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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Dec 13. 2021

토스트포차

원글 작성일 2021.2.5.

* 2020년부터 작성해둔 글을 브런치 개설 후 하나씩 올리고 있습니다. 글 작성 시점과 현시점이 맞지 않는 점 양해 부탁드리며, 원글 작성일은 제목 하단에 적어두었습니다.


미세먼지도 없고 날도 따뜻했던, 절로 기분 좋아지게 하는 늦겨울 금요일 아침 출근길이었다. 평소 다니던 길은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들이 길 양쪽에 서 있어서 그 길을 지날 때는 종종걸음 치거나 뛰어도 마스크 사이로 담배연기가 가득 들어오곤 했다. 그날은 비교적 시간이 여유 있어 조금 돌아가야 하는 큰길로 갔다.


 멍하니 걷다가 고소한 냄새가 나는 곳을 보니 길 가장자리에 토스트 포차가 있었다. 양배추와 당근, 계란을 철판에 부쳐 케첩과 설탕을 살짝 뿌리고, 마가린을 듬뿍 발라 구운 식빵에 끼운 옛날 토스트다. 얼마 만에 보는 옛날 토스트인가. 길거리 토스트 노점을 보기 힘들어진 요즘이다. 배가 별로 고프지 않았음에도 이건 먹어야겠다 싶었다.


 조류독감 파동으로 한 판에 10,500원이나 주고 사 오셨다는 계란을 두 개 반이나 넣어 갓 구운 토스트를 2천 원에 팔다니, 게다가 요즘 값이 많이 올라 한단에 5천 원이라는 대파도 들어갔는데 이거 적자 아닐까 괜히 마음이 불편하다. 현금이 없어 계좌이체를 해도 되냐 물으니 환히 웃으며 "나중에 받아도 되는데, 손님들이 깜빡한다고 계좌이체를 더 선호해." 하며 통장을 통째로 내민다. 계좌번호만 따로 적어두시지 통장을 통째로 보여주시다니. 혹여 범죄에 악용되지는 않을까 오지랖까지 발동한다.


 점심도 혼자 먹는 나는 출근해서 하루에 한 마디도 안 하고 퇴근할 때도 있다. 업무 관련 통화를 하기도 하고, 종종 담소를 나누기도 하지만 대체로 대화는 3분 안팎으로 끝난다. 이날 아침은 토스트를 먹는 10여분 동안 토스트 가게 아주머니와 수다를 마음껏 나누었다. 전에 토스트 배달 갔다가 주소를 잘못 찾아가 허탕 친 이야기, 배달 담당 남편이 오늘 몸이 안 좋아 못 나온 이야기, 창동에서 토스트집 하던 이야기까지. 평일 기준 며칠분 안면근육을 사용해 말하고, 웃었다.


 아침으로 계란 두 개 반에 야채, 빵 두쪽까지 먹으니 배가 빵빵해진다. 뜨거울까봐 토스트를 반으로 자르고, 처음 반을 먹을 동안 나머지 반을 식지 않게 철판에 보관해주신다. 출근시간이 가까워져 급한 마음에 마지막 남은 한 입을 크게 입안에 욱여넣었더니 입 안에서 뜨거운 김이 폴폴 난다. 내가 증기기관차가 된 것처럼 입에서 김이 펄펄 난다. 토스트 하나에 입안도 뱃속도 무엇보다 마음이 후끈거린다. 후아 후아 입 안의 열을 식히며 나도 모르게 배시시 웃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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