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갈거야.
전공의 파업의 새삼스럽지 않았던 건. 임신했을 때부터 전공의 파업이 매일 뉴스에 나왔다.
그러나 아픈사람들의 일. 그리고 서울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지방에살며 임신기간동안 입덧도 임당도 없던 나에게는 상관없는 먼 이야기였다.
그러나 아기가 태어나자 상황은 180도 변했다.
쇄항아기는 3가지수술을 받아야했다.
48시간 이내에 장루수술, 장루복원술, 항문성형술.
사실 신생아 중환자실에 입원해 있으면서 자세한 설명을 듣지못한 나는 표현하진 못했지만 병원에 불만이 있었고, 챙겨줄 거란 생각은 어린아이같은 마음이란걸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를 위해서라면 엄마들이 묻고 따지고 왜 극성맞아지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서울로 가고싶어. 2차 수술은 서울에서 해줄거야."
무조건 갈 생각으로 비장하게 말했다.
"나도 그럴려고했어."
그렇게 안맞는 로또같은 남편이지만 위기 속에서 우리는 쿵짝이였다.
서울의 big 3 병원(서울대, 서울삼성병원, 세브란스) 중에서 고민했지만, 병원을 결정하고 난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전공의 파업 때문에 안받아주면 어쩌지?라는 걱정이 무색했다. 인터넷으로 외래접수를 하고, CD와 의무기록사본, 검사결과지 등을 들고 서울삼*병원으로 향했다.
큐알코드 없이는 들어올 수 없는데도 그 안에 사람들이 시장통마냥 바글바글 했다. 이 많은 사람들이 병원안에 있단 말인가? 그 동안 나는 얼마나 감사한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가. 긴장한 첫 외래는 유쾌한 의사선생님으로 인해 금세 풀어졌다. 쇄항이 아무것도 아닌것처럼 말씀하셨고, "허허. 아기나 잘키워와"라고 말했다. 역시 서울로 오길 잘했어. 이때가 24년 5월 초여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