때까지만 해도 내 주위엔 이 쪽 분야를 희망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신기하면서도 멋진 꿈이라고 생각했다.



더욱 멋졌던 것은 O의 말이 그저 그 당시의 꿈에서 그치지 않고, 실제로 이름난 쇼호스트 회사에 합격해 활동했다는 것. 그는 지금 다른 일을 하고 있지만, 본인이 원하는 것을 명확히 알고 이를 위해 부던히 노력해 성취해내기까지...


정말 많은 용기와 실행력이 필요했을 것을 날이 갈수록 피부로 와닿게 느낀다.







어릴 적 부터 내게 '희망하는 직업'이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었다.



관심있는 분야는 늘 다양했고, 하나에 꽂히면 곧잘 집중하는 타입이었는데, 이게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교를 벗어날 때가 되어가니, 내 업으로 삼아 오랜 시간 집중하고 싶은, 나만의 전문 분야를 찾아내기가 정말 정말 힘들었기 때문이다.



일을 하는 와중에도 직무와 분야에 대한 고민으로 힘들어할 때에 나의 절친한 친구 S는 '잘하는 게 많은 것도 탈이야.'라며 가족들보다도 더 큰 응원의 말을 실어주었다.



나를 좋게 봐주는 고마움과 동시에 '내가 진짜 잘하는 거라면 그 중 하나에선 이미 자리잡았을 수도 있을텐데.. 뭐가 문제일까.'라는 의문도 함께 들었다.



열의있게 열심히 일하고, 좋은 성과를 내고 보람을 느끼다가도 자꾸만 마음이 다른 곳으로 기울 때가 많았다. 내가 더 인정받을 수 있는 곳이나 큰 규모를 찾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내 일상을 채울 직장과 업무가 다방면에서 나를 충족시켜줘야 하는 데 그게 잘 안되는 느낌.



2년이나 휴학을 하고 (심지어 두 개 각각 다른 분야에서 일을 해보기도 하고) 돌아온 뒤였지만 졸업생이 되고 난 후에도 방황은 계속 되었다.







그 방황을 끝내게 된 지금의 직업은 내 삶을 통째로 바꿔놓는 다소 비일상적인 일이었다.



여러 분야를 거쳐 20대 후반을 향해가던 내게 '신이 모든 직업을 준다면'이라는 가정 하에 누리고 싶었던 것은,


변화가 일상인 업무와 다른 나라, 다른 문화를 환경으로 둔 직업이었으니 말이다.




아직 근무 중 핸드폰을 꺼내보지 못한 정신없는 신입의 어느 퇴근길.




많은 사람들이 환상을 투영하고 보이는 것을 대부분이라고 여기는 직업이지만


직장과 업무가 다방면으로 나를 충족시킬 수 있기를 바라는 내게 이보다 만족스러운 것은 없었다.



멋지고 화려한 것을 떠나, 내게 오랜 시간 몸담고 싶은 현실적인 일로서의 외국 항공사 승무원.



'무슨 일을 하는가?'

'누구와 일을 하는가?'

'어느 환경에서 일하는가?'



업무의 종류와 강도(?), 동료들과 상사들, 그리고  모두가 속해있는 사내 문화가 내가 바라던 모습과 가장 흡사한 곳에 있다보니,



평소 있던 환경에서는 어딘지 모르게 마음 한구석 답답했던 것도 어느 새 잦아들었다.



내겐 지금이 살면서 가장 안정된 마음을 갖게된 때라는 확신이 들 만큼.





신을 거론하던 꿈에서부터 실제 이뤄내고자 하는 목표가 되기까지.



과거의 O와 나, 각자의 과정 속에선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경험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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