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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야 Sep 02. 2021

삶은 쓰디쓰다.

원글 작성일 201029

삶은 쓰디쓰다.

死生苦兮(사생고혜)


일연(一然, 1206~1289)의 『삼국유사(三國遺事)』 권4 에 나오는 구절이다. 13세기 고려의 승려이자 학자에게도 삶은 고달팠나보다.


 800년이 지난 지금을 사는 나에게도 삶이 쓰긴 마찬가지다. 친하게 지내는 직장 상사가 요즘 현실이 너무 고달파 스트레스 해소 방안으로 게임을 시작했다고 한다. 게임에 집중하는 순간에는 잡다한 생각과 업무로 인한 고통을 잊을 수 있고, 퇴근 후 게임, 일어나 출근을 하며 현실의 고통을 달랜다고 한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는 게임은 '프린세스 메이커2'라는 일본 게임으로, 11살의 딸을 입양하여 성년이 될 때 공주로 키워내는 것이 목표이다. 왕자와 결혼하는 것이 목적이니 퀸 메이커라고 하는 것이 더 맞는 표현일 것이다. 게다가 성공한 미션이 결혼이라니 지금 돌이켜보면 무척 시대착오적인 발상이고, 어린이 게임 내용이라니 그 영향을 받은 내 동년배의 어린이가 염려되지만 20여 년 전 게임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게임 속 나의 딸의 삶도 고달팠다. 아르바이트라는 노동을 통해 돈을 벌어야 하고, 이 돈으로 교육비, 의복비, 휴가비 등을 충당해야 했다. 공주가 되려면 다방면으로 일정 수준의 능력치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를 배워야만 한다. 교육을 위해 노동을 너무 많이 하면 일정 나이가 되었을 때 필요한 능력치를 달성하기 힘들고, 노동을 하지 않으면 돈이 부족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딸이 노동을 많이 하면 스트레스가 쌓이게 되어 휴식을 갖게 해주어야 하는데, 용돈을 주거나 큰 비용을 들여 바캉스를 다녀오면 스트레스 해소가 용이하고, 아빠와의 관계도 돈독해진다. (어릴 땐 몰랐는데 어른이 되고 보니 현실을 꽤 반영한 게임이 아닌가 싶다. 물론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돈만 많으면 충분히 교육시키고, 공주로 만들 수 있겠다 싶어 DOS(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인 시절 486 컴퓨터, 운영체제는 무려 도스였다.) 내 설정으로 들어가 기본 능력치를 '살짝' 변경시켰다. 편법을 사용해 게임 시작 시 돈을 최대치로 설정해 어릴 때부터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교육받게 만든 것이다.


 그러나, 돈만 많으면 뭐든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것과 달리 교육만으로는 불가능한 것이 있었다. 교육으로는 올릴 수 없는 능력치인 화술, 근력 등은 아르바이트를 통해 함양해야 했다. 딸과 대화를 많이 하고 시간을 보내야 딸이 불량소녀가 되지 않는다. 또한, 돈 벌랴 공부하랴 시간이 부족했던 때와 달리 반복적으로 교육만 받으니 시간이 더디 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돈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느꼈던 불안감과 1년에 한 번 있는 대회에서 우승해 상금을 받았을 때의 짜릿함 사이 롤러코스터 같은 감정을 느낄 수 없어서인지 게임의 집중도도 떨어졌다. 돈이 많아도 세상이 즐겁고, 꽃길인 것만은 아님을 어린 시절 가상 세계를 통해 배운 셈이다.


 쓴 맛이 있기에 즐거운 일이 있을 때 더 달게 느껴지고, 그렇기에 인생은 희로애락이 있어 즐거운 것이라고 만족하며 살기에 현실은 너무나 쓰기에 이번 주도 퇴근길에 복권을 5천 원어치 구입했다. 내가 복권을 살 때마다 그 돈으로 차라리 빵을 사 먹으라며 핀잔을 주던 동생이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함께 맞춰보자며 더 호들갑이다. 사생고혜, 이 문장을 쓴 일연은 어떤 사연이 있었기에 저런 문장을 썼을까. 


* 한국고전번역원 홈페이지에 문장이 나오게 된 배경 이야기를 볼 수 있습니다. 배경 이야기보다는 저 문장 자체에 집중하여 쓴 글이기 때문에 내용을 적지는 않았습니다. 페이지 링크를 따라가시면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m.site.naver.com/0QDs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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