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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Oct 27. 2022

삼겹살과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종종 잊을 수 없는 충격적인 첫맛을 선사하는 음식이 있다. 나의 경우에는 망고 크레이프 케이크, 제주 흑돼지 삼겹살, 집 앞 빵집의 마늘바게트, 피자헛의 리치골드, 흑당 밀크티가 그랬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음식은 자주 먹다 보면 이 맛에 익숙해지고 무뎌져 결국엔 처음 먹었을 때처럼 맛있다고 느끼지 않고, 감동이 떨어져 어느 순간 이후 찾지 않게 된다.


 몇 년 전에 집 근처에 제주식 고기구이 전문점이 생겼다. 늘 대기 손님으로 가게 앞이 붐벼 내 호기심을 자극했다. 기대에 찬 마음으로 처음 그 가게에 갔을 때, 사장님이 살짝 소금만 찍은 두툼한 고기를 내 앞접시에 놓아준 첫 점을 입 안에 넣는 순간 터지는 육즙과 고소함은 실로 놀라웠다. 가격대가 있는 편인 데다가 항상 대기해야 해서 자주 가지 못했다. 첫 방문 날에도 문 밖에서 꼬박 한 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고, 기다림을 감수하면서까지 먹고 싶지 않아 재방문을 하지 못한 채 내 마음속에 한동안 생각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가게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평일 피크타임 이전에는 미리 예약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비교적 수월하게 방문할 수 있었다. 덕분에 두 번, 세 번 방문하니 속상하게도 처음처럼 맛있지 않았다. 물론 여전히 맛은 있다. 하지만 이전과 같이 눈이 번쩍 뜨이는 쾌감이 없다. 음식 맛이 변한 게 아니다. 변한 건 나다.


 경제학 용어 중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라는 것이 있다. 상품 구매량이 많아지면 재화에 대한 만족도의 합인 총효용은 증가하지만 한계효용은 점점 줄어든다. 쉽게 말해 지금 내가 버블티를 마신다면 첫 잔은 효용이 10이라고 가정한다. 이 상태에서 한 잔을 더 마시면 배도 부르고 슬슬 질릴 테니 나의 효용은 7정도로 낮아진다. 세 잔 째는 효용이 5로, 네 잔 째는 3으로, 어느 순간에는 0으로 변한다.


 음식에도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이 적용되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숫자가 늘어나면, 즉 많이 그리고 자주 먹는 만큼 효용이 줄어들기 마련이다. 우리가 매일같이 질리지 않고 먹고 마시는 음식의 경우 이것을 먹을 때마다 너무 맛있다 행복해하며 음미하지는 않으니까. 경제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인 희소성 때문이다. 인스턴트커피와 라면, 김치는 매일같이 먹는 것이라 경제학적 관점으로 본다면 더 이상 귀하지 않으니까.


 고등학교 때 일주일에 두세 번은 가던 학교 앞 즉석떡볶이 가게가 있었다. 평소에도 워낙 손님이 많았지만 석식 메뉴가 아이들의 입맛에 맞지 않는 날에는 발 빠르게 움직이지 않으면 석식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잡기 힘든 곳이었다. 그런 날 친구들끼리 가위바위보로 한 명을 정해 8교시 자율학습이 끝나기 10분 전에 걸린 사람이 먼저 화장실 간다고 교실을 나가 몰래 학교를 빠져나가 미리 자리를 잡기까지 했던, 우리 학교 학생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음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친구들과 그때를 추억하며 그 가게를 다시 찾았다. 너무 속상하게도 떡볶이가 맛이 없었다. 기대가 커서 실망이 컸던 탓도 있고, 대학 입학 후 집과 학교 근처에 한정되었던 우리의 행동반경이 홍대로, 대학로로, 강남으로 심지어 해외로 넓어지면서 우리는 짧은 시간에 넓은 세상에서 맛있고 신기한 음식을 많이 접해버린 후였기 때문이다. 이 경우 한계효용과는 다른 이유로 멀어진 것으로, 고등학교 시절 3년 동안은 한계효용의 법칙에서 예외가 되는 듯했던 그 떡볶이는 자연스럽게 우리에게서 멀어져 갔다.


 그 점이 슬프기도 좋기도 하다. 한때 소중했던,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던 음식이 더 이상은 그렇지 않게 되는 것이니까. 자주 만나면 더 좋아하고 아껴야 하거늘 경제학적 관점에서 본다면 자주 먹을수록 효용이 더 낮아진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이런 성향이라 대학 시절 경제학 수업 성적이 좋지 않았나 보다). 효용이 낮아지는 대신 그것에 대한 애정과 같은 다른 애틋한 감정이 생겨나기 마련이 마련이지만 그것을 측정하기는 쉽지 않다.


 그렇지만 한계효용의 법칙이 존재하기에 인간은 늘 새로운 음식을 탐구하고 탐험한다. 그 결과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식재료와 조리법과 새로운 음식이 생겨났다. 인간이 늘 같은 음식에 같은 만큼의 효용을 얻었다면 아마도 음식의 가짓수가 이만큼 늘어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언제나 음이 있으면 양이 있고, 양이 있으면 음이 있는 법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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