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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Nov 21. 2022

군고구마의 유혹

 우리 동네 지하철역 출구를 나오자마자 보이는 마트에서는 동절기마다 군고구마를 판다. 한 봉지에 5천 원으로, 그 해 고구마 시세와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4~6개가 들어있다. 맛도 좋고 가격도 저렴한 편이라 하절기에도 종종 생각나 겨울이 그리워진다. 출구에서 나오는 타이밍에 잘 익은 고구마 냄새가 나면 속절없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 고구마를 한 봉지를 품고 나오게 된다.


 지하철역 밖에 군고구마가 있다면 역 내에서 마법같이 사람을 빨아들이는 또 다른 냄새는 델리만쥬다. 요즘은 많이 사라졌지만 10여 년 전만 해도 역사 내 델리만주 파는 곳이 꽤 많았다. 달콤하고 촉촉한 반죽을 작은 틀에 넣고 그 안에는 슈크림을 넣어 앞뒤로 바삭하게 구운 간식으로, 굽는 냄새가 정말 기가 막혔다. 충동구매를 부르는 냄새다. 이 냄새를 그냥 지나치지 못해 지갑을 열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어릴 때 엄마 지인 중에 지하철 역내 가게에서 슈크림 가게를 운영하는 분이 계셨다. 엄마가 이 분을 만나러 가는 날은 설레며 엄마를 기다리곤 했는데, 역시 귀갓길 엄마 손에 들린 콩고물 때문이었다. 얼마 안 되는 그 시절 행복했던 기억이다. 바삭하게 구워낸 슈 안에 달콤한 크림을 넣고, 위에는 화이트와 밀크 초콜릿을 디핑 한 이 간식을 참 좋아했다. 함께 파는 미니 라즈베리파이와 블루베리 파이도 별미였다. 엄마 지인의 말에 따르면 파이를 구울 때가 가장 손님이 많은 시간이라고 한다. 파이 굽는 냄새를 맡고 오기 때문이다. 빵 굽는 냄새는 이성적 사고를 마비시키고 운동신경을 자극해 나도 모르게 냄새를 따라 가게 만드는 이상한 힘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조금 생소할 것 같은 냄새도 있다. 버블티 가게에 들어갔을 때 타이밍이 잘 맞아 펄 삶는 냄새나 차 내릴 때 나는 향기를 맡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펄 삶을 때 특유의 냄새가 있는데, 내가 버블티를 좋아하기도 하고, 이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향기가 묘하게 기분이 좋다. 버블티 가게에서는 차를 다량으로 내리기 때문에 차를 우려서 큰 통에 옮기기 위해 붓는 순간 차 향이 진하게 확 풍긴다. 짧은 순간 퍼지는 차 향은 향수처럼 온 머릿속을 헤집고 나간다. 그 냄새를 맡으면 어쩐지 기분이 한결 좋아진다.


 날씨도 쌀쌀하고, 어쩐지 허한 마음으로 지하철에서 내렸다. 역을 빠져나가는 에스컬레이터 위에 서서 올라갈수록 조금씩 조금씩 더 진해지는 고구마 굽는 냄새를 맡고 마치 원래 고구마를 사려고 했던 사람처럼 자연스럽게 고구마 한 봉지를 샀다. 꽤 묵직한 종이봉투를 어떻게 들고 가나 이리저리 쥐어보다가 결국 내 볼록한 배를 지지대 삼아 배에 얹고 양손을 모아 소중히 안고 간다. 차가웠던 손이 이내 따스해지고, 고구마의 열기가 금세 두툼한 외투를 넘고, 안에 입은 니트를 넘어 내 맨 살까지 닿아 몸이 뜨뜻해진다. 아직 먹기 전인데도 내 두 손에, 뱃속에, 가슴에 온기를 전한다. 따뜻하다. 군고구마 한 봉지 품으니 괜히 웃음이 난다. 빨리 집에 가서 까먹고 싶어 진다. 



 밖에서 닳은 내 마음을 알아채고 이리 오라고 냄새로 나를 부른 것 같다. 집에 가기 전에 차게 식은 마음 다시 데우고, 속도 따뜻하게 채우라고. 맛있는 음식 배불리 먹으면 그래도 조금 나아진다고. 식물들이 곤충들이 각자 독특한 생존 방식이 있듯 음식도 페로몬처럼 자신만의 향기를 강하게 뿜어 유혹한다. 먹는 이를 위로하고, 몸과 마음에 영양을 공급이라는 본연의 임무를 다하기 위해 음식을 먹도록 유도하는 것 같다.


 집에 도착해 후다닥 손만 씻고,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소파 위에 앉아 호호 불며 고구마를 깐다. 껍질은 대충 휴지 한 장 찢어 그 위에 올리고 묵직한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면 달콤하고 부드러운 입 안으로, 식도로, 위로, 장으로 내려가면서 찬찬히 에너지로 전환된다. 역시 고구마는 대표적인 구황작물이다. 적은 양과 비용으로 큰 힘과 위안을 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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