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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티븐 킹 Mar 23. 2021

1박 2일 전라도 봄꽃 여행

구례 산수유축제, 광양 매화축제길 따라

남편 생일 기념으로 우리 부부 아들 부부와 구례와 광양 여행을 하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출발했다.

광양 매화축제 백일장에서 산문부 최우수상을 타던 해에 그곳은 내가 본 여느 장소보다 가장 아름다웠다. 잊을 수가 없어 다시 한번 가보고 싶은데 산악회에서 가면 버스라서 코로나로 남편이 꺼려했다. 별 수없이 아들 차를 이용하여 갔다. 구례에 복층으로 된 펜션 하나 예약했다.

아들이 자기네 집에서 7시에 출발을 하겠다고 전화가 왔을 때 남편은 도착한 줄 알았다가 실망하'에이 씨'를 하길래

"아고. 어쩜 우리 시아버지랑 똑같을까?  명절 때, 어디냐고 물어서 막 출발했다고 하면 역정을 내시더니."

정말 남편은 며느리 대하는 태도가 거의 우리 시아버지 수준이다. 난 그러지 말라고 남편을 옆에서 계속 다독이고 있다. 편하게 살게 두려고. 사실 이번 여행도 남편이 자기 생일이라고 추진을 했다. 며느리한테 미안하다. 시어른들하고 여행을 가고 싶겠냐 말이다. 집에서 출발할 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하더니 세 시간 반 넘게 걸려 도착한 구례도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비로 인해서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물기를 함빡 머금은 산수유꽃은 연 노란색으로 온 천지가 노랑이라 예쁘다.

내가 이곳에 와서 깨달았다면 사람은 가슴속에 가고 싶은 곳을 새기고 살면 언젠가는 가게 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구례 산수유축제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너무 먼 곳이라 선뜻 나서지 못했지만.

결국 오늘 이렇게 오게 되다니.

"남편 잘 만나서 이런 곳도 오지?"

웃으면서 묻는 남편에게 달리 대꾸하지 않았다. 어쩜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니까.

계곡으로 물이 흐르고 양쪽으로 산수유가 곱게 피어있다. 어느 집 마당에는 한가득 수선화가 피어 빗물에 고개를 떨구고 있다. 아마 햇살이 비치었다면 고개를 반쯤 들었을 것이다. 명자나무 꽃도 피어있고 동백꽃도, 개나리도 피어있다. 여기는 온통 꽃 천지다. 2014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선정되었다는 기념비가 아니어도 아름다운 마을임은 확실하다. 냇가의 고인 물에는 올챙이들이 막 알에서 깨어 나와 아직 깨어 나오지 않은 알들을 먹고 있다. 어떤 올챙이는 뒷발도 조금 나와 있다. 곧 앞다리가 쑥 나오고 꼬리가 사라지면서 개구리가 될 것이다.

돌담에 이끼도 잔뜩 끼어서 고풍스러운 분위기도 연출하고 있다.

구례 산수유축제

근처에 있는 산수유 사랑공원에 오르니 금빛으로 산수유 모형이 근사하게 있고 멀리 내려다보이는 동네 길은 온통 산수유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안개처럼 오묘하게 보인다. 점심을 간단히 먹고 이번에는 지리산 호수공원으로 향했다. 정자가 있는 전망대 오르는 길이 계단이지만 나무가 몇 그루 안 보이고 풀밭이 보인다. 몽골 초원에라도 간 것처럼 느껴진다. 그 옆에 치즈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은 3월 19일부터 입장료를 받는다 한다. 우리는 굳이 체험을 하지 않고 전망대로 오르는데 호수의 전경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아 탄성이 절로 난다. 비가 그치고 바람이 불면서 약간 춥다고 느껴졌지만 걷다 보니 추위가 달아났다.


 섬진강 대숲 길로 갔다. 와~ 멋지다. 꼭 고향에 간 기분이다. 아니 우리 친정집 대밭에 간 느낌이다. 지금은 남의 집 대밭이 됐지만. 아들이나 남편이 왜 대밭을 팔았느냐고 물어서

"내가 못 팔게 했더니 친정 엄마가 시집간 딸이 친정 재산에 눈독 들인다고 화내던데. 당신 살 새집을 지을 거라면서 못 팔게 하려면 돈을 대주라더라고. 그래서 팔게 내버려 뒀지. 내 것도 아니어서."

나는 그 대밭에 엄청난 애정이 있었다. 대꽃이 피어 밭이 망해서 대뿌리 걷어내고 밤나무 심는 일을 했었기에. 결국 대나무 번식의 속성을 몰랐던 우리는 밤나무밭이 다시 대밭으로 변하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음을 알았다.

녹색으로 쭉쭉 뻗은 대나무를 보고 걷는 숲길이 너무 좋았다. 꽤 잘 꾸며져 있다. 꼭 담양의 죽녹원을 걷는 착각을 했다. 대밭 아래에는 갓이 심어져 있고 유채 대가 보여 하나 꺾어 먹어보니 맛이 상큼하다. 섬진강에 봄이 이미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파릇파릇 새싹도 많이 자랐다. 봄비까지 맞았으니 풀이나 나무는 이제 더 자랄 일만 남아 보였다.

산수유사랑공원, 지리산 호수공원과 섬진강대숲길 

오산 사성암에 가기로 하고 차를 끌고 올라가려 하니 막는다. 주차장에 차를 두고 주말에는 버스나 택시를 이용해야 하는데 버스비는 1인 1700원이고 택시비는 편도 6000원이란다. 남편은 열심히 인터넷을 찾아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눈 밝은 나는 주차하는 사이에 택시비가 더 싸다는 것을 표지로 보고 택시를 잡았다. 내려올 때는 산길로 걸어서 하산하기로 하고 올랐다. 마침 그 기사분은 우리에게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어서 인천에서 왔지만 구례 토지면과 간전면이 시부모 고향임을 밝혔더니 더 애정 어린 답변을 해 주신다. 그러고 보니 시아버지 결혼할 때 나룻배로 건너가서 결혼했다는 사진을 00 일보에 내서 당선이 되어 언젠가 상금을 타 먹기도 했다.

 내 생각으로는 절은 거의 멋진 곳에 있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도봉산 망월사는 정말 멋지다. 수종사도 그렇고 부석사도, 그런데 오늘 가 본 오산의 사성암은 더 멋진 곳에 있어서 마음을 훅 빼앗겨버렸다. 세상에나~ 얼마나 멋진 곳에 있는지 섬진강이 내려다보이고 바위에 붙어있는 높은 절이 정말 위대하고 웅장해 보였다. 소원바위는 택시 기사님의 말에 의하면 꼭 한 가지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다. 적지만 시주도 하고 가족 건강을 빌며 몇 가지 더 소원을 빌어 보았다. 유리광전 앞에서 멋모르고 사진을 찍었더니 보살님이 찍으면 안 된다고 한다. 전화 통화 중이라 묻지 못했는데 왜 못 찍게 하는지 실로 궁금하다. 사진을 찍으면 기가 달아나서인가? 저작권이 있어서인가? 문화재가 파괴라도 된다는 말인가? 아니면 신성시하는 것이라 외람되어서인가?

정말 오래전부터 가져온 나만의 의문이다.

유리광전의 마애 여래 입상은 원효대사가 선정에 들어 손톱으로 그렸다고 하는데 어째 믿어지지 않는다. 불심이 없어서인지 내가 보기엔 정으로 새겼을 것 같은데.

오산 사성암


 내려오는 길이 생각보다 멀다. 미끄럽기도 하다. 예쁜 보랏빛 제비꽃이 잘 가라고 인사를 하는 것 같다. 돌탑도 길을 내어주며 어서 가라고 안내를 하는 듯하다. 어스름이 내려앉는 시간에 벚꽃은 또 우리를 유혹한다. 더 놀다 가라고.

얼른 펜션에 들어가 삼겹살에 밥을 먹고 싶은데 그 유혹에 넘어가 사진을 찍었다. 멋지다~.

내 기억 저장소에 구례 산수유와 사성암, 벚꽃을 멋진 곳 중의 하나라고 꾹 눌러 저장해 본다.


섬진강변 벚꽃

다음 날,

 복층으로 된 섬진강하늘풍경펜션의 견우방은 생각보다 깨끗했고, 따뜻했으며 2층에서 보는 풍경은 무척 아름다웠다. 섬진강 너머 벚꽃도 환상으로 보인다. 예약했을 때 현금으로 15만 원을 보냈고 도착하여 현금영수증을 해주기로 했는데 주인은 실수로 만 오천 원을 해주더니 나중에는 안 된다며 IC 카드를 입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냥 현금영수증을 포기하려 했는데 신용카드를 가져오라 하여 현금은 통장에 계좌이체로 넣어주어 깜짝 놀랐다. 참 대단한 사장이다. 장사하는 사람은 현금으로 받기를 원하고 또 영수증은 잘 안 해주려 하는데. 모든 것이 좋았다. 사진으로 보고 펜션을 정하면 거의 실망스러웠는데 이번에는 아주 흡족했다. 사용 후기에 별을 다섯 개 주었다.

남편 생일인데 축하해 주고 며느리가 사 온 케이크를 먹고 9시쯤 광양으로 출발했다. 아쉽게 매화가 거의 다 지고 축제 역시 코로나로 취소를 해서 우리가 도착했을 때는 한산했다. 2년 전에 갔을 때의 그 아름다운 곳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어 보였다. 아쉬움을 안고 한 주만 빨리 왔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며 오르니 매실나무를 싸게 준다는 할머니한테 한 그루 만 원에 사서 며느리 주고 취나물, 검정콩도 사서 반씩 나누었다.

다행인 것은 벚꽃이 만개했고 쫒비산으로 오르는 길은 아직 매화가 조금 지지 않아 그나마 보기 좋았다.

광양매화축제

허리가 구부정한 할머니를 모시고 가던 중년의 여인이

" 아직 매화가 안 폈네. 다음 주면 필 것 같아~"

할머니한테 하는 소리를 옆에서 듣고 나는 킥킥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남편에게 살짝 말해줬더니 큰 소리로 웃는다. 아마 그 사람들은 이미 매화가 졌다는 것을 모르는 모양이다. 누군가 송이째 떨어진 동백꽃으로 하트를 만들어 놓았는데 참 예쁘다. 또 연못에 하양과 분홍의 매화 꽃잎이 떨어져 둥둥 떠 있는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돌 틈의 제비꽃과 함께 한 폭의 그림을 수놓은 것 같았다. 멀리 섬진강의 모래톱도 보인다. 길 따라 벚꽃의 향연도 보이고.

우리가 한 바퀴 돌고 내려올 때쯤에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좌판에도 취나물, 머위나물, 매실장아찌 등을 놓고 서로 손님을 끌어모으려 야단법석이다. 갑자기 바람이 매서워졌다.

광양 매화축제길

구례 쪽으로 가서 화개 장터에 갔다. 장에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안 보인다. 우리는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해 "옥화 주막"에 들어가 참게 정식 2인분과 재첩 된장국, 재첩 비빔밥을 시켰다. 된장국이 짜고 재첩이 하나도 없어서 물어보니 육수로 하는 것이라고 했다. 정수기의 뜨거운 물을 떠다 된장국에 넣었더니 그나마 맛이 있다. 며느리와 남편이 먹은 참게 정식도 맛은 있는데 짜다고 했다. 다 먹고 계산을 하니 33000원으로 결제를 해준다. 내 계산으로는 정식 13000원에 2명, 재첩 비빔밥 12000원 재첩 된장찌개 8000원이면 46000원이어야 하는데. 나도 계산을 썩 잘하지 못해 일단 시장을 걸으며 수수부꾸미를 먹으면서 남편과 아들한테 계산을 다시 해보라 하니 잘못 결제를 했다는 것이 확실했다. 아들과 남편은 그냥 재첩도 안 넣어 끓여줬으니 그대로 가자고 했으나 내가 생각하니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언제 다시 그곳에 갈 수도 없고 또 마음에 빚처럼 남아 찜찜해 하기보다는 조금 걸어 나왔지만 돌아가 다시 결제를 해 주는 것이 도리일 것 같아 음식점으로 나 혼자 뛰어갔다. 장사하는 사람들도 손해를 보면 안 될 것 같아. 자세하게 설명을 하며 실제 먹은 값의 돈을 다시 결제 해달하고 말했더니 이것저것 계산해 보더니

"이미 결제한 것인데 취소하기도 뭣하니 그냥 가세요."

사장님으로 보이는 할아버지께서 안 받으신다. 아마 그분도 내 행동에 고마워해서 그런 것 같다. 다시 카드를 내밀다가 깊숙이 고개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이 참 훈훈했다. 그 사장님이 고맙다. 화개 장터는 인심이 참 후하다 생각하며 벚꽃길을 걸었다. 가족에게 돌아와 이야기해 주니 모두 기뻐한다. 음식 먹은 배가 더 든든하다고 했다.

화개장터와 벚꽃길

차를 돌려 구례 곡전재에 갔다. 조선 후기 한국 전통 목조건축양식이라는데 곡전의 호를 가진 이교신 고택이란다. 향토문화유산이라는데 우리 어렸을 때 보았던 물건들이 널려있어 신기했다. 남폿불, 호롱불, 물레, 홀태 등이 있어 사진으로 찍어보았다. 다음으로 마을 위쪽에 있는 운조루에 갔다. 류이주의 고택인데 입구에서 아주 늙은 할머니 한 분이 손에 천 원짜리를 몽땅 쥐고 입장료 천 원을 받았다. 말을 걸어보았는데 말귀를 못 알아듣는 듯하였다.

호남은 ㅡ자나 ㄱ자인데 운조루는 ㅁ자란다. 거기에서 가마솥이나 지게 등 옛 물건 등을 보았다. 마당에서 투호 던지기로 저녁 내기를 했는데 모두 넣지 못했다가 마지막에 내가 하나를 겨우 넣었다.

곡전재와 운조루


이상하게 바람이 더 세차게 불면서 갑자기 겨울로 돌아간 느낌이 든다. 옷을 꺼내 입었는데도 덜덜 떨렸다. 마음 같아서는 집으로 빨리 돌아오고 싶었는데 많은 차들로 붐빌 것을 예상하고 늦게 출발하려고 다음으로 천은사에 갔다. 웅장한 절은 쭉 돌아보고 절 앞에 있는 호수를 한 바퀴 돌았다. 산은 나무를 정리하여 다듬어 놓았는데 깨끗했다. 진달래는 군데군데 피어서 자기를 봐 달라고 조르는 듯하다.

천은사와 상생의 길(호수)


다시 차에 오르니 추위에 몸이 노곤해지고 잠이 스르르 온다. 남편은 더 바짝 긴장하여 차를 몰아 며느리가 가 보지 않았다는 남원 광한루에 갔다. 입장료는 3000원이다. 12000원을 내고 들어가니 한가롭다. 원앙과 잉어는 물에서 추운 줄로 모르고 먹이를 찾아 싸움질이다. 원앙 수컷 두 마리가 암컷 한 마리를 마구 쪼아서 내가 소리쳐 말려보았다. 꼭 아이들 싸우듯 콕콕 물고 밀고 쫓고 쫓긴다.

남원 광한루

저녁은 추어탕과 한식 정식으로 먹고 느긋하게 출발했다. 다시 모두 잠에 빠져들고 남편만 열심히 운전을 했다. 생일인데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중간에 지갑을 잃었다고 내 속을 뒤집어 놓기도 했다. 차 밑에서 아들이 찾아줬다. 또 아들과 운전을 바꾸고 과일을 깎아 먹겠다고 차 뒷좌석에 불을 켜더니 과도를 찾느라 온통 과일을 뒤집어 놓고 난리를 치더니 결국 내 엉덩이 밑에 넣어놓고 업은 아기 삼 년을 찾았다. 그러고는 나더러 감추었다고 오히려 적반하장이다.

어이구~ 한 대 때려주고 싶은데 며느리가 있어서 참아야 했다. 속이 부글부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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