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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Oct 28. 2021

서울역과 맥도날드

 출장 차 아산에 갈 일이 있었다. KTX 시간에 맞추다 보니 점심은 간단히 서울역에서 해결하기로 했다. 역 안을 훑어 빠르게 먹고 나갈 수 있는 음식을 찾다가 맥도날드로 향했다. 얼마 만의 맥도날드인가 반갑기까지 하다. 회사 근처 맥도날드가 없어진 후 한 번도 가지 않은 것 같으니 거의 2년 만인 것 같다.


 2005년 베이컨 토마토 디럭스 버거(이하 BTD)가 출시된 이후 맥도날드에 가면 언제나 BTD 세트를 고수했다. 처음 BTD를 먹었을 때 충격을 잊을 수 없다. 시간이 지나면 입맛도 변하기 마련인데 오랜만에 먹은 BTD는 여전히 너무 맛있었다. 그때 한창 하던 프로모션인 삼천 원송이 귓가에 자동 재생되는 추억의 맛이다. 참고로 삼천 원 송은 말미에 따라랑~ 하는 소리를 제외하고는 가사가 전부 삼천 원이다. 세트가 삼천 원임을 강조하는 파격적 시도였고, 히트를 해 나와 동년배라면 사암천원~하고 운만 띄우면 대부분 삼천 원 삼천 원 하고 따라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오랜만에 먹었는데도 고등학교 때 매주 토요일, 점심으로 먹던 그 맛이 여전했다.


 다만 변한 것이 있다면 내 위가 늘었나 보다. 그땐 패티가 2개 있다는 것이, 버거가 이렇게 두툼하다는 것이, 그래서 높은 버거를 지지할 수 있는 종이가 들어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너무 커 한 번에 버거 하나를 다 먹지 못해 남겼었다. 아 물론 처음에만 그랬고, 매주 먹다 보니 가볍게 클리어할 수 있게 되었지만. 그런데 오늘 본 버거는 너무 작아 보여 내 위가 많이 늘었나, 그래서 이렇게 살이 쪘나, 요즘 도톰한 수제버거에 익숙해 작아 보이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이 들었다. 갑작스러운 한파와 장마로 양배추 수급 불안정해져 양배추 양을 적게 넣거나 아예 빼버려 납작해진 버거를 두고 마카롱 버거니 불고기 마카롱이니 하는 말이 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버거를 다 먹고 난 기차 안에서였다.


 라떼 햄버거 이야기를 또 하자면 서울역 맥도날드 바로 옆에 자리한 롯데리아를 빼놓을 수 없다. 맥도날드와 버거킹이 고등학교 시절 추억이라면 초등학교 추억은 국내 브랜드 롯데리아와 함께한다. 그 시절 초등학생의 생일파티는 롯데리아에서 하는 것이 당연시 여겨지는 분위기였고, 남희석과 한스밴드가 함께 출연하는 라이스버거 티브이 광고에서 고개를 양옆으로 갸웃거리며 "롯데리아~ 라이스버거~" 하는 대사가 유명했다. 이 시절 한국인의 입맛에 맞춰 빵 대신 밥으로 만든 라이스버거, 한국에만 있다는 불고기버거, 새우 살이 들어간 새우버거는 한국형 버거의 대표주자였다. 라이스버거라 하면 요즘 학생들은 봉구스 밥버거의 단무지와 김치, 참치가 들어간 봉구스밥버거를 떠올리겠지만. 밥 위에 마요네즈 소스와 고기 패티, 야채가 켜켜이 쌓인 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조합이 꽤 맛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 말고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았는지 얼마 전 롯데리아 공식 SNS를 통해 진행한 레전드 버거 선발전에서 나름 선방하여 재출시되기도 했다.


 우리 동네 나름 번화가에 위치해 내 초등학교 시절 나를 비롯한 반 친구 대부분의 생일잔치를 담당했던 롯데리아가 폐업하고, 어느 새부터 나도 버거킹 와퍼에 눈을 떠 와퍼만 찾게 됐다. 중학생 때 처음 와퍼를 먹고 패티에서 나는 은은한 불향과 육즙에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 버거킹은 번화가에만 있어서 버스를 타고 학교에 다니는 고등학생 언니가 사다 주는 와퍼를 먹으려고 언니의 하교만 기다렸다. 밤 10시에 언니 가방에서 나온 차게 식은 와퍼를 나눠먹으며 참 행복했다.


 고등학교 땐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학교 앞에 2층짜리 큰 맥도날드가 있어 매주 토요일은 맥도날드 런치세트를 먹는 날이었다. 학교 앞 사거리에 위치한 맥도날드는 식사 후 친구들과 마음껏 수다 떨 수 있는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에 따뜻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공간이었다. 창가에 앉으면 학교 친구들이 하나둘 귀가하는 모습을 보며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고, 방과 후 2층에는 거의 우리 학교 학생들로 가득 차 친구의 감자튀김을 뺏어 먹거나 합석하여 수다를 떠는 즐거움도 컸다. 오전 내내 학교에 같이 있던 친구들인데 거기서 만나면 또 반가워서 인사하고 남은 돈을 모두 모아 감자튀김과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또 수다를 떨었다.


 내가 앉은 창가 1인석 정면으로 열차정보가 계속 바뀌는 전광판이 보인다. 내가 타야 하는 천안아산역행 열차 정보가 전광판에 뜨자 서울역 맥도날드에서 시작한 추억여행이 고등학교, 중학교,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 다시 현재로 돌아온다. 역시 기차역은 떠나면서 동시에 돌아오는 공간이구나 생각하며 기차를 타러 급히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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