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시간, 길거리 직장인들이 손에 든 테이크아웃 커피의 절반은 따뜻한 음료로 바뀌고, 기온차가 점점 커져 길거리 옷차림에 개성이 넘친다. 반팔 입고 따뜻한 커피를 손에 든 사람과 패딩 입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길에 공존하는 계절, 환절기라고도 하고 초가을이라고도 부른다.
그렇다. 가슴속에 삼천 원을 항시 품어야 하는 계절이 왔다. 가로수에서 떨어진 은행 열매를 밟지 않으려 퐁당퐁당 게임 속 캐릭터처럼 움직이며, 그러나 마음과는 달리 묵직한 몸짓을 뽐내며 길을 지나자니 어디선가 고소한 냄새가 풍긴다.
겨울철 대표 간식 붕어빵이다. 붕어빵 포차가 많이 사라져서인지 우리 동네 붕어빵 가게에 늘 줄이 길다. 우리 집과 요가원 가는 길 중간에 있는 포차에서 나는 고소한 냄새와 줄지어 대기하고 있는 먹음직스러운 갈색의 붕어빵이 유혹하지만 다행히도 운동가는 길이라 참는다.
붕어빵은 우리 겨울 간식의 터줏대감이다. 그동안 나름 다양한 변화를 꿰했지만 결국 오리지널 붕어빵이 가장 사랑받는다. 한 때 백화점 식품관에 줄줄이 입점했던 버터와 패스트리 반죽으로 만든 고급스러운 붕어빵, 마트에서 파는 공장 출신 붕어빵 과자, 심지어 2G 폰을 쓰던 시절 좋아했던 게임 중 하나는 붕어빵 타이쿤이었다. 한때 붕어빵 틀이 유행하며 집에서 붕어빵을 구워 먹기도 했지만 불 조절 난의도가 높아 인기가 오래가지는 못했고, 데워먹기만 하면 되는 냉동 붕어빵도 나오지만 큰 반응은 없는 모양이다. 올 해는 프랜차이즈 카페에서 미니 붕어빵을 줄이어 출시하기도 했다. 틀도 조금 다르고 반죽 맛도 달랐던 잉어빵, 피자맛 슈크림 김치 맛 등 다양한 속을 품었던 붕어빵까지 이런저런 시도를 꽤 많이 했다. 수많은 시도 중 자리 잡아 사랑을 받고 있는 시도는 슈크림 정도라 할 수 있겠다. 팥 붕대 슈붕 논란은 아직도 탕수육 부먹이냐 찍먹이냐만큼 뜨거우니까.
사랑받는 간식인 만큼 붕어빵은 논란도 많다. 가장 대표적인 논란이 팥붕파와 슈붕파다. 소신발언을 하자면 붕어빵의 근본은 팥이다. 또 다른 논쟁은 붕어빵 머리부터 꼬리부터 혹은 몸통부터 먹는 것인지 하는 순서에 대한 논쟁이다. 붕어빵을 어떻게 먹는지에 따라 성격을 알 수 있다는 심리테스트까지 등장했을 정도다. 꼭 닮은 모습을 보고 ‘붕어빵’이라고 표현하기도 할 만큼 붕어빵은 우리 생활 깊숙하게 자리 잡은 간식이 되었다.
한국인에게 이렇게까지 사랑받는 간식이 또 있을까. 저렴한 데다 카드 단말기가 있을 리 없으니 대게 현금으로 구매해야 한다. 현금 들고 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는 요즘은 한 드라마에서 나온 대사를 패러디해서 ‘누구나 가슴속 삼천 원을 품고 다녀야 한다’는 말이 전언처럼 돌기도 한다. 삼천 원을 품지 않아 오랜만에 만난 붕어빵 포차를 쓸쓸히 보내야 했다는 글에는 안타까움과 공감의 댓글들이 달리고, 글을 보며 나도 늘 현금을 품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다 보니 아예 계좌번호를 적어두고 계좌이체를 받기도 하는데 역시 붕어빵을 살 때는 지폐로 가득 찬 통에 나도 같이 천 원짜리를 툭 올려 쌓거나, 오천 원짜리를 넣고 스스로 이천 원을 거슬러가며 괜히 “오천 원 넣고 이천 원 가져가요~” 하고 주인에게 변명하듯 말하는 것이 제맛이다.
아직 매대에 나와있는 붕어빵이 없을 때 포차 안에서 다리를 떨며 붕어빵 굽는 장면을 구경하는 것도 재미있다. 반죽을 붓고 팥을 넣고 뒤집고 돌리고 반복되는 삶의 축소판 같다. 갓 구운 붕어빵 봉지를 가슴에 안고 봉투를 살짝 열어 열기를 빼주어야 집에 갈 때까지 눅눅해지지 않는다. 식어서 자기들끼리 얽힌 채로 축 늘어진 붕어빵은 에어프라이어로도 살리기 힘들다. 미세먼지가 많은 날은 열어야 하나 닫아야 하나 고민이 되긴 하지만 결국 식감을 위해 열고 가는 쪽을 택한다. 한 개는 손에 들고 후 후 불어 먹으면서.
붕어빵 가격은 내 몸속 지방이 늘어난 것처럼 조금씩 조금씩 올라 올해는 우리 동네는 2개 천원이 일반적인 가격이 된 것 같다. 번화가에서는 3개 2천 원인 곳도 있고, 4-5개에 천 원을 받아 유명세를 탄 가게도 있다. 붕어빵 가격이 천차만별이다 보니 붕어빵 시세 지도가 인터넷에 떠돌기도 했다. 원재료값 상승으로 모든 것이 오른 시국이라 놀랍지 않다. 오히려 요즘 물가에 비해 저렴하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더 이상 저렴한 가격이 아닌건 슬프지만 그래도 다른 것에 비하면 싼 편이다. 그래, 올라도 괜찮으니 그저 사라지지만 말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