悪は存在しない, 하마구치 류스케, 2024
‘사상은 없다. 다만 사건만 존재할 뿐이다.’ 하이쿠를 접한 롤랑 바르트가 영 도(degré zéro)의 에크리튀르를 꿈꾸며 남긴 말이다. 하마구치 류스케 감독의 장편 영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자연물의 천연한 병렬과 장면의 반복을 통한 특유의 리듬에서 하이쿠적인 정취를 풍긴다. 영에 수렴하는 온도로 개진해 나가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의 어법은 어떠한 인간적 선입관념도 담지 않으려 노력하는 듯하다. 울울창창한 숲속을 담는 오프닝 이전에 반석에 새긴 문장처럼 단연한 영화의 제목이 선언처럼 등장한다.
타카하시(코사카 류지)와 마유즈미(시부타니 아야카)는 일본의 산골 마을인 하라사와에 글램핑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설명회를 연다. 사실 그들은 연예기획사 소속 직원이었고, 단지 코로나 정부 보조금만을 목적으로 계획한 사업이기에 마을 사람들로부터 많은 반감을 사게 된다. 도쿄로 돌아간 둘은 회의가 끝난 후 상사로부터 마을 주민 중 한 명인 타쿠미(오미카 히토시)에게 글램핑 관리인 일을 제안하라는 억지스러운 명령을 받는다. 마을을 재방문하는 길에 타카하시는 비전 없는 자신의 삶과 회사에 회의를 느끼고, 스스로 관리인 일을 자처하여 마을 주민으로 살아볼 것을 고려한다. 그러던 와중 타쿠미의 딸인 하나(니시카와 료)가 실종되고 타쿠미와 타카하시는 하나를 찾아 나선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얼핏 자연과 도심의 갈등과 화합을 다루는 드라마의 전형적인 얼개를 두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영화의 독특한 연출법과 미스터리 한 결말은 그러한 전형성을 전복시킨다. 카메라는 시종 땅 고추냉이나 자동차의 후미, 사슴 뼈 그리고 대기 중 미립자의 시점 쇼트을 담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을 통해 관객의 관점을 영화 속 인물이 아닌 자연물로 위치시킨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관객에게 아주 전지적이거나 아주 겸양한 상태로 영화의 일부가 되기를 요구한다. 그리고 이러한 요구를 따른다면 미스터리한 결말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주인공인 타쿠미는 농지개척 3세대로서 자신을 마을의 심부름센터라고 소개한다. 그는 어떠한 과거나 개연성을 부여받지 못하는데, 종잡을 수 없는 인물인 타쿠미는 인물이 아닌 환경의 역할을 한다. 그렇기에 타쿠미가 타카하시를 공격하는 이유는 사슴이 하나를 공격한 이유와 같다. 자기 자식이 위협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슴이 하나를 공격한 것을 악하다고 여기지 않듯이, 환경으로 갈음된 타쿠미라는 인물이 타카하시를 공격한 것도 악하다고 할 수 없다. 다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샘물처럼 악의 없는 자연의 연쇄 작용일 뿐이다. 그러고 보면 사슴, 하나, 타쿠미 그리고 타카하시가 대치하고 있는 장면은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하던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와 퍽 닮아있다. 먼저 움직인 하나와 타카하시는 룰(자연의 규칙)을 어겼을 뿐이고, 각각 사슴과 타쿠미라는 환경으로부터 응징당하는 것이다.
글램핑설명회에 참석한 하라사와의 주민들은 얼핏 자연 친화적인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자연의 입장(그리고 자연의 시선과 합치된 관객의 입장)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마을 주민 또한 외부인이고, 그들 역시 자연을 파괴하고 있다는 타쿠미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타쿠미는 전기톱과 도끼로 나무를 베고, 마을 사람들은 총으로 사슴을 사냥한다(오히려 도쿄에서 온 타카하시와 마유즈미는 총소리를 태어나서 처음 들어봤다). 심지어 땅 와사비를 따면서 중간중간 그것을 먹는 장면은 이미 땅 와사비와 일체화된 관객을 잡아먹는 것과 같아서 폭력적이다.
여기서 나무를 베는 전기톱의 색깔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주황색이다. 주황색은 파란색과 함께 영화의 주요한 색으로 기능한다. 하라사와의 주민으로 살 것을 결심한 타카하시의 경우 주로 주황색 외투를 입고 있으며, 타쿠미와 하나는 파란색 옷을 입고 등장한다. 그러니까 주황색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문명의 이기 사이의 적당한 타협점 혹은 화합의 가능성을 상징하고, 파란색은 자연 친화적인 인간성을 상징한다. 그리고 주황색과 파란색은 각각 도쿄와 하라사와, 하라사와와 자연 사이를 이으며 그 균형을 제시한다. 도식화하자면, ‘도쿄-(주황색)-하라사와-(파란색)-자연’의 형태가 된다. 그러나 그 타협점과 자연 친화적이라는 개념 또한 어디까지나 인간 중심적인 사고에서 비롯되었기 때문에 균형은 진작에 깨졌던 것이고, 영화의 막바지에서 두 색깔은 모두 소멸하게 된다. 타쿠미와 하나는 안개 속으로 사라지고, 타카하시는 프레임 바깥에서 비틀거리며 등장해 괴로워하다가 다시 쓰러지게 된다. 타카하시는 치명상을 입은 사슴처럼 움직이지 못해 죽을 것이다. 외지인인 타카하시가 사슴이라는 자연물로 환원되는 것이 흥미롭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인간이란 애초에 자연과 대립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거대한 자연 속에 품긴 무기력한 일부이며 죽음 이후에 다시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하나는 부재한 그녀의 어머니를 그리워한다. 타쿠미의 아내이자 하나의 어머니에 대한 정보는 사진으로만 얻을 수 있는데, 그녀는 피아노를 연주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나는 꿩 깃털을 선물 받은 마을회장으로부터 새의 날개로 쳄발로라는 건반악기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 이후 하나는 새에게 묘한 집착이 생겨 깃털을 줍기 위해 위험한 곳까지 홀로 나선다. 추측건대, 하나의 어머니는 건반악기를 통한 음악으로 가족과 유대를 쌓았고, 하나는 그녀의 어머니를 새에 투영한다. 그러고 보면 하나를 비춰줄 때, 스매시 컷으로 장면이 전환되면서 절단되는 음악은 어머니와의 교류가 끊긴 하나의 상황처럼 느껴져 처연해진다.
오프닝에서 로우앵글로, 나무로 뒤덮인 하늘을 보며 전진하는 듯한 장면은 나무 밑동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는 하나의 모습으로 전환된다. 이러한 장면의 전환은 오프닝이 하늘을 보며 걸었던 하나의 시점 쇼트인 것으로 여기게 만든다. 그런데 타카하시는 사슴으로, 하나의 엄마는 새로 환원되는 것처럼, 하나는 샘물로 환원되는 듯하다. 하나의 시점 쇼트인 듯한 오프닝과 엔딩 장면은 이제 흐르는 샘물의 시점 쇼트과 겹쳐서 보인다. 그러고 보면 빽빽한 숲속을 올려다보며 전진하는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은 마치 상류에서 하류로, 낮에서 밤으로 흐르는 샘물의 시선으로 느껴진다. 상류에서 벌인 행동은 계속 쌓이고 쌓여 결국엔 엄청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선도 악도 아닌 그저 현상일 뿐이다.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다만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샘물의 이야기이다. 엔딩크레딧이 다 올라간 후 다시 등장하는 ‘악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선언은 결국 일종의 명제로 자리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