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만원이면 영어 만점

프롤로그

한국의 공교육 커리큘럼을 충실히 따랐다면 대략 12년 동안 영어를 접했을 것이다. 특히 고등학생이 되면 정말 미친 듯이 영어 공부를 한다. 하지만 대학교에 들어가서 영어를 사용해보려고 하면 못한다. 내 대학 친구 중 토익 850이 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아직 못 봤다. 하지만 상당 수가 “난 아직 영어로 글도, 말도 잘 못 하겠어. 넌 어떻게 영어 공부했어?”라고 말한다. 실제로 세미나 혹은 토론 형식의 수업에서 대본 없이 발표를 못하는 것은 매우 흔하고, 또 상당수는 한글로 리포트를 작성한 후 다시 영어로 번역하기도 한다. 왜 그럴까?


나는 영어를 잘한다. 정확히 말하면 영어를 잘 활용한다. 하지만 내 토익 점수는 910점대이며, OPIC 점수도 IH정도로 최고 수준은 아니다. 다만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이 정도 점수가 나오기에 영어공부 스트레스가 거의 없다시피 하다. 왜 그럴까?




사실 누군가에게 내 점수는 얻고 싶은 점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딱히 자랑할 만한 점수도 아니다. 수능까지 영어 공부에 충실했고, 정말로 제대로 된 영어를 공부했다면 쉽게 토익은 800점대에 OPIC 역시도 IM 수준까지는 도달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능 점수보다도 낮은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졌다.


이런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면 “너는 해외에 갔다 왔나 보지.” “너는 꾸준히 했잖아.” “어렸을 때부터 배우면 누가 못해.”


난 대학교에 와서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봤다. 그것도 내 돈으로 말이다. 제대로 된 어학연수에는 2000만 원이, 교환학생도 한 학기에 1000만 원이 든다 길래 엄두도 못 냈다. 내 영어 공부는 중학교 2학년 이후로 거의 멈췄다. 물론 학원은 꾸준히 갔지만 학원 선생님께서 딱히 더 배울 것도 없으니 와서 공부 좀 하고 모르는 것만 물어보라고 하실 정도였다. 그리고 난 초등학교 6학년, 그중에서도 중학교로 진급하기 직전 겨울방학에서야 영어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특별한 환경에 있었기에 영어를 잘한 것처럼 보이는가? 아 혹시 몰라 말하지만 우리 부모님은 두 분 다 영어를 못하신다. 정말 처음 내가 대학교에 입학해서 룸메이트를 만난 날, 짐을 옮겨 주시느라 함께 오신 부모님의 모습을 봤다면 ‘아 영어를 못하시는구나.’ 바로 알 수 있다. 스칸디나비아반도에서 온 195cm의 백인 모습에 크게 눈을 뜨고 두 손을 흔들던 모습을 잊을 수가 없다.


그럼에도 나는 영어를 잘 사용한다. 대학교에서 첫 외국인 교수님은 당연하게도 내가 외국에서 살다 온 줄 아셨다. 전공 교수님은 내가 쓴 전공 답안지를 학생들에게 보여주며 영어로 리포트와 같은 글을 쓰는 법을 알려주셨다. 용돈이 필요할 때는 친구들의 리포트를 번역해 줬고, 여행에서 외로울 때는 여행 온 외국인과 버스 안에서 친구가 돼 사진-메이트가 됐다.


이렇게 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단 2달, 조금 바쁘면 반년이면 충분하다. 나한테도 시험해 봤고, 내 친구에게도 시험해 봤다. 그리고 내 사촌 동생들에게도 시험하고 있다. 그리고 이름난 많은 영어 강사들이 말하는 원칙과도 잘 맞다.




초등학교 시절 영어는 못했지만 친구가 없고, 딱히 잘난 것도 없었기에 공부라도 잘하고자 영어 책에 나온 지문 전체를 다 외워서 매번 영어시험 1등을 했다. 중학생 시절 더 이상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아서 두 달 동안 내 방식으로 영어를 공부했다. 많은 단어는 몰랐지만 많은 말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는 영어를 가지고 놀러 다녔다. 토론부를 만들었고, 전국 영어토론대회입상은 물론이고, 길거리에서 외국인 인터뷰도 했다. 대학생이 돼서는 다들 영어로 골머리를 쓰며 방학을 보내고 돈을 쓸 때, 영어로 경험을 쌓았다.


한 번만 해보자. 어렵지 않다고 장담한다. 운동처럼 조금 귀찮을 수는 있다. 하루에 20분 정도? 그리고 일주일에 하루 1시간 정도만 있으면 된다. 운동 루틴처럼 1주일에 4회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언어나 이론, 그리고 여러분이 배우는 수많은 학문들은 미디어예요. 그저 여러분이 가진 콘텐츠를 잘 전달하기 위한 미디어라는 걸 잊어서는 안 돼요.”

이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이제는 이해해 보자. 번역이 쉬워진 시대에도 영어를 잘하는 건 장점이다. 그들의 문화를, 그들의 언어로 즐길 수 있는 자신감, 내 생각을 그들의 언어로 전할 수 있는 자신감, 그리고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자신감. 어디서든 영어가 나오면 날 찾는 친구들 사이에서 생기는 자신감. 다 즐거운 일임에는 변함이 없으니까.




<오늘의 체크리스트>

당신에게 영어는 스트레스의 원인인가 아니면 새로운 콘텐츠를 소비할 수 있는 미디어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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