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복대차고 뛰어

신생아중환자실 문 앞. 복대를 찬 엄마들.

by 아기엄마

아기 면회를 너무도 가고싶었던 나. 제왕절개 때문에 옴짝달싹 못하다가 3일째부터 걷기 시작했다. 아기를 보러가겠다는 생각에 그 동안 먹지않았던 미역국도 간식도 다 먹었다. 코로나 19로 남편을 제외한 보호자가 면회를 올 수가 없었고, 외부인 접촉을 금지했다. 그로인해 산부인과 2층은 엘레베이터가 작동하지 않아 계단으로 내려가야했는데 자연분만이든 제왕절개든 계단으로 내려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였고, 간호사실 바로 옆에 계단이 있었기 때문에 몰래 나가기 쉽지않았다.


걸리면 강제퇴원 당할 각오를 하고, 나는 4일째 계단을 내려갔다. 누가 붙잡을까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복대를 차고 뛰었다. 병원 문밖으로 나가니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고, 남편이 차를 내앞에 세웠다. 아무도 신경쓰지 않았지만 우리는 나름 진지한 007작전이였다. 전남대학교 병원 NICU(신생아중환자실) 앞에 가니 나처럼 복대를 차고 폴대를 끌고 온 산모들이 있었다. 동병상련이라는게 이런 걸까? 문 앞에 모인 우리는 조금이라도 더 빨리 더 오래 아기를 보겠다고 줄을 섰다.

신생아중환자실에 들어가니 A부터 F까지 구역이 나뉘어져 있었고, A가 제일 안쪽. F가 문앞에서 가까운 쪽이였다. F구역. 장루를 달고 있는 아기. 내 아기. 밤새 열심히 유축해온 모유를 간호사에게 건냈다.

속으로 '잘먹여주세요.' 라고 빌었다. 먹일지 안먹일지 모르지만 그 뒤로 열심히 모유를 짜서 면회때마다 전달했다. 그것밖에 지금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규정상 동영상을 찍을 수 없어 사진만 찍어 면회 후에 남편에게 보여줬다. 가만생각해보면 아기를 보러 매번 양보해준 남편에게 고맙다. 그렇게 면회에 성공한 남편과 나는 007작전을 이어가다 일주일되는 날 퇴원을하고 그 다음날부턴 고작 10분짜리 면회를 위해 집에서 한시간 떨어진 대학병원을 향해 달렸다.

1년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해보면 몸도 마음도 너무 힘든 날들이였다. 그런데 가장 힘든 것은 아기가 집에 없다는 것이였다. 얼른 아기를 집에 데려오고 싶었다.



작가의 이전글2. 쇄항? 그게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