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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Dec 05. 2022

스톨렌이고 싶은 날

 11월 말이 되면 마음이 급해진다. 무교인 나는 크리스마스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지만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져 오면 큼직한 슈톨렌(Stollen)을 준비해 두고 한 조각씩 잘라 먹어야 연말이 된 것 같다. 추운 겨울, 따뜻한 실내에서 가족들과 모여 두터운 슈가파우더를 이불처럼 덮은 슈톨렌을 얇게 잘라 홍차와 먹는 그 순간 만큼은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 것만 같다.


 슈톨렌은 독일 전통 빵으로, 크리스마스를 한 달 앞두고 미리 준비해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한 조각씩 얇게 잘라 먹는다. 독일 드레스덴 크리스마스 마켓 슈트리첼마르크트(Striezelmarkt)에서는 슈톨렌의 독일식 명칭인 슈트리첼(Striezel) 축제가 열리기도 한다.


 독일 대표 크리스마스 디저트가 언제부터 우리나라에서 알려지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보편화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았다. 내 첫 스톨렌은 2017년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국내에서 스톨렌을 판매하는 곳을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지만 요즘은 어지간한 빵집에서 다 판매한다.


 재미있는 점은 마카롱처럼 슈톨렌도 유행과 함께 K화 과정을 거치고 있다. 우리 김치가 그렇듯 슈톨렌도 럼의 종류, 견과류와 건과일, 마지팬 배합 등 재료와 제작 방법에 따라 집집마다 레시피가 천차만별이긴 하나 K 소용돌이를 지나고 있는 한국의 슈톨렌은 오히려 본국보다 더 화려하고 다채로울 것이라 감히 예상해본다. 마지팬을 전통 방식인 아몬드가루 대신 피스타치오 등 다른 견과류로 만든 슈톨렌, 반죽에 코코아파우더나 녹차가루를 넣은 소소한 변형부터 슈톨렌 스콘, 슈톨렌 휘낭시에, 슈톨렌 파운드케이크 등 끝없는 변형을 거치며 K 겨울 시즌 디저트로 자리매김 하는 중이다.


 시즌 디저트이기도 하고, 슈톨렌에 들어가는 건과일을 럼에 짧게는 한달에서 길게는 1년씩 담아 과일에 럼향이 스며들도록 하여 사용하는 것이 기본이라 시즌 한정 수량만 판매하는 곳이 대부분이다. 럼에 보존해 둔 기간만큼 과일에 럼 향이 스며들어 맛이 깊어진다. 시즌을 앞두고 미리 절여둔 과일만큼만 한정수량으로 판매하는 몇 유명한 가게의 슈톨렌을 구하려면 11월 부터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작년에 무척 만족했던 베이커리의 제품을 다시 사 볼까, 새로운 가게의 새로운 스타일의 스톨렌을 경험해볼까 고민이다. 슈톨렌의 크기는 보통 성인 손바닥 두개 정도로 큰 편이고 무게 역시 2kg 안밖에, 건과일과 견과류, 버터와 슈가파우더가 듬뿍 들어가기 때문에 칼로리가 높다. 게다가 난 한 조각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앉은 자리에서 두 세 조각은 순식간에 먹어 치운다. 가격도 보통 3-4만원대로 비싼 편이다. 하지만 연말 이벤트처럼 1년에 딱 한 번 즐기는 재미를 놓칠 순 없어 연말마다 한 두 군데에서만 구입해 즐기려고 한다. 월동 준비처럼 슈톨렌 하나 장만해두어야 연말 기분이 제법 난다. 


 2022년을 마무리하는 12월, 보람보다는 아쉬움이 더 많이 남는다. 생각해보면 언제나 그랬던 것 같다.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올 해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후회와 자책 때문이다. 그런 연말을 설레게 하는 음식이 슈톨렌이다. 원래 슈톨렌은 과일 수확철에 제일 좋은 과일을 골라 슈톨렌 제작용으로 말린 후 럼에 담아 보존해두었다가 사용했다고 한다. 1년의 수확 중 가장 좋은 것을 담은 디저트를 한 조각씩 먹으며 나의 1년 속에서 아쉬움 보다는 잘 했던 것, 이루지 못했더라도 노력했던 것들만 남고 후회와 미련은 다 버릴 수 있었으면 좋겠다. 더도 덜도 말고 연말의 스톨렌 같이 묵직하게(질량을 의미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살아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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