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붉은 수수밭>

공부를 시작한다!

by 도시산책자

영화를 두 번 보고 나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장예모 감독은 어쩌면 이 영화를 만들어, 아시아인이 아닌 서구 유럽, 백인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건 아닐까. 가장 로컬적인 것으로 로컬 출신의 한계를 넘어서고 싶은 욕망에서. 심하게 어깃장을 놓자면, 예능 프로그램에 나와 자신의 ‘사연팔이’를 하는, 그렇게 해서 인지도를 높여보자는 그런 신인들처럼 말이다. 그런 의심이 들자, 뭔지 모르게 이 영화에 대해 반발심, 원인 모를 반항심이 싹터 버렸다.


못된(?) 서구인의 눈에, 두 부류의 아시아인이 등장한다. 중국인과 일본인. 술에 오줌을 싸고, 나귀 한 마리에 친딸을 팔고, 1930년대 임에도 입고 있는 옷가지들은 신석기인들과 별반 차이나지 않는 중국인이 그 한 부류이고. 남의 나라에 쳐들어가 살아있는 인간의 가죽을 벗겨내고 있는 잔인무도한 전쟁 마귀들인 일본인이 나머지 한 부류이다. 그 어느 쪽도 서구인들에게 아시아인이란, 자신들만한 문명인들은 결코 아닌 것이라 인식되지 않을까.


영화 <붉은 수수밭>은 노벨문학상을 받은 중국 소설가 모옌이 쓴, <홍까오량가족>. ‘붉은 수수밭 가족’이 원작이다. ‘매체가 메시지’란 말을 신봉하는 나로서는, 굳이 이 영화를 그 원작과 비교해 이러쿵 저러쿵 따질 마음은 없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고, 영화로 말해야 할 뿐이고, 원작은 말 그대로 원작일 뿐, 영화랑 그 어떤 혈연관계도 없다고 보며, 있더래도 끊어내야 하는 쪽에 한 표를 던지는 편이다. 하여 오로지 영화 <붉은 수수밭>안에서만, 이 영화가 비춰주는 세상만, 독해해 보고 싶다. 앞서 말한 의심과 반항심 가득한 시선으로 말이다.


헉, 아니다. 그럴려면 원작과의 비교가 필수적이어야겠다. 원작이 가지고 있던 ‘무엇’을 감독 장예모가 삭제해 버린 것인지를 제대로 파악해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서구의 상상력과 편견이 투영된 '환상적', '미개한', '신비로운' 이미지로 아시아를 ‘빚어내’ 그들의 허기진 호기심과 자만심을 자극해 그해에 열린 베를린 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받기 위해, 감독 장예모가 영악하게 ‘조작’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서는 말이다.


아, 그전에 에드워드 사이드의 명저, <오리엔탈리즘>부터 읽어보자. 누가 알겠는가. 이 많은 의심과 반항심으로 시작한 여정이 결국은 <붉은 수수밭>과 감독 장예모에 대한 애정으로 끝나게 될지도 모르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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