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에 겹벚꽃을 보러 경주에 다녀왔다. 검색창에 '경주겹벚꽃 시기'를 쳐보니 4월 14일이라는 글이 최상단에 있었다. 이것만 보고 무작정 경주행 KTX를 끊었다. 당일 여행이라 대릉원 근처를 벗어나지 못하고 카페만 두어 군데 다녀왔다. 대릉원 근처는 겹벚꽃이 핀 나무가 별로 없었다. 늦은 시간 피곤한 몸을 질질 끌고 집으로 돌아가는데 동네에 겹벚꽃이 활짝 피어있었다. 이렇게 허망할 데가.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 2년 전에 혼자 왔을 때는 경주 곳곳에 온통 커플룩을 입고 온 커플들만 가득해 조금 심드렁해졌었다. 그런데 이번엔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나도 친구들과 함께 왔다고, 커플이 얼마나 있었는지 커플이 얼마나 있었는지 그런 건 전혀 기억도 나지 않는다. 혼자 여행을 즐긴다고, 외롭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제법 외로웠나 보다 그때의 나는.
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 여행지에서 입었던 청바지와 뒤집어 셔츠를 세탁기에 넣어 돌리고, 햇빛이 가장 잘 드는 곳에 말렸다. 햇살이 가장 뜨거운 곳은 사람도 식물도 자동차도 피하는데 빨래는 반대다. 우리 집 베란다의 햇살은 시간별로 볕이 들어오는 위치가 다르다. 빨래를 널 때는 그 시간에 가장 햇빛이 잘 드는 위치에 건조대를 둔다. 햇볕에 살균되어 바짝 마른빨래는 건조기나 의류관리기와는 다른 느낌으로 상쾌하다. 빨래를 할 때마다 내 내면의 우울함과 어두움도 꺼내 세탁기에 넣고 향 좋은 세재로 빨아 쨍한 햇볕에 널어 말리고 싶다. 구겨진 마음도 굽은 어깨로 다림질로 다려주고 싶다.
그리고 그날 밤, 갑자기 운세 뽑기 종이가 생각났다. 여행을 갈 때 들었던 가방 어디에도 없는, 내 기억 속에 분명히 바지 주머니에 넣어버린 내 올해 운세가. 경위는 이러하다. 황리단길을 지나는데 운세 뽑기 기계와 타로 가게가 꽤 많았다. 흥미를 느낀 우리도 각자 천 원을 넣고 운세를 뽑아보았다. 친구 3명 다 안 좋은 운세가 나와 친구들이 실망하는 와중에 내 것만 좋은 내용이라 머쓱해서 제대로 읽지 못하고 나중에 읽으려고 바지 주머니에 접어 넣었다.
그런데 주머니를 확인하지도 않고 빨래를 돌려버린 것이다. 경솔하다 나 자신. 혹시나 하는 기대로 마른 바지 주머니 속을 뒤져 종이를 찾았지만 이미 한 덩어리로 꽁꽁 뭉쳐져 회생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게다가 바지 곳곳에 종이 조각이 붙어 바지마저 엉망이 되었다. 손으로 떼어도 잘 떨어지지 않고, 돌돌이도 소용없어 다시 세탁해야 할 것 같다. 세탁기 모터 속에도 종이 조각이 들어갔을 것이다.
이런 낭패가 있나. 읽어보고 싶었는데, 내 운세. 그런 거 미신이라고 하면서도 좋은 말은 믿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인데. KTX에서 친구와 떨어져 앉게 되어 그렇게 심심했으면서 그것도 꺼내 읽지 않고 뭐 했을까. 내 대길운 종이는 산산이 조각나 세탁기에, 바지에, 같이 돌린 옷에 여기저기 철썩 붙어버렸다. 이렇게 된 거 바지에 좋은 운세가 다 붙었다 생각하면서 신나게 입고 다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