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은 잘수록 더 졸리고, 누워 있으면 계속 누워있게 되고, 집에 있으면 자꾸 먹는다. 엄마가 늘 하는 말이다. 주말에 분명히 할 일이 있었지만 책상 근처에도 가지 않은 나는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향했다. 카페에서 2시간 정도 앉아서 이것저것 했으나 정작 해야 할 것은 하지 않았다.
카페는 집에서 3 정거장쯤 되는 곳으로 노트북을 들고 갔지만 문제없었다. 나에겐 따릉이 정기권이 있었으니까! 요즘은 자전거 전용도로도 잘 되어 있어 차도로 다니면서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덥지도 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를 만끽하며 자전거를 타고 룰루랄라 카페에 다녀왔다. 돌아오는 길에는 야무지게 따릉이 임시 잠금도 해놓고 집에서 제법 먼 마트에서 첨가물이 없는 500그람짜리 파스타 소스도 샀다. 뚜벅이라면 노트북에다 파스타소스 1키로는 무리였겠지만 내겐 따릉이가 있으니까. 자차 소유자처럼 따릉이가 있다는 사실에 행복해하며 집으로 향했다.
집 근처 정거장에 따릉이를 반납하고 자전거를 타느라 사용하지 않았던 에어팟을 쓰려고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는 순간, 싸늘하다. 없다. 난 항상 오른쪽 주머니에는 핸드폰을, 왼쪽 주머니에는 에어팟을 넣는다. 오늘은 6월을 맞아 여름 운동복 바지를 꺼내 입은 날이다. 바지가 헐렁해서 빠졌나. 가슴이 철렁했다. 가방이 무거운 것도 잊고 전속력으로 온 길을 돌아갔다. 발은 미친 듯이 움직이며 뛰고, 눈은 미친 듯이 바닥을 훑어보았다. 지나가는 사람이 있으면 혹시 습득하지는 않았나 사람들 손도 보았다. 횡단보도에서 기다릴 때는 당근에 오타가 10개쯤 난 글도 게시했다. 내 에어팟의 생김새와, 잃어버린 것으로 특정되는 장소와, 사례를 하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집에서 도보 15분 거리의 마트에 순식간에 도착했다. 내가 아까 쭈그려 앉아 소스를 고르던 자리를 살펴보고, 마트 직원분께 내 에어팟의 생김새와 연락처를 적은 종이도 전달했다. 마트 옆 다이소도 가고, 아까 갔던 카페에도 전화해서 연락처를 남겼다.
사실 며칠 전에 이벤트 1등에 당첨되어 내가 갖고 있는 모델과 같은 모델을 경품으로 받았다(당첨자 발표 다음날 너무 쿨하게 쿠팡 로켓배송으로 쏴줘서 놀랐다). 그 에어팟이 뽁뽁이도 벗기지 않은 채로 그대로 있다. 못 찾으면 그걸 쓰면 되겠지. 하지만 내 에어팟을 너무 찾고 싶다(그건 당근에 팔고). 선물 받은 케이스와 키링이 달린, 산지 1년도 채 되지 않은 내 에어팟을... 역시 불행과 행복은 같이 오는 걸까. 내가 이렇게 될 줄 알고 행복이 먼저 가드 느낌으로 다가온 걸까 생각했다. 물론 이런저런 생각이 지나가는 와중에도 눈과 다리는 쉬지 않았다.
'난 정말 바보야ㅠㅠㅠ'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미친 사람처럼 뛰어 거의 카페에 다다랐을 무렵 작은 바람을 가져보았다. '내가 진짜 바보여서 사실은 백팩 안에 에어팟이 있었으면 좋겠다'하고. 이미 아까 집 앞에서 가방을 다 뒤져보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백팩 옆주머니(물통 넣는 곳)에 손을 쑥 넣었는데 손에서 느껴지는 익숙한 쉐잎과 무게감. 가벼운 조약돌처럼 부드럽고 손에 쏙 들어오는 그것은 내 에어팟이었다. 손을 꺼내보니 진짜 거기에 있었다. 평소에 거의 사용하지 않는 주머니인데 왜 이게 거기 들어 있었을까 아직도 이해가 안 된다.
그렇게 땀으로 흠뻑 젖어 집으로 돌아왔다. 몸은 힘들었지만 마음은 너무 편-안 하고 기분이 좋기까지 했다. 행복 착즙인가.. 스스로 잃어버리고 스스로 찾아주기. 당근 글을 내리면서 사례금을 나에게 줘야 하나 내게 보상을 줄까 하는 얼토당토않은 생각도 했다. 그나저나 노트북에 소스까지 3키로는 족히 넘을 가방을 메고 지하철역으로 두정거장을 뛰어다니다니. 간만에 유산소를 제대로 했다. 자전거에 러닝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