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 소개하지.”

잔소리하는 아들내미 프롤로그

브런치 작가 신청 결과가 하루 만에 나왔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으니까 결과는 긍정적이었다. 브런치 작가를 도전한 이유는 평소에 입이 근질거려도 참았던 잔소리들을 글로써 풀어놓기 위해서다.


종종 내 생각을 말하면 ‘네가 뭘 알아서’ ‘너는 잘하냐’ ‘그럼 네가 하지 그래’라는 말이 날아오는 게 현실이다. 가끔은 먼저 질문을 해놓고도 이런 반응을 내놓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어느 순간부터 나는 입을 다물기 시작했고, 역설적으로 내 생각을 내놓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녔다. 이번에 찾은 공간이 브런치다.




처음 '어떤 글을 발행할까?'라는 고민에 이미 써 놓은 글로 시작할까 생각도 했지만, 나를 소개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자 나를 모르는 당신이 내게 무엇이 궁금할까?


나이? 이름? 직업? 음… 이건 궁금해도 말할 수 없다. 편견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내가 살아온 삶의 파편을 보여주며 날 어떻게 볼지를 당신의 생각에 맡기겠다.


어린 시절 유통을 처음 시작한 부모님 덕에 초등학교만 네 번 정도 옮겼다. 그 와중에 왕따를 당하기도 했고, 영재로 추천을 받기도 하고, 동네 형들한테 돈도 뺏길 뻔했으며, 운동선수로의 추천을 받기도 했다. 사람과 상황에 지나치게 연연하지 않는 내 성격은 이때 형성된 듯싶다. 전학에는 시간이 들었고, 학교에 가지 못하는 시간 동안 부모님의 일을 따라다녔다. 어린 나이에 어른의 고민을 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공감보다 분석이 앞선 사람이 됐다.(내 입버릇 중 하나는 "왜 그런데?"이다.)


반면, 3년 만에 또 어쩔 때는 1년도 못 채우고 전학을 다니던 초등학생 시절과 달리 중학생이 된 후에는 매우 정착된 삶을 살았다. 중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고등학교도 차석으로 졸업해 그래도 꽤 이름난 대학교에 장학금을 받으며 다니고 있다. 하지만 중고교를 다니면서도 하고 싶은 게 많았다. 내게 좋은 성적은 그 일들을 하기 위해 선생님과 부모님께 제공하는 담보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내 학생부는 꽤나 두꺼웠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 호기심 때문에 고생하셨을 선생님들께 참 감사하다.


대학생이 되고서는 혼자서 세상을 보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 처음 혼자 온 서울은 너무나 넓었다. 시간마다 다른 냄새를 퍼뜨리는 골목길들이며, 대로며, 모든 곳이 사계절 숲처럼 다채로운 이 도시가 신기했다. 수업이 없는 거의 모든 시간을 혼자서 돌아다녔다. 돈 없이 돌아다닐 수 있는 곳이 이렇게 많다는 것에 행복했다. 그러다 향기롭던 도시가 백화점 1층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왔다.




‘아 잠깐 멈추자’


그동안 모아 왔던 장학금과 용돈을 전부 털어서 혼자서 유럽으로 떠났다. 약 한 달간 250만 원 정도로 영국과 프랑스, 이탈리아를 누볐다. 대중교통은 이용하지 않고 두 다리를 최대한 이용했다. 값싼 현지식과 맥도널드로 배를 채웠고, 돈을 아껴 더 새로운 공연과 경험에 소비했다. 처음 해외로 떠난 혼자만의 여행. 그랬기에 실수로 노숙도 해봤고, 위험한 선택도 해봤다.(히드로 공항에서 모르는 사람 차를 얻어 탔다.) 편견이 사라지기도, 더 강해지기도 했다. 그리고 더 많은 경험을 했다.


그 뒤로도 장학금을 모아서, 임금과 단기 아르바이트비를 모아서, 투자한 투자금으로 코로나 전까지 매년 혼자서 여행을 떠났다. 한 학기 혹은 두 학기 동안 매번 150만 원 정도를 모으다 보니 자연히 공부만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덕분에 남들보다는 조금 일찍 경제에 눈을 떴다.


그 시간 동안 부모님을 도와 유통업을 경험하기도 하고, 가게에서 일하기도 했다. 어린 학생들을 가르쳐 보기도 했고, 시장을 분석하기도 했다. 도전을 하다 보니 자잘한 실패와 성공이 반복됐다. 뭐 남들과 특별히 다르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충분히 특색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게 지금까지 살아온 내 삶이다. 그리고 이 삶 속에서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던 잔소리들을 앞으로 글로써 남겨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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