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방 안에 들여놓았던 빨래 건조대를 다시 베란다로 내놓았다. 며칠을 널어 두어도 마르지 않고 눅눅하고 꿉꿉한 냄새만 풍겨 별 수 없이 방 안으로 건조대를 옮겨두었다. 건조대를 방 구석에 밀어두었지만 옷장 문을 열 때마다 이리 밀고 저리 밀어야 해서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건조대를 베란다를 옮기고 빨래를 널었다. 따뜻한 햇빛이 베란다에 오래도록 앉아 있는 걸 보니 이제 빨래를 널어도 충분히 마르겠다. 날짜를 보니 3월 3일이다. 봄이구나.
전에 살던 집에는 옥상이 있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쓰는 장소였지만 가장 위층인 우리 집과 옆집이 주로 사용했다. 볕이 좋은 날엔 이불도 널어 살균하고, 날이 궃을 때 빼고는 빨래는 항상 옥상에 널었다. 빨래를 널 때마다 내 마음도 꺼내서 깨끗이 빨아 여기 널어 햇볕에 살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유독 날씨가 좋은 날엔 아직 다 차지 않은 세탁기를 돌리기도 하고, 굳이 이불을 꺼내서 돌리기도 했다. 맑은 날 빨래를 해서 탁탁 털고 가지런히 너는 일은 괜히 기분이 좋다. 다 마른빨래에서 햇빛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널어둔 모양 그대로 바짝 마른빨래에서는 햇빛 냄새가 났다. 햇빛 냄새라는 말 외에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는 그 냄새가 참 좋았다. 이불을 빨아 널었다가 걷어와 바로 덮으면 여름에는 아직 남은 바깥세상의 온기를, 가을에는 찬기와 함께 훅 밀려오는 햇빛 냄새를 덮고 잤다. 태양을 가득 담은 포근하고 따스한 냄새다. 이상하게도 베란다에 널어 둔 빨래에서는 햇빛 냄새가 나지 않는다. 아무리 바싹 잘 말라도.
베란다에서도 빨래는 잘 마른다. 잘 마른 수건은 갤 때 바삭바삭 부서지는 느낌이 난다. 빳빳한 수건의 질감을 즐기며 수건을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각을 잡아 갠다. 샤워 후 각 잡힌 수건을 꺼내 쓰면 괜히 기분이 좋다. 누를 때 수건에 닿은 엄지 손가락이 살짝 아려온다. 꼭 한 달 전에 칼에 베여 꿰맨 엄지손가락에는 아직도 밴드를 붙여두었다. 실밥도 뽑았고, 상처도 아물었지만 아직 상처 부위가 어딘가에 닿으면 아프다. 어지간하면 엄지 손가락을 쓰지 않고 있었는데, 나도 모르게 엄지를 사용하고 말았다. 그래도 이전보다 아프지 않아 의아해하며 밴드를 떼어 보니 지난주까지만 해도 잘 보였던 꿰맨 자국도, 갈라진 부분의 선명한 자국도 희미해졌다. 그 자리에는 주변 살보다 유독 분홍빛을 띠는 새 살이 돋아나 있었다.
한 달 동안 참 불편했다. 밴드를 몇 개나 붙였는지 모르겠다. 1센티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상처 하나가 참 오래도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새살이 돋았다.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낮에도 어두운 방에서 무기력하게 누운 채로 나만 빼고 오는 봄을 미워하는 동안, 봄이 올 때까지도 밖으로 나가지 못한 나를 원망하는 동안 우리 집 베란다에 봄이 들어오고, 내 손가락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내가 아무리 침전하고 뒷걸음질 쳐도 그래도 새 살은 돋고 봄은 온다. 기다리다 보니, 기다리며 그저 살아내다 보니 언젠가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