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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Dec 02. 2022

선물은 사람을 닮아

 대학 친구 A의 생일을 맞아 약속을 잡으려고 했지만 일개미 A는 토요일인데도, 생일인데도 근무라고 했다. 이제는 근무를 바꿀 수도 있는 연차지만 생일이어도 딱히 신경 쓰지 않는 성실하고 담담한 성격의 A답다.


 만나서 직접 주면 좋지만 그래도 선물은 당일에 받는 편이 더 기분이 좋으니까 아쉬운 대로 모바일로 선물을 보내기로 했다. 뭘 보내야 하나 고민하다가 몇 년 간 A와 선물을 주고받은 내역을 보게 됐다. A는 올해 내 생일엔 프로바이오틱스 유산균을, 작년에는 공차 기프티카드를, 재작년에도 유산균, 그 전해에는 홍삼을 보냈다. 자잘하게 병치레가 잦은 나를 위한 선물인지 의료계 근무자인 A의 직업병인지 문득 궁금해졌다.


 내가 그동안 A에게 보낸 선물은 주로 식품이었다. 다른 친구들에게 선물한 목록도 살펴보니 역시 먹보의 선물은 식품이다. 내가 음식 관련 기프티콘을 받았을 때가 가장 좋으니 다른 사람에게 자꾸 식품을 선물했던 것 같다. 친한 친구들은 성향도 잘 알고, 무엇이 필요한지 알기 때문에 맞춤형 선물을 하거나 아예 받고 싶은 선물의 링크를 받아 결제만 해주기도 하지만 그럴 수 없는 사이거나 뭘 보내야 할지 고민된다면 가장 무난하게 식품을 선택한다. 


 1만 원대 선물이면 카페 기프티콘, 2만 원대는 치킨 기프티콘, 3만 원대는 비타민이나 배달음식 금액권을 보낸다. 비타민의 경우는 자주 선물해 멘트도 정해져 있다. 진짜 에르메스는 못 주고, 비타민계의 에르메스라 불리는 비타민이라도 선물한다, 건강하고 힘내자 뭐 대충 이런 식의 영업직 종사 10년 차 같은 내용이다. 


 그런데 내 딴에는 무난하다고 생각해 스타벅스나 치킨 기프티콘을 보내는데 그걸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걸 얼마 전에 알게 됐다. 친한 선배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브랜드 치킨 기프티콘을 받았는데 쓰지 않을 것 같다며 내게 주었다. 나는 모든 치킨을 다 좋아하고, 브랜드별로 선호도가 있긴 하지만 그 차이가 크지 않아 그냥 그날 기분에 따라 선택해서 먹는 편이라 치킨 브랜드가 중요한지 정말 몰랐다. 치킨은 그냥 다 맛있는 거 아니었나?


 또 다른 친구는 집 근처에 스타벅스가 없는데 스타벅스 기프티콘을 받아서 난감하다고 했다. 스타벅스가 제일 접근성이 좋아 선물하는 건데, 지방에 거주하는 친구의 경우 그 친구 집 근처나 회사 근처 카페 기프티콘이 더 유용하다고 했다. 스타벅스가 전국 어디나 있지는 않다, 스타벅스 주는 애들은 서울 사는 애들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경기권에 사는 다른 친구는 폴바셋 기프티콘을 받았는데 집에서 폴바셋에 가려면 버스 타고 1시간을 나가야 해서 차라리 서울 가는 날 쓰게 고속터미널 폴바셋에서 만나자고 했다. 생각할 게 참 많구나. 선물은 정말 어렵다.

 

 그간 내가 받았던 선물을 생각해보면 평소에 미용 분야에 관심이 많은 친구는 본인이 사용해보고 좋았던 화장품을 선물하거나, 올리브영 금액권을 보냈다.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친구는 선물도 소품샵에서 정성껏 고른 에어 팟 케이스나 귀여운 그림이 그려진 머그컵을 고른다. 선물을 할 때는 받는 사람의 취향을 고려하긴 하지만 선물하는 사람의 성향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친한 친구들 한 명 한 명을 떠올려보고, 그 친구들이 내게 선물한 것들을 생각해보니 각자의 개성과 마음이 담긴 것 같아 꽤 재미있다. 선물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을 닮기도 하고, 선물하는 사람의 마음을 담기도 한다.


 A를 퍽 좋아하고, 친한 사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이 친구는 뭘 받으면 좋아할까 아무리 고민해도 잘 모르겠다. 긍정적이고 무던한 성격의 예스맨 A는 뭘 받아도 좋아할 것 같다. 내가 뭘 먹자고 해도, 어딜 가자고 해도 항상 OK를 외치는 친구다. 10년 넘은 사이인데도 상대에게 맞춰주기만 하는 이 친구의 취향을 몰랐다.


 몇 시간의 고민 끝에 합리적이고 실리적인걸 좋아하는 친구니까 제일 실용적인 금액권으로 정했다. 별생각 없는, 성의 없는 선물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름 선물 받을 사람을 생각하고 또 생각한 결과다. 다른 사람들도 내게 선물할 때 이렇게 고민하고 나를 생각했을걸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따끈한 순두부처럼 뭉글뭉글해진다. 생일날 만나지 못해 다음 달에 송년회 겸 약속을 정했는데 그땐 이 친구가 뭘 좋아하는지, 어떤 선물이 가장 기뻤는지 꼭 물어보련다. "난 다 좋아" 말고 구체적인 대답을 듣고 말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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